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이전 글에서는 각자의 표현 성향 유형에 대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유형의 결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부 간에 유형이 다른 결합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폭발형과 확인형의 결합에서는 싸울 거리가 생겼을 때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원만한 해결이 난처해 보이는 상황이 자주 생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폭발형은 화산처럼 터뜨리고 난 후에는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지내자고 하지만, 매사에 신중한 확인형으로서는 그런 상대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게다가 확인형의 인물이 간직한 실망과 분노는 (화산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라) 용암처럼 천천히 진행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폭발형은 확인형인 배우자가 몹시 냉정한 사람인데다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확인형은 자신의 배우자가 상황에 대하여 이해하거나 반성을 하려고는 않고 자기 감정에만 치우친 철부지처럼 여기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확인형과 회피형이 함께 사는 경우에는 전형적인 추적자pursuer와 도망자withdrawer의 형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인형의 아내는 남편에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하고 또 남편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애정을 확인하려 하지만, 회피형인 남편은 그런 것을 부당한 간섭으로 여기고 혼자만의 휴식을 갖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맞춰주지 않는 상대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 또는 배신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따라서 확인형은 더 열심히 추적하여 상대의 진심을 확인하려고 애를 쓰는 반면에 회피형은 그런 상대에게서 도망하는 것으로 싸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여 이들의 부부관계는 서서히 악화되기 쉽습니다.

회피형과 폭발형으로 이루어진 부부는 도망자-추적자 유형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회피형은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가 금세 헤어질 것처럼 막말을 해대는 폭발형의 배우자를 보면서) 자신이 ‘형편없는 정신 이상자’와 잘못 결혼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폭발형은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에게 ‘눈이 삐어서’ 결혼하였다고 분개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폭발형은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회피형을 끌어들이려 하겠지만, 회피형은 폭발형의 그런 행동이 잘 살아보고 싶어하는 그 나름대로의 노력인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합니다. 끝내 이들은 (더 이상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방법을 찾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유형끼리는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일까요? 또 결혼한 후라도 서로 다른 유형임을 확인하였다면 일찌감치 헤어지는 것이 상책일까요? 근래 들어 이혼율이 높아지고 특히 결혼한 지 5년 이내의 조기 이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이런 인식 때문으로 보입니다. 성급한 결혼이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 역시 ‘간단한 해결책’으로 선택할만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이 결혼하게 된 이유와 이혼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충분한 성찰이 있지 않으면,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라서, 사람들은 같은 유형끼리 살고 싶어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자신과 다른 유형의 배우자에게 끌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과 다른 유형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사람과 결혼한 이후에는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끼기 쉬운데, 당연해 보이는 일상 생활의 모습에서 상대와 잘 통하지도 않고 또 자신이 정당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오로지 상대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나머지, 상대도 역시 결혼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힘들어 할 거라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길어질수록 자신들의 장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 역시 굳어져 갑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치열한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다’라는 식의 체념 섞인 조언으로 위로를 삼을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았던 옛날보다 현대에 들어서서) 결혼 생활을 잘 하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부부가족치료’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으로 절실한 요구가 있습니다.즉 결혼 생활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무리를 하기 보다) 제삼자인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부부가족치료사’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과 수련을 거친 사람으로, 단순히 이혼을 막아주는 역할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결정 소관임을 인정합니다. 설령 부부가 이혼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이혼 과정 및 이혼 이후의 삶에서 생길 수 있는 잘못을 최소화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치료사는 부부가 그저 참고 살거나 계속 싸우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과 상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게 돕습니다. 즉 개인의 성격적인 변화를 위한 치료는 물론 부부의 대화에서 오해가 되는 부분을 바로잡고 정확한 의미를 ‘통역’해줌으로써, 부부가 각자 힘들어 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부부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도 합니다. 흔히 부부치료가 개인 상담보다 짧은 기간에 효과를 보는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부부가 상대에 대해서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미처 몰랐던 점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부들이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 (부부 갈등 때문에 잠시 가리워졌던) 자신과 상대의 사랑을 재발견하여 행복을 되찾곤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되찾은 사랑과 행복은 단순한 갈등 해소로 그치지 않고, 부부 각자의 인격적 성숙을 넘어 자녀 세대에까지도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행복한 부부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겪고 있는 부부라면 ‘부부가족치료’라는 방법을 선택하시기를 권합니다. 그것은 마지못한 경우에나 선택하는 소극적 수단이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현명한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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