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장훈 감독)는 첨단 디지털 시대의 인스턴트 방식 생활에 익숙한 이 시대의 정서가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에 촉촉한 아날로그의 단비와 훈훈한 힐링의 봄바람을 쏟아부어줄 만한 멜로를 가장한 가족 드라마다.

2006년 여름. 우진(소지섭)은 1년 전 아내 수아(손예진)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초등학생 아들 지호(김지환)와 함께 사는 게 녹록지 않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근무지인 수영장 청소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지호에게 아침밥을 먹여 자전거로 학교에 데려다준 후 수영장에서 하루 일을 정식으로 시작한다.

지호는 1년 뒤 비 오는 날 돌아오겠다며 눈을 감은 엄마의 약속을 굳게 믿고 창문에 네 잎 클로버를 붙이며 기우제를 지내는 중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장마가 시작되자 지호는 우진의 손을 이끌어 마을의 폐쇄된 기차역 인근 터널로 간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터널 안에서 엄마와 재회한다.

수아는 기억을 잃었기에 우진과 지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집에 와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정체성을 서서히 알아간다. 남편과 아들이라 주장하는 두 남자와의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친밀하게 진행되던 어느 날 우진에게 “난 당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건가요?”라고 묻는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우진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고등학교 첫 수업 날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날도 비가 왔다. 등굣길 좁은 골목 안에서 우진은 수아를 배려했고, 그런 우진을 우산 사이로 바라본 수아는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들은 같은 반에서 만났고, 댄스 교양 수업 땐 파트너까지 됐다.

우진은 수영 국가대표 선수를 꿈꾸는 특기생이었지만 마음이 여려 용기라곤 쥐꼬리만큼도 없이 순진했다. 수아는 전교 1등의 모범생이었고,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새침데기였다. 가까워질 듯 멀어지는 반복적인 관계가 3년 내내 지속되다 수아는 서울의, 우진은 지방의 대학으로 각각 진학했다.

그들의 오작교는 우진의 둘도 없는 친구 홍구(고창석). 마음 약한 우진의 용기를 부추겨 수아와의 첫 데이트를 성사시킨 일등공신이다. 세 번째 데이트를 한 날 수아는 우진에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기라며 네 잎 클로버를 건넨다.

그러나 우진은 자신의 치명적인 불치병을 알게 된다. 더 이상 물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약한 몸으로는 수아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헤어지자’는 한 줄의 편지를 수아에게 보낸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두 사람은 그러나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결혼해 지호를 낳은 것.

러브 스토리가 웬만한 동화 이상으로 아름다웠고, 반전 드라마보다 스릴 넘쳤으며, 지호가 얼마나 소중한 사랑의 결실인지 확인한 수아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그러나 어느 날 창고에서 우진의 일기장과 예전에 자신이 지호에게 선물한 그림책을 발견하고는 장마가 끝나면 자신이 떠날 것을 깨닫는데.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요리를 뺀 ‘리틀 포레스트’의 가족 드라마 버전이 나왔다. 우진이 사는 심포리에서도 중심가에서 벗어난 집은 매우 목가적으로 아름답다. 기차역과 기찻길과 터널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듯 몽환적이다. 굳게 잠겨있던 수아의 그림 작업실도 판타지적 장치다. 미술팀의 노력이 엿보인다.

스토리는 우진과 수아라는 두 청춘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또 힘들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결혼했다 죽음으로 헤어진 뒤 다시 또 그 과정을 밟으며 아름다운 연인으로서, 운명적인 부부로서, 그리고 세상에 다시없을 소중한 가족으로서의 서로서로를 확인하는지의 과정을 느린 걸음으로 보여준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모든 모나드(실체)의 본성이 서로 조화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는 예정조화론을 주창했다. 이를 통해 기계론적 필연관과 목적론적 세계관의 조정이 이뤄졌는데 영화는 그 예정조화를 통해 인간의 고뇌와 고통과 슬픔과 아픔 등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행복과 불행의 조정!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살아있기에 언젠가 죽을 것을 알고, 더 아이로니컬하게도 안 죽자고 아등바등한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현실은 힘들다. 그래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게 힘들어 좌절과 분노 속에 괴로워한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삶의 영속성이나 위기 탈출의 필살기를 뜻하는 게 아니다. 필연관적 세계관의 예정조화다. 영화는 수아가 자신의 과거의 단추를 하나씩 꿰맞춰 가는 과정에서 쉴 새 없는 눈물을 야기한다.

그 유도제가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매우 ‘올드 패션’인데 촌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추억과 향수를 자극해 마치 ‘건축학개론’처럼 상념의 정서를 소환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미안할 때는 ‘이렇게 힘든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어떡해’라는 생각이 들 때다. 과연 그럴까?

수아는 우진에게 “우린 지호가 세상에 태어나게 하려고 (필연적으로) 만난 거야”라고 한다. 그녀의 삶은 그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주제는 ‘멋진 인생’이다. 어떻게 ‘사는’ 게 멋지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며 사는’ 게 멋지냐는 얘기다. 그래서 마냥 슬프거나 무겁지 않다.

고창석이 주도하는 유머가 지뢰처럼 여기저기 포진돼있고, 특별출연도 큰 재미를 준다. 굳이 흠을 잡자면 소지섭의 ‘멋짐’보다 손예진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인다는 것인데 김지환이라는 복병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화목한 가정이 과연 현실에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한다. 131분. 12살. 3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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