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3월 28일 한날 개봉돼 박스오피스 1~3위에 위치한 ‘곤지암’ ‘레디 플레이어 원’ ‘7년의 밤’이 30일 총 38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았으니 일부 매체의 보도대로 폭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극장가다. 이 와중에 4월 5일 개봉될 ‘바람 바람 바람’(이병헌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솟구치고 있다.

선택 기준은 관객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탄착점은 재미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긍정적인 것이다. ‘스물’로 관객들의 배꼽을 뺀 바 있는 감독이다. 언론시사회 후 반응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재미있다는 것. 일각에선 성적인 코드로 흥행만 노렸다거나 불륜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결혼한 지 20년 된 석근(이성민)과 담덕(장영남), 8년 된 석근의 여동생 미영(송지효)과 봉수(신하균) 부부, 석근과 봉수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매력적인 여자 제니(이엘)가 주인공이다. 미영 명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셰프, 오랫동안 담덕과 알고 지낸 맹인 안마사가 조연.

롤러코스터 디자이너로서 전 세계를 떠돈 석근은 타고난 바람둥이다. 지금은 제주도에 정착해 단독주택 2채를 지어 옆집엔 미영 부부를 앉혔다. 택시 운전사로 전업했지만 바람기는 여전하다. 중식 셰프를 꿈꿨던 봉수는 지금은 무기력한 식당 서빙 직원일 뿐이고 미영은 SNS에 푹 빠져있다.

봉수는 제니를 석근의 새 여자로 소개받지만 보자마자 결혼 후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어느 날 제니는 봉수 앞에 나타나더니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연인 사이가 된 제니는 봉수에게 “날 사랑해?”라고 묻고, 봉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긍정이거나 헷갈리는 것이다.

▲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스틸 이미지

석근을 비현실적인 ‘변강쇠’로, 봉수를 순진하거나 줏대가 없는 현실 속 다수의 남편으로 그리는 건 불륜을 미화하자거나 천박한 말초신경 자극제로써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의도보다는 재미와 메시지로서의 기능성을 위해서다. 그건 바람을 3번이나 반복한 제목 속에 충분히 담겨있다.

첫 번째 의미는 외도라는 ‘Affair’나 ‘Cheating’이다. 담덕은 1969년생치고는 꽤 젊고 아직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석근이 그녀와 잠자리 때 여전히 키스를 하는 게 증거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지만 그렇다고 석근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석근의 바람은 그냥 본능적 습관 혹은 관성.

대다수의 남자들의 천박한 소유욕, 과시욕, 그리고 태생적 육욕이다. 그의 육체적 조건이 ‘타고난 것’으로 설정된 게 그 증거다. 김범룡은 1985년 데뷔 앨범의 ‘바람 바람 바람’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섰다. 이 곡은 쉽게 왔다 더 쉽게 떠난 연인을 ‘Wind’에 비유했다. 영화의 두 번째 의미.

주인공들이 제주도에 정착한 설정은 바로 그 바람을 뜻한다. 석근은 원래 바람처럼 세계 곳곳을 떠돌며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었지만 봉수는 아내밖에는 보지 못하는 정착민이었다. 그런데 돌만큼 많은 여자들이 사는 바람이 강한 제주도에 석근과 함께 살면서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스틸 이미지

봉수와 미영의 잠자리는 무척이나 기계적이고 의무적이다. 봉수는 마치 행사를 치르는 듯 사무적이고, 심지어 미영은 SNS와 병행하는 형식적인 태도다. 아이를 갖겠다며 과학까지 동원한다. 그래서 석근에게서 시작된 외도의 바람은 굳게 닫혀있던 봉수의 욕망의 빗장을 푸는 바람이 된다.

세 번째 뜻은 불가능에 가까운 걸 바라는 ‘Wish’라기보다는 가능한 바람과 희망을 뜻하는 ‘Hope’다. 석근은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그 잘난(?) 바람기가 급전직하한다. 새 여자를 사귀라는 미영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가 죽는다. 그의 바람기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남자는 사귄 여자의 숫자, 잠자리의 시간과 횟수 등을 마치 훈장처럼 으스댄다. 딱 석근이다. 이 영화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 설정이다. 그럼에도 석근을 담덕의 죽음을 계기로 철부지에서 어른으로 일취월장시키고, 담덕의 비밀을 안 뒤 더욱 성장시키는 미덕을 지킨다.

간통죄는 사라졌지만 도덕과 양심은 살아있다. 이 영화가 불륜을 조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을뿐더러 일방적으로 남자 편에 서지 않았다는 증거는 도덕과 양심의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감독의 바람이자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의 바람이다. ‘남자들이여, 철 좀 들자’라는.

남녀에게 공통된 바람은 평생 ‘짝’으로 맺어진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바람, 자칫 소중함에 익숙해짐으로써 당연함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바람, 애정 표현에 인색하지 말라는 바람, ‘짝’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바람, 선택은 신중하되 한 번 선택하면 끝까지 신의를 지키라는 바람 등이다.

▲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스틸 이미지

여자라고 안심할 영화는 아니다. 담덕은 석근이 롤러코스터에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만 석근 역시 그녀가 한 번도 태워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봉수가 제니를 보자마자 흔들린 건 관능미 때문이었지만 본격적으로 흡수된 건 취미가 같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이유였다.

중년의 여인이 석근의 택시에 올라타더니 벤츠를 뒤쫓아달라고 요구한다. 호텔 앞에 선 벤츠에서 나이 지긋한 남자와 애교가 넘치는 젊은 여자가 내린다. 중년의 여자는 달려가 젊은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챈다. 중년 여자는 자신을 말리는 석근의 몸에 제 엉덩이가 닿자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시작부터 ‘빵빵’ 터지는 대사와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넘실댄다. ‘이런 저급한 섹스 코미디였나’라는 후회가 밀려올 겨를도 없이 재미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에 침잠되고, 그 의미에 스며든다. 처음엔 웃다가 결국 콧등이 시큰해서 극장 문을 나서는 참으로 묘한 영화다.

배급사 NEW는 한때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는 듯했지만 최근 세가 많이 약해졌다. 특히 '부산행'으로 굳은 신뢰관계를 형성한 연상호 감독의 '염력'의 흥행 참패로 많이 기가 죽은 상황. 하지만 '스물'로 좋은 인연을 맺은 이 감독은 부활의 신호탄이 될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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