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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현악기 시장은 고전음악과 마찬가지로 폐쇄적이다. 클래식 음악이 폐쇄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을 줄로 믿는다.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누구든 환영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개방적이지 않느냐 라고 할지 모르나, 클래식의 깊은 맛을 느끼고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깊이가 필요하기에 폐쇄적이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에게조차도, 그리고 심지어 전문 연주자에게조차도 현악기 시장은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다. 뛰어난 명기나 출처가 확실한 악기라면 모를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악기나 활의 상태, 가치, 그리고 거기에 대한 가격에 대해서라면 거의 ‘무지’에 가까운 수준일 때도 있다. 때문에 순수한 클래식 애호가나 이 세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 혹은 아마추어 연주자가 연주를 위한 악기 구매나, 혹은 투자의 목적으로 문의를 한다 해도, 누군가가 이 악기나 활을 사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적정한 가격에 사는 것인지, 나아가 미래투자가치를 생각했을 때 전도유망(?)한 악기인지, 그 누구도 속 시원히 이야기해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악기 구입 시 유의사항

출처
악기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팔 때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바로 이 ‘출처’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나라’의 악기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현악기나 활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부분은 ‘소리’이다.

사용자, 그러니까 그 대상이 아마추어건 학생이건 전문 연주자이건, 악기를 연주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지불하는 금액에 대한 보상(?)이자 기대하는 부분은 ‘소리’가 맞다.

하지만 현악기 시장이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이 시장에서 이것을 되팔려 할 때에는 소리는 ‘절대로’ 이 ‘출처’에 우선할 수 없다.

쉬운 예로 한쪽에는 형편없는 소리가 나는, 하지만 출처가 확실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공신력 있는 보증서가 있으며 제작 솜씨도 (그 제작자의) 평균 이상을 하는 이탈리아 모던 악기가 있다(a).

▲ 모던 이탈리안 바이올린

다른 한 쪽에는 소리는 몹시 훌륭하지만, 출신국가를 알 수 없으며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고, 다만 동유럽 악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악기가 있다(b).

▲ 체코 바이올린

연주하는 입장에서라면 두 말하지 않고 b를 선택할 것이지만, 이를 되팔 때에는 a가 b보다 부딪힐 장벽이 ‘덜하다’. 소리가 나쁜데 누가 사겠는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악기 시장에서 소리보다 출처가 우선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2018년 2월의 현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a의 시장가격이 5000만원~1억 사이라면, b는 최고로 비싸다고 해 봐야 3000만원 전후를 넘어서기 어려우며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악기 시장의 교묘한 교란(?)이 일어나는 대목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b와 같은 악기를 동유럽 악기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서유럽 어디쯤의 악기로 둔갑시켜 억대 이상의 돈을 받기도 하며, 실제 소리의 장점 때문에 이런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비극의 시작은, 이 악기를 (어떤 이유에서건) 되팔려고 할 때 생기는데, 아시다시피 시장의 논리란 사기는 쉽고 팔기는 어려운 법, 팔려고 할 때 비로소 내가 가진 악기의 진짜 모습을 바닥까지 알게 된다. 단순히 소리만 믿고 거액을 지불했으나 되팔 때에는 그 출처로 인하여 몇 분의 1도 못 건지는 수가 생기는 것이다.

라벨
전공자이건 아마추어이건 진위여부를 따질 때 (현악기의 경우) f-hole 사이로 보이는 라벨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 바이올린 라벨

물론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경우에는 상관이 없겠으나 이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벨은 참고하는 정도로 봐야 옳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그 악기가 만들어진 때부터 라벨의 정교한 조작은 수도 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심지어 수리를 한 제작자가 라벨을 새로 붙이거나 같이 붙이는 경우도 있고, 후대에 정교하게 당대 라벨을 카피하는 일도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눈을 속이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벨에 의존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 악기 자체를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것에는 악기를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지만, 조금만 악기를 보고 다녀도 이 색감이 이탈리안 인지 동유럽인지, 악기 제작 상태는 정교한지(과르네리처럼 거칠지만 개성 넘치는 제작도 있으므로 모든 작업이 깔끔하지 않다고 해서 좋은 악기가 아닌 것은 또 아니다!), 악기의 전체적 느낌은 어떤지 정도는 구분해 낼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악기들을 많이 접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좋아하면 많은 차를 보고 시승을 해 보고, 때로는 구매에 실패도 해 보며 알아가듯이, 와인도 다양한 와인을 음미해 보며 차츰 그 세계에 눈을 뜨는 것이고, 악기도 많이 보고 많이 시주해 보며 그러한 관심을 기울일 때만이 악기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이 생기게 될 것이다.

건강상태
오래된 이탈리아 명기들의 악기 위판을 뜯어놓고 속을 보면, (물론 상대적으로 깔끔한 경우도 있겠으나) 누더기 같이 나무들이 덧대어 있고 수리한 흔적이 많은 것을 보고 때로는 놀라기도 한다.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에 대한 조예가 없이는 쉽사리 이런 나무 조각들에 거금을 지불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수리 중인 바이올린

악기의 건강상태는 중요하다. 우리가 마치 결혼 전, 상대 배우자의 건강상태를 따지는 것처럼 악기의 건강상태는 내가 사용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되팔 때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크고 작은 풍상을 겪은 올드 악기라면 수리한 부분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사운드 포스트 패치라든지 위판의 크랙에 대한 수리는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뒤판,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허리에 해당하는 뒤판이 깨졌거나 수리를 한 적이 있다면 이 악기의 가치는 (아무리 소리가 좋다 하더라도)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활 역시 부러진 적이 있다면, 그 가치는 거의 1/10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교묘한 수리에 대해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고가의 악기를 구입한다면 이러한 수리 여부에 대해 반드시 서면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고가의 활을 구매하는 한 연주자가 구매 전 부러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x-ray 스캔을 해 보는 경우도 알고 있다.

보증서
보증서는 이론적으로는 어느 악기사나 써 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 있는 보증서를 써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20-30년간을 보아오면, (여기에서 실명을 거론하기는 곤란하나) 몇몇 보증서들은, 마치 인기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오늘날의 비트코인처럼 크게 인기몰이를 하다가 지금은 그 가치를 거의 인정해 주지 않는 보증서들도 있다. 이러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보증서를 ‘남발’했기 때문이며, 정확하지 않은 악기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보증서를 써 줬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간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지켰어야 할 신용과 맞바꿈을 한 셈이다.

현악기 보증서에 대해서라면 올드 악기의 ‘Beare(베어)’, 프랑스 악기의 ‘Rampal(람팔)', 이탈리아 모던 악기의 경우 ‘Blot(블롯)’이나 ‘Gindin(진딘)'의 것이 세계적으로 ’누구나‘ 인정해 주는 보증서이며, 활의 경우 얼마 전 타계한 ‘Millant(밀랑)’, 현존하는 ‘Raffin(라팡)’의 보증서가 공신력이 있다.

▲ Raffin 보증서

이들의 보증서 사업은 악기 가격의 몇 %를 공식적으로 받고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증서를 써 주는 이들은 이렇듯 몇몇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안목’을 빌려주는 대가로 받는 보증서 수입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에서도 뛰어난 안목을 지닌 보증서 발행 업체(혹은 개인)가 언젠가 생긴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이득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리
악기의 가치는 ‘출처’에서 시작한다고 위에 언급했으나, 연주하는 입장에서 소리는 어쨌건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악기나 활은 크게 내가 연주했을 때 만족스러운 악기와 남이 들었을 때 (연주자 스스로의 만족감보다) 더 좋은 악기가 있다. 물론 양자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둘이 상당히 다른 결과를 보일 때도 많다.

내가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우선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악기를 선택해야 한다. 이 편안함이라는 것도 당장 편안하고 나중에 불편할 수도 있고, 지금은 어색하지만 나중에 점점 좋아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내 판단의 기준이 지금 내가 사용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활은 좀 더 시간이 걸리고 개인적이며 예민하다. 좋은 활의 경우 아무리 오래 걸려도 1~2 주 정도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소리의 테스트는 반드시 다양한 곳에서 해 봐야 한다. 건조한 방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큰 홀에서 소리가 멀리 뻗어나가고 명료한지 등을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 절대로(!) 내가 연습하는 방에서만 소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격대별 악기 구입 포인트
바이올린을 예로 들면, 3천만 원 전후의 악기를 찾는다면 ‘소리’를 위주로, 그리고 5천만 원 이상의 악기를 찾는다면 출처도 꼼꼼히 따지라고 하고 싶다.

활의 경우 최소한의 구색을 갖춘 프랑스 활은 1천만 원 전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물론 이보다 훨씬 저렴하게, 혹은 훨씬 비싸게 가격이 책정될 수도 있고 그것은 파는 사람, 악기나 활의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너무 좋은 물건을 너무 싸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 건강한 거래는 아니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물건을, 올바른 가격에 서로 기분 좋게 사고파는 것이 제대로 된 거래이다. 보증서가 없다면, 없는 대신 좀 더 싼 가격에 거래가 가능할 것이고, 출처가 확실하고 보증서도 분명하며 악기 상태도 좋으면 비싼 가격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비록 소리가 나쁘다 하더라도).

때문에 자신의 예산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다 포함하려 ‘욕심내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
예산 안의 다양한 악기를 가능한 한 많이 접해 보라!
악기를 많이 보는 동안 그 가격대 악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안목이 생길 것이다.

환금성
주지하다시피 악기의 환금성은 ‘매우’ 낮다. 물론 때로는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빠르게 악기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나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비한다면 환금성은 낮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여타 골동품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구입한 악기라면) 시간과 함께 가치가 상승하는 부분 또한 분명히 존재하며, 시장에서 각광받는 메이커의 것일 경우 가파르게 상승하는 악기 또한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되팔 때에는 악기의 출처 등 가치의 측면이 크게 작용하므로 언젠가 악기를 되팔 것을 생각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 Tourte 프로그

Tourte 이야기
작년 프랑스 Vichy(비시) 경매에서 활의 최고봉 중 하나인 ‘François Xavier Tourte(프랑수와 자비에 뚜르뜨)’가 687,500 USD에 낙찰되었다. 낙찰 수수료 등을 포함, 최종적으로 내게 되는 금액은 9억 선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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