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인기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이 드라마에서 다시 영화(김제영 감독)로 관객과 만난다. 다소 산만하고 거칠긴 하지만 꽤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선 분명히 흥미가 넘친다. 게다가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미스터리 스릴러와 결합했다는 점에선 다분히 개성적이다.

대학 3학년 홍설(오연서)은 1년 전 개강파티에서 1년 선배 유정(박해진)을 처음 알게 됐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외모와 매너에 뛰어난 학업성적에 갑부의 아들이다. 여학생들은 그에게 접근을 못해 안달이고, 남학생들은 그의 씀씀이 그늘 아래 들어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설은 그의 완벽함이 불편하다. 남들이 있을 땐 무척 친절하지만 단둘이 있을 땐 찬바람이 부는 그의 진면목이 의심스럽다. 요즘 설은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과 함께 작업 중이다. 밥을 사준다기에 부담스러워 편의점 삼각 김밥으로 때웠는데 처음 먹어보는 눈치다.

쌍둥이 남매 백인호(박기웅) 인하(유인영)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모 슬하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저명한 교수인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한 갑부 아저씨의 집에서 자랐다. 정의 아버지다. 아저씨는 정의 정신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남매에게 몰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고해바치는 임무를 맡겼다.

▲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 이미지

남매를 친구로 생각하고 마음을 열었던 정은 사춘기 때 이 사실을 알고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채 그들을 짓밟기로 생각을 바꿨다. 현재 인하는 아저씨의 배려로 오피스텔에 살며 신용카드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조건이 있으니 자립할 수 있는 기능 자격증을 하루빨리 취득하는 것.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인호는 정의 사주를 받은 폭력 학생들에 의해 왼손을 다친 후 훌쩍 떠나 배를 탔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하 앞에 나타난다. 남매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운다. 마음속의 상처가 큰 탓. 오피스텔을 나온 인호는 정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다 헤어진 설에게 접근한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설과 장보라(산다라박) 주변엔 변태 스토커 동기생 오영곤(오종혁)이 서성댄다. 그의 집착은 날로 심해지고 결국엔 설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인호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구해준다. 정은 인호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설에겐 인호를 멀리하라고 주문한다.

인호와 영곤은 설에게 수시로 정의 정체가 어떤지 아냐며 그녀의 의심에 부채질을 한다. 하지만 설이 정의 언행이 가식인지 의심을 품을수록 점점 그에게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혼돈에 휩싸인 설에게 정은 사귀자고 제의한다. 그가 손을 잡는다. 급하게 빼지만 이내 스스로 그의 손을 되잡는다.

▲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 이미지

그렇게 두 사람은 알콩달콩 사랑을 시작하지만 설의 정을 향한 의심과 의혹은 점점 짙어만 가고 영곤의 스토킹은 더욱 심해진다. 게다가 캠퍼스 주변에 밤에 홀로 지나는 여성을 벽돌로 습격하는 ‘빨간 벽돌’이란 변태가 출몰해 여학생들이 공포에 떠는 가운데 보라가 그 피해자가 되는데.

일단 외형은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물이다. 법적으론 어엿한 성인이지만 아직은 인격이나 인성이 완성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한 뼘씩 성장해나가는 드라마다. 그런데 감독은 여기에 사회적 이슈와 인간 내면의 추악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원초적인 본성들을 담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끄는 주인공은 설이지만 사실 중심축은 정이다. 재벌가 무녀독남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자연히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가 서서히 전권을 물려받을 게 확실하다. 공부 잘 하고, 완벽한 외모를 지녔다. 뭣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완벽한 존재다. 그러나 내면은 상처투성이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부터 완벽하게 철두철미할 것을 강요했다. 회사를 물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그는 외로웠다. 그래서 일찍이 돈으로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을 배웠다. 돈을 뿌리면 조종 못 할 사람도, 못 할 짓거리도 없었다. 갑자기 한집에 살게 된 인호 인하 남매는 자신과 닮았다. 그들도 내상이 심했다.

▲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 이미지

그래서 마음을 열었지만 결국 그들도 아버지의 돈의 노예였다. 자신이 돈을 주고 부린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조차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감시자를 둘 정도니.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세상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겉으론 자상하고 친절하며 정의로운 척하지만 내면으로는 자신의 발밑으로 기어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철저하게 비웃고 이용해먹었다. 그가 설 앞에서 삼각 김밥 포장 까는 걸 실패한 뒤 집에서 다수의 삼각 김밥 포장 벗기기를 성공한 뒤 식탁 위에 차려진 푸짐한 식사를 홀로 즐기는 모습은 섬뜩하되 아프다.

인호는 왼손잡이였지만 폭력으로 다친 뒤 양손잡이가 됐다. 사상(이념)적 테러에 대한 은유다. 편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호는 양손잡이라는 타협을 선택했다. 정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살짝 보여준다. 이 책은 인종차별이 소재다. 양심과 정의가 주제다.

▲ 영화 <치즈인더트랩> 스틸 이미지

인호는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착하다. 처음에 설이 그를 경계하는 건 체제적 편견과 차별을 의미한다. 전교생이 무작정 정을 흠모하고 우러러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식과 착각은 평균율 위에서 논다. ‘사람은 모두 다른 삶을 살고,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대사는 ‘앵무새 죽이기’와 궤를 함께한다.

‘쥐덫에 놓인 치즈’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겉으론 정이란 정체성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론 모든 인간이 세상 곳곳에서 부닥치는 불안전한 유혹이기도 하다. 영화의 큰 틀은 외모와 조건이 화려한 한 남자의 가식적인 완벽주의와 아주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한 여자 간의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 만들기다.

감독은 이 구조 안에 다름의 다툼이 아닌, 다른 환경과 개성 간의 화해를 통해 젊은이들의 정서와 이 사회의 구조가 건강해져가는 과정을 장치함으로써 요즘 보기 드문 독특한 멜로를 완성했다. 박해진의 신비로움이 벗겨지는 과정과 오연서의 점점 신비롭게 변하는 과정이 예쁘다. 113분. 15살. 3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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