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언제부턴가 ‘힐링’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메마른 도시생활과 빡빡한 경제활동에 지친 현대인의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치료를 의미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장훈 감독)가 흥행에 성공한 건 그만큼 현대인의 힐링에 대한 갈증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외형적으로 ‘N포세대’의 고민과 그 설루션에 대한 이상적 정답을 담았는데 사실 그 대상은 젊은이뿐만 아니라 현대인 대부분이다. 서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대학을 다니면서 준비해온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혜원은 크게 낙담해 텅 빈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이미지

초등학교 동기동창 재하는 안정된 직장을 다녔지만 상사의 비인격적 대우를 참지 못하고 그만둔 뒤 아버지의 농사를 잇고 있다. 은숙은 전문대를 졸업한 뒤 동네 농협에서 근무 중인데 부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업무에서도 그 때문에 힘들 뿐만 아니라 노래방 회식은 정말 괴롭다.

혜원은 며칠만 머리를 식힌 뒤 서울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은숙에게서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재하에게서 학교를 때려치운 뒤 진정한 행복을 찾아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가려던 서울에 잠깐 들러 모두 정리한 뒤 고향에 정착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뭐가 달라져?”라는 재하의 한 마디가 이 영화의 철학과 주제를 압축한다. 혜원은 돈 벌랴, 고시 준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왔다. 쉰답시고 고향에 왔지만 고모 농사를 돕고, 자급자족하기 위한 밭일도 하며, 서울에서의 ‘재기’를 모색하기 위해 고민하느라 바쁘다.

사실 재하도 바쁘다. 변덕투성이의 날씨와 싸워야 하는 농사라는 게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일상이 분주하다고 마음마저 정신없는 건 아니다. 자연에 내맡기고 순리대로, 또 사람의 능력의 한계가 베푸는 대로 순응하며 살고자 농사를 선택했기에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다. 혜원에게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혜원은 거울 같은 친구들을 보며 엄마가 왜 여고도 졸업하지 않은 딸을 홀로 놔두고 집을 나갔는지 깨닫는다. 엄마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과 결혼해 혜원을 낳았지만 남편이 불치병에 걸리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곧 눈을 감았고, 엄마는 힘들게 혜원을 키웠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이미지

엄마는 혜원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길 간절하게 원했다. 하지만 그걸 말해봐야 혜원이 깨닫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공식처럼 결혼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엄마는 특별한 부연설명 없이 ‘느리게 걷기’를 가르쳤다.

그건 음식이다. 스스로 키운 작물을 통해 천천히 음식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참다운 인생의 올바른 길을 가는 법을 우회적으로 웅변한 것이다. 그리고 혜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자마자 이젠 그녀가 스스로 깨칠 때가 됐다는 판단에 비로소 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갔다.

관객들은 세 주인공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거나 한눈팔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려온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과연 지금 서있는 자리에 오고자 태어났고, 그렇게 아등바등 발버둥 쳤을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행과 결론에 박하 검을 씹은 듯 시원함을 느낀다.

대다수는 ‘빨리빨리’ 산다. 점심시간 1시간에서 실제 식사 시간은 10분 안팎이다. 편의점에서 5분 안에 해결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의 요리 시간은 지난하다. 편의점에서 1000원 좀 더 주면 간편하게 구할 수 있는 막걸리를 힘들게 직접 담가 먹는가 하면 감을 키워 곶감으로 만드는 오랜 과정을 감내한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그런 걸 보노라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인가?’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마음속에 ‘작은 숲’ 하나 만들고 그 속에서 쉬엄쉬엄 살아간다면 주머니는 가벼울지라도 마음만은 풍요로울 것이란 생각이 절로 머리를 꽉 채운다. 땀 뻘뻘 흘리며 라면 한 그릇 먹어치운 후 ‘이거 한 그릇 먹으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라는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우진과 수아가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이뤄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의 과정이 살짝 미스터리 형태로 진행되는 게 큰 틀이다. 초등학생 지호를 홀로 키우며 사는 우진은 지난해 수아를 잃었다. 수아는 지호에게 1년 뒤 비 오는 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억을 잃은 수아가 돌아오고 우진은 고교 때 만나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도 못한 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인연을 이어 결국 결혼까지 완성한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아름다운 판타지 스토리로 그녀에게 들려준다. 여기에 더한 게 부성애와 모성애, 즉 가족의 소중함.

지호와 수아 사이엔 아픈 사연이 있지만 우진과 수아가 운명처럼 맺어진 이유가 바로 지호를 세상에 내놓기 위한 데 있다는 긍정적 결론으로 매조진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다. 수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진은 그러나 용기가 없어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한 걸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그런데 사실 수아 역시 우진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지만 여자이기에 관습 때문에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헤어질 것 같았던 두 사람은 결국 극적으로 맺어져 지호를 낳았다. 지호가 세상에 나오도록 예정돼있었기 때문에 그 무엇이 그들을 갈라놓으려 해도 결국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따뜻하고 뭉클한 가족의 행복한 일상은 한적한 시골마을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단독주택과 그 주변 공간에서 이뤄진다. 수영선수였지만 불치병에 걸려 물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우진이 다시 나타난 수아와 다시 사랑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자연 치유된다는 설정은 흡사 ‘셰이프 오브 워터’를 연상케 한다.

세 가족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과 그런 가족애가 철철 넘쳐흐르는 공간은 경쟁에 지치고, 공해에 찌든 도시의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상쾌한 청정 산소를 공급해준다. 그런 가족과 공간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귀촌을 행동에 옮길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소풍 같은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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