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건물소유 목적의 토지임대차의 기간이 만료한 경우 임차인은 그 건물을 임대인에게 상당한 가액으로 매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민법 제643조). 이를 지상물매수청구권이라 하는데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의 해지통고로 임차권이 소멸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인정됩니다.

한편 토지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도 임대인으로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토지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임대인으로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기간만료 등의 사유로 임차인에게 지상물매수청구권이 생길까요?

​땅 주인의 아버지 등 실제 토지 소유자가 아닌 제3자로부터 토지를 임차한 사람은 토지 소유자를 상대로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2014다72449)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A는 2002년 4월 충남 공주시 계룡면의 한 토지를 아버지로부터 넘겨 받은 뒤 소유권이전 등기를 완료했습니다. B는 이보다 앞선 2000년부터 A의 아버지와 이 땅에 대해 연 사용료 20만원에 기간을 정하지 않는 내용으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이곳에 건물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A에게 땅 소유권이 넘어간 뒤에도 임대차계약은 그대로 존속됐고, A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9년 5월 A는 B에게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B는 "실제 땅 소유자로 알고 있던 A의 아버지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소유자인 A는 표현대리 또는 무권대리의 추인 법리에 따라 임대차계약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데 A의 임대차계약 갱신 거절로 임대차계약이 종료됐으므로 A는 내가 지은 건물을 사들이고 그 가액으로 6,720만원을 지급하라"며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반소를 제기했습니다.

1심 법원은 "표현대리 또는 무권대리 추인의 법리는 A의 아버지가 A의 대리인의 지위에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법리라고 할 것인데, B의 주장 자체로 임대차계약의 상대방은 A가 아닌 A의 아버지임이 분명하다"며 A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부자(父子)관계에서 이 토지에 대한 권한 행사를 A의 아버지가 하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하고, A의 아버지는 B에게 토지를 연 사용료 20만원에 기간을 정하지 않고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임대했다고 봄이 상당하며 이 점은 A에게도 유효하다"면서 "따라서 B는 A를 상대로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A는 B에게 6,7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 민사3부는 A가 B를 상대로 낸 토지인도 청구소송(2014다72449)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재판부는 "건물 등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토지 임대차에서 임대차 기간이 만료되거나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의 해지통고로 임차권이 소멸한 경우 임차인은 민법 제643조에 따라 임대인에게 상당한 가액으로 건물 등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며 "임차인의 지상물매수청구권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지상 건물의 잔존 가치를 보존하고 토지 소유자의 배타적 소유권 행사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임차권 소멸 당시에 토지 소유권을 가진 임대인을 상대로 행사할 수 있지만 토지 소유자가 아닌 제3자가 임대행위를 한 때에는 달리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토지 소유자가 아닌 제3자가 토지 임대행위를 한 때에는 그 제3자가 토지 소유자를 적법하게 대리하거나 토지 소유자가 그 제3자의 무권대리행위를 추인하는 등으로 임대차계약의 효과가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된 경우에 한해 토지 소유자가 임대인으로서 지상물매수청구권의 상대방이 된다"며 "이처럼 토지 소유자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이 아닌 토지 소유자는 직접 지상물매수청구권의 상대방이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위 판결은 지상물 매수청구권의 상대방은 임차권 소멸 당시 토지소유권을 가진 임대인이므로 원칙적으로 제3자가 토지임대행위를 한 경우 제3자가 적법한 대리인이었거나, 토지소유자가 무권대리행위를 추인하는 등으로 임대차 계약의 효과가 토지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경우에 한하여 토지소유자가 지상물매수청구권의 상대방이 된다고 판단하여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였습니다.

다만 위 사안의 경우 임대인이 토지소유자의 아버지였고, 이후 A에게 땅 소유권이 넘어간 뒤에도 임대차계약은 그대로 존속됐고, A가 상당한 기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A가 매수청구권의 상대방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분은 매우 아쉬운 결과라 할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