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괴물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국에선 10대가 총기를 난사하고, 한국에선 여중생이 또래를 집단 폭행한다. 청소년의 범죄가 날로 흉포해지자 청소년보호법 폐지 혹은 개정에 대한 청원이 줄을 이을 정도다. 영화 ‘괴물들’(김백준 감독)은 그런 표피적인 소재를 통해 폭력의 속성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고교 2학년 재영은 오로지 진급이 목적인 아버지와 관상어 돌보는 게 큰 관심인 어머니와 산다. 그는 절친한 성우와 함께 ‘짱’ 용규와 이인자 훈(이이경)의 폭력과 갈취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안이 있으니 지능이 좀 떨어지지만 아낌없이 애정을 베푸는 연상의 여자 예리(박규영)다.

어느 날 동급생이 상납한 음료수를 마신 용규가 병원에 실려 간다. 누군가 그 안에 농약을 타놓은 것. 강 형사(김성균)가 학교에 찾아와 성우를 잡아간다. 용규의 부재로 일인자가 된 훈의 권세는 예전보다 수위가 더 높아진다. 특히 재영을 향한 괴롭힘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용규는 재영과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 보경(박규영)을 짝사랑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욕심을 품고 있기는 훈도 마찬가지. 용규가 있을 땐 아무런 티를 못 냈지만 이젠 대놓고 재영에게 그녀의 집 주소와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오라고 하더니 더 나아가 속옷을 훔쳐 오라고 강요한다.

▲ 영화 <괴물들> 스틸 이미지

궁지에 몰린 재영은 이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다. 공교롭게도 보경과 똑같이 생긴 예리를 훈에게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것. 그러나 이 히든카드는 자처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셈이었다. 예리의 영혼은 파괴되고 재영은 엄청난 파멸의 길로 빠지는데.

소재는 낯설지 않은 학원폭력에서 시작하지만 음산한 음악과 함께 스릴러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청소년의 얘기지만 그건 이 사회 곳곳의 다양한 구조의 축소판이다. 폭력이 폭력을, 범죄가 범죄를 낳는다. 현실인지 가상일지 모를 시뮬라시옹(현실 모사의 거듭된 복제)이 야기한 시뮬라크르.

훈은 가장 악독한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다. 그는 용규에게 폭력으로 제압됨으로써 복종해야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고, 어머니는 그에게 무관심하다. 아버지에게 골프 클럽으로 폭행당한 그가 기댈 곳은 없다. 재영에 대한 폭력은 자신의 피해에 대한 시뮬라시옹.

재영을 괴롭히는 건 경험을 넘어선 선험적 보상심리. 재영은 성우에게 이 무간지옥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악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어디를 가든 뫼비우스의 띠였다. “훈이 없어진다고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훈이 좀비처럼 살아서 나타날 것”이라는 체념의 한탄이 재영의 결론.

▲ 영화 <괴물들> 스틸 이미지

얼핏 보면 청소년 문제를 다루지만 사실 기성세대 혹은 ‘지도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이 사회의 질서를 관장하는 소위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걸 자신의 관점에서 이기적으로 바라보려 하지, 전체적인 대중의 눈높이에서 고루 배려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꼬집는다.

만으로 17살. 법적으로 미성년자자. 투표권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일까?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할지 몰라도 그들의 육체적 성장판은 거의 모든 성장 활동을 완성한 상태다. 사리판단의 기준은 불확실할지 몰라도 천박한 어른의 욕망은 쉽게 배운다.

‘어른’들이 그 시절 그랬듯 그들도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을 따라 한다. 그런데 그 모방의 대상이 올바르지 않은 이라면 시뮬라시옹은 ‘매트릭스’ 같은 세상을 만들고 모사 복제된 시뮬라크르는 네오가 아니라 스미스 요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어른’이 정한 '규칙'은 나쁜 반복이 거듭되는 파헬벨의 카논이다.

▲ 영화 <괴물들> 스틸 이미지

독립영화계에서 급성장한 이원근은 이제 메인 스트림에 합류할 때가 된 듯하다. 예리와 보경의 1인 2역을 해낸 박규영은 극단의 캐릭터를 그리 많지 않은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연기만으로 썩 잘 표현해냈다. 다만 연출은 상업영화와 달리 러프하다는 걸 참조하면 불편함을 피할 수 있다.

청소년의 얘기지만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등급은 영화의 내용이 자극을 떠나 참혹하다는 증거다. 모든 부모나 선생이 ‘아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이 그들의 눈 밖에서 술, 담배, 섹스, 폭력을 경험한다는 걸 인정해야 법과 시각이 바뀐다. 그뿐인가? 상당수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른다.

‘어른’과 ‘아이’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나도 모르게 괴물이 돼버렸어”라는 대사는 이 사회가, 지도층 혹은 ‘어른’이 ‘피지배계급’을 어떻게 궁지로 내몰아 괴물로 만드는가에 대한 참담한 알레고리다. 과연 법 도덕 질서 등은 누가, 어떻게 확립하는가? 102분. 3월 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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