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패딩턴 2>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관람 결과 최악이 돈과 시간 모두 아까울 때라면 반대는 잡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2시간이 즐겁고 극장 문을 나설 때 상쾌한 케이스다. ‘패딩턴 2’(폴 킹 감독)는 완벽하게 후자의 만족을 책임질 만하다.

3년의 런던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패딩턴(벤 위쇼)은 예전에 페루의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구해 키워준 루시 숙모의 100살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그루버의 골동품 가게를 찾는다. 그의 눈에 띈 건 런던 팝업북.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이웃엔 한때 인기 배우였지만 이젠 개 사료 광고 모델이나 하고 동네 축제 사회자로 일하는 게 전부인 피닉스(휴 그랜트)가 산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는 다락방에 햄릿 등 유명 연극의 주인공 인형들을 세워놓고 그들과 상황극을 펼치며 사는 살짝 ‘맛이 간’ 인물.

사실 그는 큰 빚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절박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아버지가 생전에 절도해 숨긴 보물을 찾고 있는 중.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게 은닉 장소와 봉인을 해제할 메시지를 적은 팝업북.

▲ 영화 <패딩턴 2> 스틸 이미지

패딩턴의 보호자인 헨리(휴 보네빌)는 직장에서의 승진 실패로 상심한 상황이고 아내 매리(샐리 호킨스)는 그의 남성미가 사라진 게 서운하다. 부모가 그러건 말건 딸 주디(매들린 해리스)는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으로 신문 제작에 열중이고, 아들 조나단(사무엘 조슬린)은 증기기관차에 푹 빠져있다.

마을 축제에서 피닉스를 만난 패딩턴은 거리낌 없이 팝업북 얘기를 하고 피닉스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늦도록 ‘알바’를 하고 귀가하던 패딩턴은 그루버의 가게에 도둑이 든 것을 발견하고 그의 뒤를 쫓아간다.

범인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만 연기만 남긴 채 사라지고, 패딩턴은 쫓아온 경찰에게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혀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된다. 패딩턴의 무죄를 믿는 매리는 진범을 잡기 위해 주디의 신문을 활용하는 등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패딩턴의 수감 첫 임무는 죄수복의 세탁. 그런데 빨간 양말 한 쪽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바람에 모든 죄수를 ‘핑크 공주’로 만들어 전체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간다. 그 상황에서도 형편없는 식사에 불평을 늘어놓자 한 죄수가 주방장에게 어필하면 세탁 사건을 용서해주겠다고 제안한다.

▲ 영화 <패딩턴 2> 스틸 이미지

패딩턴이 아무 생각 없이 마주한 주방장 너클스(브렌단 글리슨)는 교도관들조차 꺼리는 깡패 중의 깡패. 이 위기에서 실수로 모자 속에 숨겨둔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그의 입에 물리자 상황은 거짓말처럼 바뀐다. 그 맛에 취한 너클스가 오히려 패딩턴에게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도움을 청한 것.

한편 진범을 찾기 위해 잠행하던 매리는 노숙자, 수녀, 교황 등으로 변장한 용의자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들은 모두 변장의 명수인 피닉스 한 명이라는 강력한 심증을 굳히고 증거를 찾기 위해 그의 집에 침투하는데.

오랜만에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함께 만족할 만한 가족영화가 나왔다. 그런 ‘착한’ 영화라면 대부분 애니메이션이었지만 패딩턴 등 일부 캐릭터를 제외하면 실사영화인 ‘패딩턴’은 모션 캡처로 완성한 CG마저도 진짜로 여겨질 만큼 현실감과 몰입도가 매우 뛰어난 휴먼 어드벤처 코믹 뮤지컬이다.

단순히 ‘따뜻한’ 오락만 장착한 게 아니란 점에서 아이들에겐 교육적이고, 어른들에겐 결코 하품을 각오해야 하는 봉사용(자식에게)이 아니다. 페루는 에스파냐의 침략으로 잉카문명이 파괴된 채 300년간 지배를 받은 뒤 독립했지만 다인종에 백인이 지배력을 쥔 나라다.

‘패딩턴 2’를 공동 제작한 영국과 프랑스는 16~7세기 ‘해가 뜨는 곳에 국기가 날리지 않는 곳이 없다’던 에스파냐 제국이 못마땅했던, 역시 제국주의를 추구했던 나라. 두 나라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을 ‘개척’한 주류들의 모국이기도 하다. 페루 출신의 곰 패딩턴은 역으로 영국으로 흘러들어온 난민의 은유다.

▲ 영화 <패딩턴 2> 스틸 이미지

그가 사고뭉치인 것은 악해서가 아니라 과학과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세속적이지 않고 순진해서 그런 것이다. 권위적이고 비뚤어진 우월의식을 지닌 백인에게 패딩턴은 우스꽝스럽거나 위험한 이방인이다. 처음부터 그를 배타적으로 바라봤고, 그가 진범이라 강력하게 우기는 자율경비대원 커리는 파시스트에 대한 은유다.

감독은 아직도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갖고 난민을 부정적으로 경계하는 보수계층을 풍자하려 커리의 캐릭터를 도입한 듯하다. 인종차별과 정복전쟁 등에 대한 알레고리와 공존하는 배우에 대한 비판은 큰 기둥 메시지. ‘배우는 사악하고 교활하다’는 대사와 피닉스가 뛰어난 변장술로 범죄를 저지르는 시퀀스는 참으로 뼈 있는 직설법이다.

매 시퀀스와 대사가 웃음과 재미와 상념을 유발한다. 낯설지 않지만 상황이 신선해서 나오는 홍소, 기득권층 혹은 가식적인 지도층을 조롱해서 터지는 조소, 악당마저도 사랑스러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매조짐이 흐뭇해서 터지는 파안대소 등 모든 웃음의 종류를 즐길 수 있는 따뜻함이 강점이다.

이 모든 게 재미로 연결되고 일부 시퀀스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상념을 유도한다. 상황이 끝났다고 일어나면 손해. 에필로그 및 영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 휴 그랜트의 제일하우스 뮤지컬이 보너스니까. 104분. 전체 관람 가. 2월 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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