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밤’, 지적인 두뇌 게임 즐길 만한 스릴러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3.02l수정2018.03.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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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라진 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사라진 밤’(이창희 감독)은 원작인 스페인 영화 ‘더 바디’를 모른다면 오랜만에 심장이 쫄깃하고 두뇌회전에 가속도가 붙을 만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와의 비교도 재미있다.

의과대학 교수 박진한(김강우)은 연상의 윤설희(김희애)와 결혼했다. 설희는 부모의 부를 물려받아 바론홀딩스라는 큰 회사의 회장으로 있는 갑부. 그녀는 진한을 사랑해 결혼했지만 그가 자신의 돈을 보고 결혼한 배경을 알고 있다.

진한은 설희의 배려로 회사에서 중역을 맡고 있지만 사실 그는 설희의 장난감 혹은 애완동물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회사 일에 대한 의견은 매번 설희에게 묵살되고 오로지 그녀를 사랑해줄 것만 강요당하고 산다.

그는 강단에서 당돌한 여학생 김혜진(한지안)을 만나 하지 말았어야 할 불륜에 빠져 오피스텔을 얻어주고 임신까지 시켰다. 혜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설희와의 결혼생활에 진저리가 난 그는 혜진과 함께 감쪽같이 설희를 살해할 모의를 한다.

▲ 영화 <사라진 밤> 스틸 이미지

그에겐 신약 개발 당시 만들었지만 상용화시키지 못한 마취용 극약이 하나 있다. 일정량 이상을 신체에 투입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남지 않는다. 작전은 성공하지만 설희가 사망한 지 하루 만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안치한 시체가 사라졌다는 경찰의 전화가 온다.

진한은 자신의 약물을 무력화할 약물이 존재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자신의 계략을 미리 눈치챈 설희가 철저하게 대응했다는 심증을 갖는다. 담당 형사들의 팀장은 우중식(김상경). 한때 광역수사대의 레전드로 불렸지만 약혼녀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매일 술에 절어 후배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사고뭉치다.

그는 조사할 게 있다며 진한을 국과수 현장으로 부른 뒤 점점 진한을 설희 살해 및 시체유기 범인으로 몰아간다. 진한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지만 여기저기서 설희가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단서들이 발견되고, 설희로 의심되는 누군가 자신에게 복수하고자 그런 정황들을 일부러 장치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과연 설희는 살아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한을 옥죄는 이런 상황은 누가, 왜 만든 것일까?

▲ 영화 <사라진 밤> 스틸 이미지

세 주연배우의 연기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1만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 형사 역이 낯익은 김상경의 이번 캐릭터는 좀 특별하다. 지식과 육감이 최대치로 발달한 형사였지만 약혼녀를 잃은 뒤 상관과 후배에게 매번 피해를 끼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김강우는 ‘돈의 맛’과 살짝 캐릭터가 겹치긴 하지만 악역이면서도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는 점에선 충분히 매력적이다. 연기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 김희애와의 긴장감 넘치는 팽팽한 분위기를 조성하다가도 이내 기를 꺾고 복종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영화는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비주얼과 음악은 본격적인 호러에 더 가깝다. 설희의 시체가 안치된 국과수의 인트로는 공간 자체가 공포다. 장엄하거나 비극적인 현악기 위주의 배경음악은 마치 오페라로 꾸민 공포 장르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끔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 영화 <사라진 밤> 스틸 이미지

3쿠션 당구 기술 중에 ‘복합횡단 샷’이란 게 있다. 장축과 장축을 왕복하는 횡단 샷에 단축으로 가는 리버스 샷을 더한 고급 기술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의 기초인 서스펜스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반전에 피가 솟을 만한 공포감을 더한 ‘복합횡단 샷’의 테크닉을 구사한다.

진한과 설희의 부부관계가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설정은 현대사회에 만연된 이른바 계약형 결혼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두 사람은 결혼서약서보다 결혼계약서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조항 중엔 진한이 바람을 피울 경우 위자료를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난다는 게 있다.

영화의 재미는 설희의 생존 여부 혹은 그녀의 시신을 훔쳐 간 진범의 정체 등에 있지만 메시지는 결혼마저도 조건을 따지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사랑의 풍속도에 대한 조롱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의 충족조건이나 사랑의 필수조건이 돈인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은 충격적인 반전보다 더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101분. 15살. 3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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