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김석윤 감독)은 제목 그대로 이 씨 조선시대의 명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코믹 추리극 형태로 흥행에 성공한 전작들을 잇는 세 번째 작품으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는 점에선 일단 눈길을 끈다.

세도가 정수영-인율 부자가 세자 가족을 죽인 역모죄로 가족과 함께 몰살되고 그들이 살던 강화도 강화서원이 불에 타 소실된 지 30년. 그 사이 정 씨 가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신은 승승장구해 영의정에 올랐지만 아들 민(김명민)은 벼슬에서 쫓겨나 탐정 노릇을 하고 있다.

한 청년이 무덤을 파고는 불에 탄 시신에 자신의 피를 흘려준 뒤 무사 천무(김범)의 무리에게 쫓기다 칼을 맞는다. 죽어가는 청년 앞에 한 젊은 무명의 여자(김지원)가 나타나 “나를 아느냐?"라고 묻자 숨이 경각에 달한 청년은 알 수 없는 작은 소리를 낸 뒤 조각보 하나를 건네주고 숨을 거둔다.

민은 조수 서필(오달수)과 함께 목에 두 개의 잇자국을 남긴 채 불에 타 숨진 피해자가 생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 기예단에 마술사를 가장해 잠입하지만 헛걸음만 하고, 그 사이 희생자가 속출한다. 답보상태에 빠진 그들은 두둑한 수고비가 보장된 강화도로 발길을 옮긴다.

▲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스틸 이미지

그런데 그들의 동선에 매번 무명녀가 겹친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민과 필은 그녀를 제압하려다 엄청난 완력에 혼쭐이 난 뒤 경계를 하지만 왠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점점 가까워져 어느새 공조수사를 하게 된다. 처음부터 대놓고 하대를 하는 그녀를 필은 ‘미친년’이라 경계하지만 민은 매료돼간다.

화살촉에서 단서를 발견한 이들은 다음 희생자를 알아내고 그곳으로 달려가지만 흑도포를 걸친 괴마(이민기)에게 이미 죽임을 당한 상황. 흑도포는 엄청난 힘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하늘을 난다. 이에 비해 한없이 무기력한 민은 그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무명녀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무명녀는 기억을 잃어버린 채 깨어난 탓에 자신이 몇 년 만에 깨어난 건지, 이름과 정체는 뭔지 단 한 가지도 모른다. 이에 민은 월영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어느새 그녀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런데 천무가 갑자기 들이닥쳐 민의 목에 칼을 댄 뒤 월영에게서 조각보 안에 담긴 서신을 빼앗아간다.

조정에선 왕이 개국공신들을 치하하기 위해 매년 열어온 보름달맞이 연회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 장소는 강화도. 다행히 월영은 서신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건 암호문. 고개를 맞댄 끝에 ‘명민한’ 민은 그 암호를 풀어낸 뒤 흡혈괴마가 왕과 중신들을 노린다고 해석하는데.

▲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스틸 이미지

TV에서 예능 시트콤 드라마 등을 거친 감독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구석구석에 10년 전쯤에 봤을 법한 코미디 요소가 배치돼있어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 적절하지만 이성 친구나 사업 파트너에게 권하면 마이너스 요인이 될 듯. 김명민은 자신의 이름을 대놓고 개그 소재로 삼고 오달수는 주특기인 코미디의 끝을 보자는 듯 폭주한다.

강화도 사건을 의뢰받은 민이 ‘숙소에 조식은 나오냐’ ‘화장실은 안에 있냐’고 묻는가 하면 약속과 다른 숙소 시설에 실망한 필이 ‘수건이나 몇 장 가져가야겠다’는 시대를 초월한 현대 생활 개그를 펼친다. 민이 커피를 내리는가 하면 그 시대에도 우주선이 출몰했다는 그럴듯한 설정까지 개입시킨다.

핸드헬드 셀피 방식 등 매우 다양한 촬영기법과 편집 등이 지루할 틈을 안 준다. 비유적이긴 하지만 민과 월영의 핑크빛 무드도 전개된다. 다만 그게 20세기의 하이틴 드라마처럼 유치한 게 흠. 또한 영화 ‘올드 보이’와 ‘박쥐’를 대놓고 오마주 하며 박찬욱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기둥 메시지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그 뭔가’라는 대사에 압축돼있다. 욕심이 지나쳐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사람의 틀을 쓴 악당과 자제와 절제를 아는 인간미를 지닌 ‘인간이 아닌 그 뭔가’ 중 과연 진짜 인간은 누구일까? 탐욕에 대한 경종은 꽤 묵직한 울림을 준다.

▲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스틸 이미지

세손의 이름이 이선(한자는 다르지만)이고 사화를 소재로 한 점 등은 사도세자와 기묘사화 등을 응용해 픽션을 가미한 듯하다. 1, 2편은 정조 16년과 19년이 각각 배경인데 벌써 순조로 넘어온 게 어색하지만. 세자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델인 익종(이영, 효명세자. 부왕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인 듯한 국가관을 지녔다. 그는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닌 백성’이라며 보위에 오르면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가 기득권 세력에 죽임을 당한다.

전편들의 흥행에 대한 부담 탓에 재미를 주고자 하는 압박감이 심했는지 정돈되지 않은 시퀀스들이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중구난방의 느낌을 준다. 같은 맥락에서 투입된 김지원은 존재감에선 플러스지만 영화 연기에 익숙하지 않아 맥을 끊곤 하는 게 옥에 티.

잠행 호위무사로 등장하는 우현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 편엔 좀비를 빌런으로 등장시키겠다는 걸 초반과 마지막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신감은 나쁘지 않다. 이런 상업영화는 ‘정-반-합’의 위치 설정이 필수인데 ‘반정립’이 애매모호하지만 ‘킬링 타임’용으론 팝콘보다 값지다. 단 지적인 파트너와는 관람 금지. 120분. 12살 이상. 2월 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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