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뫼비우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여배우를 폭행하고 베드신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피소된 후 폭행만 인정돼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김기덕 감독이 지난 17일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연기를 지도하는 리허설에서 발생한, 이를 본 많은 스태프도 반대 의견이 없던, 그 과정에서 그 배우만 다르게 해석해 일어난 유감스러운 사례”라는 표현을 썼다. “법원의 판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시스템과 연출 태도를 바꿨다”라고 말했다.

또 “내 영화가 폭력적이라고 해도 내 삶은 그렇지 않다. 내 인격을 영화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누구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안전, 영화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배우나 스태프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존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연출 기준을 밝혔다.

홍상수 감독은 김민희와의 ‘부적절한 관계’임이 알려졌고, 아내와 법적 투쟁 중이다. 예술가라고 도덕적이거나 합법적인 행위만 하지 않는다. 직업이 뭣이든 모두 사람이니 실수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시대 상황에 따라 기준은 달라진다. 지금은 영화감독도 유명해지면 스타 대접을 받는 만큼 법과 도덕의 기준에 완벽하게 따르기를 대중이 강요하는 경향이 짙다.

아직도 촬영 현장에선 다수의 감독이 제왕적 권력과 권위를 휘두른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계약서가 책 한 권 분량일 정도로 촬영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이나 돌발 상황에 대한 설루션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만큼 환경과 조건을 완벽에 가깝게 사전 조율한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규모 상업영화를 제외하곤 아직도 곳곳에 구시대적 시스템이 잔존해있다. 조덕제 논란 케이스도 좋은 교훈이다. 선진 시스템의 경우 시나리오(콘티)에 연기의 디테일이 완벽에 가깝게 적시돼있지만 우리나라 일부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가 현장에서 과한 걸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김기덕과 홍상수는 자기 주관이 가장 많이 개입되는 연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홍상수의 경우 트리트먼트 몇 장 혹은 구두 설명만으로 시작해 촬영 당일에야 현장에서 그날의 시나리오가 배우 손에 전해지는 일화로 유명하다.

▲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스틸 이미지

어느 게 옳다는 정답은 없다. 큰돈이 들어가는 전형적인 상업 블록버스터야 철저하게 사전 준비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게 상업적 전략에 맞지만 홍상수나 김기덕 같은 작가는 자본의 간섭이나 틀에 박힌 제작 스타일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경향이 짙다. 현장의 느낌과 촬영 당일의 기분에 의해 연출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김 감독의 베를린에서의 해명과 자신의 연출관에 대한 고백은 충분한 설득력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게 순수하게 자신의 생각이고 의지이며 확고부동한 신념이라면 관행이 문제이므로 그의 영화세계나 인격에 대한 폄훼나 곡해는 있어선 안 된다.

안전과 존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의 발언이 관건이다. ‘을’의 입장인 무명 여배우가 ‘갑’인 김 감독을 고소했을 땐 감정이 상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거의 인격이 존중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폭력 혐의가 인정된 건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법의 판단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영화계엔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논란이 자주 불거지곤 했다. 수많은 여성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 수만큼 많은 남성이 성적인 의도를 갖고 관람하는 영화는 감독의 연출 방향이 아무리 예술에 있다고 하더라도 관객이 달리 해석한다는 명명백백한 현상(現象)을 부정할 순 없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라는 본래의 뜻에서 출발한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상’을 연구하는 현상학의 측면에서 볼 때 당연히 외설이다. 현상학의 대명사 격으로 인정받는 후설은 대상과 의식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선험적 현상학으로써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영화 <뫼비우스> 프로모션 컷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관객이 그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에 대한 자신의 경험으로 쌓은 인식과 의식이 바로 현상이다. 그 현상이 외설이면 외설인 것이다. 플라톤 시대의 ‘개똥철학’(견유학파)으로 유명한 디오게네스의 기행은 이루 열거할 수 없지만 아고라 광장에서의 자위행위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마저 낯 뜨겁게 만들 정도로 확고한 신념과 당당한 주관을 지녔기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지식인이자 스승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 그랬다면 변태성욕자로 비난받을 겨를도 없이 공연음란죄로 잡혀갔을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아전인수 혹은 견강부회의 의미를 지닌 ‘내로남불’이 세간에 유행되는 요즘이다. 현대 사회는 유명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따가운 감시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경제 정치 문화 예술 등이 복잡해진 이 세상에서 법, 도덕, 질서는 더욱 중요하고, 그만큼 여론은 법에 못지않게 대중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자신이 유명하거나 전문가라고 해서 대중을 깔보거나 최소한 우월의식을 갖는 건 매우 위험하다. 영화감독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건 대중의 지지와 성원 덕이다. 불건전한 데카당스는 이미 오래전에 한물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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