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된 성관계’와 ‘부끄러운 짓’ [김주혁 칼럼]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ll승인2018.03.08l수정2018.04.0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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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성의 날 한국여성대회

[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요즘 각계에서 이어지는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고발을 보면서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들이 오랜 세월 홀로 시달려온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주로 하급자인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가해온 인권침해 악습을 이제는 깨부숴야 한다. 그동안 무심하고 외면했던 동료와 국민들이 위드유(#WithYou, 당신과 함께합니다)로 답해야 할 때다. 조직과 국가가 성폭력 생존자들을 지켜줘야 한다.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으면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성폭력을 포함해 어떤 일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성폭력은 범죄행위다. 기관장이든 대통령이든 범죄행위를 저지르면 한 방에 간다. 시대가 바뀌었다. 적자생존이란 말처럼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강압이나 저항은 없었고 합의된 성관계라고 둘러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충남지사 성폭행 피해자인 수행비서의 말은 상하관계에서 저항하기가 쉽지 않고 합의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사님은 네 생각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지사님이 얘기하는 것에 반문할 수 없고 늘 따라야 하는 존재였다. 지사님과 저는 합의를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제 상사이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사이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상급자는 부하 직원에게 성범죄 시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하고, 부하직원의 반응에 민감해야 한다. “저는 일할 때 거절하거나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어렵다고 한 것은 저로서는 최대한의 방어였고 안 지사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버드대가 교수와 학생 간 연애나 성관계를 학칙으로 금하는 이유를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 jtbc 방송화면 캡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이 남성다운 터프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성추행 미투 고발 대상자인 한 원로 시인은 국내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외신에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들도 있다. 많은 남녀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고, 여성을 함부로 만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일까.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범죄행위다.

정부는 8일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12개 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범정부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2차 피해를 막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며, 예방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 심리치료비 지원한도 확대 △민․형사상 무료법률 지원 강화 △검찰, 피해자 진술을 어렵게 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수사과정서 위법성 조각사유 적극 적용 △피해자에게 고통 주는 온라인상 악의적 댓글에 사이버수사 등 엄정대응을 실시한다. △수사과정 전반의 피해자 접촉은 원칙적으로 여성경찰관이 전담 △피해자 신분 노출 방지 위해 가명조서 적극 활용 △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팀장,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등 915명을 미투피해자 보호관으로 지정․운영해 수사가 끝날 때까지 책임지고 피해자 사후지원(상담, 의료, 심리치료, 법률 지원 등)등도 하기로 했다.

▲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하도록 고용노동부 누리집(홈페이지)에 직장 내 성희롱 익명 신고시스템을 8일부터 상시적으로 개설·운영한다.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3월8일부터 6월15일까지 100일간 운영한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설치되며, 피해신고는 전화상담(02-735-7544), 비공개 온라인 게시판(www.stop.or.kr), 등기우편접수 모두 가능하다.

가해자 처벌 강화와 관련,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법정형 상향(위계‧위력 이용 간음 현행 징역 5년 이하→10년 이하) 및 공소시효 연장(현행 7년→10년)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한 조직적 방조행위도 처벌 적극 검토 △사업주 성희롱, 징계 미조치 시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처벌 입법여부 검토 등이 추진된다.

문화예술계에 대해서는 △특별조사단 및 특별신고상담센터 운영 △문화예술인의 피해보호 및 구제를 위한 ‘예술인권익보장법’(가칭) 제정 검토 △문화예술 등 분야의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는 보조금 등 공적 지원에서 배제 △문화예술 분야의 정부지원·공모사업 시 성폭력 예방 교육 의무화 △문화예술, 영화계, 출판, 대중문화산업(음악, 만화, 이야기산업, 패션산업 등) 및 체육 등 5개 분야 대상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등을 하기로 했다.

▲ 문화예술계 분야별 실태조사 추진계획

의료계에 대해서도 △의료인 양성 및 보수교육에 성폭력 예방 교육 추가․강화 △의료기관 각종 평가에 성희롱․성폭력 예방, 피해자 보호 등을 지표로 반영 등을 추진한다.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10년 전 이날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생존권)뿐 아니라 장미(참정권과 인권)도 달라!”고 외쳤다. UN은 이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1975년 제정했다. 이제는 여성이나 남성이 모두 일상에서 성폭력과 성차별 걱정 없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대를 우리 모두 열어가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 그 일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앞장서야 한다. 가해자뿐 아니라 방관자가 돼서도 안 된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l  myhappyhom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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