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mbc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2016~2017년 광화문 촛불집회 취재 중 가장 곤욕스러워서 제일 곤혹스러웠던 언론사는 MBC(문화방송)가 아니었을까? ‘촛불’들은 MBC 로고가 드러나는 카메라나 마이크를 보면 거칠게 항의하며 취재를 방해하는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생산했다는 게 이유.

MBC는 지난해 말 최승호 PD가 김장겸 전 사장의 퇴진 후 잔여임기를 위해 신임 사장으로 취임한 뒤 달라지기 위해 ‘자아비판’부터 시작했다. 정규, 비정규 프로그램은 물론 막간 광고를 통해 ‘그동안 우리는 보도, 인사 등에 있어서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며 시청자들에게 허리 굽혀 사과하는 걸 일상으로 삼았다.

MBC와 16개 지역 MBC는 지난달 31일과 다음날 16개 지역 MBC가 공동기획하고 MBC경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소수의견-편집된 지역, 삭제된 MBC’를 방송했다. 낙하산 사장과 무책임한 경영 사례 등 지역 MBC의 현실을 알리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특집 다큐멘터리였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래 관행처럼 이어진 ‘낙하산’ 지역 사장들의 무책임한 경영 및 훼손된 지역 공영방송의 민낯을 고발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또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했던 과오를 뉘우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억눌렀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기자와 PD 등의 모습도 내보내며 자책했다.

지역 MBC의 대주주인 MBC의 책임자 최 사장은 지역 MBC의 자율 경영에 대한 의지와 직원들의 자존감 회복 방안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2010년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검사와 스폰서’ 등으로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그가 당시 이 대통령에게 4대강 의혹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한 영상도 공개됐다. 얼마 뒤 MBC 파업 때 그는 해고됐다.

▲ 사진=mbc 화면 캡처

뉴스,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앵커와 진행자들이 확 바뀐 MBC는 요즘 ‘입’만 열면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겠다’라고 한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문화방송의 오랜 캐치프레이즈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가운데 그들의 눈높이에서 권력을 감시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드러났듯 지난 다년간 MBC는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이단자’로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인식이 굳어졌다. 저녁 뉴스 시청률은 곤두박질쳤고, 심지어 드라마와 예능마저도 일부를 제외하면 KBS SBS 등은 물론 후발 플랫폼 유력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도 밀려났다.

물론 드라마나 예능의 시청률을 정치적 색깔 혹은 권력과의 친소관계에서까지 찾는 건 억지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가 내부적으로 인정했던 전체적인 시청률 하락의 원인은 분명히 존재하긴 했다. 그런데 새해 들어 가시적인 시청률을 떠나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복귀한 ‘얼굴’들의 언행이 매우 밝은 것부터 확 바뀐 분위기를 입증한다.

SBS는 ‘스브스’라, KBS는 ‘고봉순’이라, MBC는 ‘마봉춘’이라 각각 영어 이니셜을 친숙하게 한글로 만든 애칭을 사용한다. 그렇게 다시 시청자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아비판을 마다치 않는 ‘마봉춘’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4일 첫 방송부터 시쳇말로 ‘히트’를 친 점도 그런 밝은 표정의 결과물이다.

동시간대 방송된 JTBC ‘슈가맨2’(16.11%), SBS ‘SBS 스페셜’(8.73%)의 뒤를 이은 3위의 성적이긴 하지만 일요일 밤 11시 20분 시작이라는 타임테이블을 감안할 때 7.47%라는 시청률은 시청자들이 MBC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조짐으로 해석하기에 무방한 수치다.

▲ 사진=mbc 화면 캡처

내용은 삼성그룹 임원의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본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 이명박 정부 시절 석유공사의 캐나다 정유시설 투자의 의문점, 이 전 대통령의 소유로 의심받고 있는 다스(DAS)의 미국 법인에서 포착된 수상한 자금의 흐름 등이었다.

뭣보다 가장 눈길을 끌고 후폭풍을 몰고 온 내용은 안미현 검사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때의 외압 폭로. 안 검사는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 김수남 검찰총장, 권성동 국회의원 등이 이 외압의 핵심 인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후 각 뉴스들은 이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사자들의 강력한 부인으로 아직은 안 검사의 주장이 100% 맞다거나 ‘스트레이트’의 ‘쾌거’라고 축배를 들기 이른 데다 진실이 샅샅이 드러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입을 모아 ‘이게 바로 MBC’라며 과거 탐사보도에 앞장섰던 ‘마봉춘’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자세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민영방송인 SBS조차도 기업의 개념을 넘어서 언론사로서의 정통성 혹은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단정한 매무새의 노력을 한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말할 것도 없다. 오직 국민만을 무서워하고, 단지 시청자만을 바라봐야 하며,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기간방송이고, 공영방송으로서의 기초적 자격을 갖춘다.

정권은 바뀌고, 정권을 바꾸는 주인은 국민이며, 정권에 상관없이 공영방송사는 계속될 것이며 계속돼야만 한다. 그렇게 공영방송사가 지속되려면 여론에 귀 기울여 방향타를 잡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스는 누구 거냐?’라는 여론에 귀 기울인 ‘마봉춘’의 환골탈태는 산산이 찢긴 자유의 봄을 꿰매거나(縫春) 모처럼 되찾은 민주의 봄을 받드는(奉春) ‘만나면 좋은 친구’의 제 집 찾기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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