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혹시 결혼을 하면 성 관계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미혼 남녀가 성욕을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자위를 하는 것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설령 애인이 있어도 성 관계를 가지려고 남들 눈을 피해 은밀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또 아무래도 결혼 전에는 임신은 물론 언제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결혼을 ‘성 생활 면허’처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 관계에서 충분히 만족을 느끼는 것은, 특히 많은 여성들에게는, 결혼하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 배우자와의 성 관계에 익숙해진 뒤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임신과 수유 등으로 원하는 성 생활을 못할 수도 있고, 그나마도 부부 간에 성적 취향이 다르면 오히려 다툼만 늘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섹스를 하자 말자로 다투는 것은 부부 간에 아주 ‘치사하다’는 느낌만 남기는 경우가 많아서, 신혼의 행복은 커녕 그나마 있던 행복까지도 앗아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미 혼전 성 관계에서 성적 만족을 경험했다면 신혼이 좋은 이유 한 가지가 사라진 셈이니, 신혼의 행복에 성 생활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결혼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조의 의무’도 있습니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력이 넘치는 이성이 보여도 못 본 체 해야 하고,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한 사람하고만 성 관계를 해야 한다고 하니, 과연 이게 성 생활 ‘면허’인지 ‘금지’인지 애매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혼한 사람치고 이런 갈등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은 결혼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남들이 부러움과 축하를 받다 보니, 자신의 결혼 생활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채, ‘정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현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어른이 되는 또는 되려고 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은 그대로 있는데 ‘재미있는 일’이 추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단지 매일매일 편하고 재미있게만 살고 싶다면 결혼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은 과장이, 부장은 중역이 되는 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직급이 높아지면 그만큼 책임이 무거워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면, 승진할 당시에는 잠시 우쭐대지만 이내 더 커진 스트레스에 힘들어 하기 마련입니다. 즉 회사에서 중역에게 기사와 차량을 제공하는 것은 편하게 놀러 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바쁘게 일하라고 주는 것입니다. ​

다만 신입사원의 수준에서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중역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도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런 사람이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중역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중역이 이렇게 힘들고 재미없는 것인지 몰랐어. 그냥 편하게 지내던 평사원 시절로, 나 돌아갈래!” 하고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 소개한 상담 글을 올린 6개월 차 신부에게 답을 한다면, “결혼 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신혼도 그런 것이 정상입니다. 그 신랑이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신부가 속아서 함정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는 과정일 뿐입니다.” 라고 말해 줄 수 있겠습니다. 그런 줄 몰랐다고요? 이제라도 알면 됐습니다! 그러면 오해에서 비롯된 불행한 느낌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혹시 “그러면 이런 결혼을 도대체 왜 하느냐?”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답을 하자면, 결혼 생활이 처음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런 과정을 잘 겪고 나면, 연애 기간의 솜사탕 같은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랑을 누리는 행복은 결국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느새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것 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덧붙여서 “왜 신혼인데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묻는 대신에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자신에게 질문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비유로 답을 대신 하겠습니다. 번데기는 ‘고치’ 속으로 들어갈 때 이제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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