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상담실을 찾아오는 부부들의 대다수가 반복되는 싸움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싸우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데, 그 싸움의 원인을 상대의 탓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 사람 다 ‘원하지 않는 싸움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상담가는 (그들이 말하는 원인과 잘못을 찾아서 해소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그들이 빠져있는 ‘싸움의 덫’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즉 싸우는 장소나 시간을 다르게 지정하거나, 각 날마다 한 사람만 말하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싸우는 방식을 바꾸면, 싸움의 양상이 달라지고 그 횟수도 줄어듭니다.

부부 싸움의 방식 중 아주 중요한 하나는 그들이 싸우는 패턴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추적자–도망자’ 패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부인이 추적자가 되고 남편은 도망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지만 흔한 경우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대개의 부인들은 자기 남편이 자신과 가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즉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하며, 가능하면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말들을 잔소리 정도로 여기고 부인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얼마 되지 않아서 ‘결론만 말하라’는 식으로 부인의 말을 막아 버립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용건만 간단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용건의 처리’ 자체가 아니라, 남편의 관심이고 또 자신과 남편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말문을 막아버리는 남편이 자신을 귀찮아하는 것으로 보이고 야속하게 생각됩니다. 때로는 그런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남편을 계속 쫓아다니면서 캐묻는 것으로 남편의 진심을 확인하려 하는데, 반면에 남편은 그런 부인이 귀찮고 지겹게 느껴져서 그런 기회 자체를 피하고 싶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인과 남편의 싸움 유형은 쫓고 쫓기는, 즉 ‘추적자’와 ‘도망자’로 굳어지고 맙니다.

이처럼 각 부부들의 ‘부부 싸움 패턴’은 두 사람의 합작품인데, 정작 본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덫에 스스로 갇혀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쫓는 사람이나 달아나는 사람이나 모두 상대방 때문으로 탓하고, 상대가 달라지기만을 요구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누가 더 많이 잘못한 것인지 또는 누가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쫓는 사람이 먼저 태도를 바꾸어서 ‘추적’을 포기하면 상대는 더 이상 달아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 생각하여 한동안 멀리 떨어진 채로 있겠지만, 얼마 후에는 갑자기 달라진 상대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서 도리어 슬금슬금 다가올 것입니다. 거꾸로 맨날 달아나기만 하던 남편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아내의 말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면, 이제는 부인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어서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간의 싸움의 패턴은 각자의 성격 유형에 따라서 정해지기도 합니다. 성격 유형을 나누는 방법은 아주 많으나 여기서는, 각자의 감정 표현 방식에 따라 폭발형volatile, 확인형validator, 그리고 회피형avoider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폭발형의 사람은 감정의 표현이 급하고 과격합니다.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표현도 풍부하지만, 감정이 상하면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것처럼 심하게 화를 내며 주변 사람이 말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도 화가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서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변덕쟁이처럼 보일 수도 있는 유형입니다.  

확인형의 사람은 감정의 표현보다는 합리적인 납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면 몹시 즐거워하며 그 사람과의 유대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일치점을 찾지 못하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밝혀내어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소한 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특히 자신의 합리적 접근에 따라주지 않는 상대에게는 상대가 심하게 화를 내어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회피형의 사람은 불만스러운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갈등으로 드러나는 것을 회피하는 유형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의견이 다른 때면 자신의 의견을 간단히 포기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고, 더러 주관이나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더 큰 감정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감추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부 간에 이러한 유형이 일치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모두 폭발형인 경우에는 서로 주고받는 감정이 풍부하여 남들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애정을 표현하지만, 일단 싸움에 들어가면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감정과 행동에 제동장치가 없어 “도저히 못 참겠으니 헤어지자”는 말도 쉽게 하지만 화해도 아주 쉽게 합니다. 실제로 단기간에 이혼을 결행했다가, 금세 후회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부부 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후회할 일을 저지르기 전에, 어느 한 사람이 요청하면 잠시 싸움을 멈추기로 미리 약속을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 모두 확인형인 경우에는 격한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빈번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지만, 불쾌한 기억들은 상상 외로 깊고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따지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최후통첩을 해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들은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상처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감정의 표현과 이해에 서투르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해 줄 조정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부부 모두 회피형인 경우에는 싸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재미없이 사는 부부로 보일 수 있으나, 남모르는 깊은 정을 주고받으며 사는 경우도 있고 뜻밖에 큰 실망을 지닌 채 포기하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부부 모두를 잘 알아서)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서로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제삼자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동반 친구 모임 등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부부 관계가 서서히 식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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