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머니백>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머니백’(허준형 감독)은 마치 선댄스영화제에서 봤음직한 상업영화의 틀을 비튼 독립영화적 성격을 지녔지만 꽤 많은 시퀀스와 대사가 상업적 재미를 지녔다.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7명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통해 약자에 대한 페이소스와 강렬한 사회적 풍자를 흩뿌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민재(김무열)는 엄마에게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한 탓에 매달 사채를 빌려 월급이라고 건넨다. 그러던 중 엄마의 수술비 1000만 원이 급하게 필요하자 사글셋방을 빼서 간신히 맞추지만 때마침 나타난 사채업자 양아치(김민교)에게 전액을 빼앗긴다.

양아치는 그 돈을 보스인 조폭 출신 사채업자 백 사장(임원희)에게 건넨다. 백 사장은 사채와 불법 도박으로 번 돈을 예전의 보스이자 여당 현역 의원인 문상렬(전광렬)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바쳐왔는데 이번 선거에서 세가 밀리는 상렬의 자금 추가 독촉이 매우 심해 궁지에 몰렸다.

최 형사(박희순)는 각종 비리에 연루됐을 뿐만 아니라 백 사장의 도박장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바람에 이혼한 채 폐인처럼 사는 인물. 큰판에서 좋은 패를 쥔 그는 밑천이 떨어지자 권총을 담보로 4000만 원을 백 사장에게 빌려 베팅을 했다가 백 사장에게 보기 좋게 당한다.

최 형사의 비리를 죄다 파악한 감찰반이 들이닥쳐 일시 휴직을 명령하며 권총을 반납하라고 압박한다. 백 사장은 경기가 좋지 않다고 읍소를 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돈을 요구하는 상렬의 폭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퇴물이 된 킬러(이경영)에게 상렬을 죽여 달라고 의뢰한다.

▲ 영화 <머니백> 스틸 이미지

백 사장은 최 형사의 권총을 밑에 깐 시가 박스를 양아치에게 주며 킬러에게 제대로 배달하라고 명령한다. 양아치는 자신이 고작 담배 심부름이나 할 인물이란 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가 때마침 눈앞에 나타난 택배기사(오정세)를 협박해 물건을 전달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빼앗긴 민재가 절망해 전선줄에 목을 매는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짜증을 내며 문을 열자 택배기사가 상자 하나를 맡기며 옆집에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킬러와 이웃이었던 것. 권총을 발견한 그는 죽으려던 생각을 바꿔 양아치의 도박장을 털어 수술비를 마련하기로 한다.

도박장에서 우연히 비밀통로를 발견하고 들어가니 백 사장의 사무실. 때마침 백 사장은 상렬에게 보낼 5만 원 뭉치를 골프 백에 가득 담고 있었다. 민재는 총으로 위협해 이를 탈취한 뒤 줄행랑을 놓는다. 이 모든 정황을 파악한 양아치, 택배기사, 킬러, 최 형사 등이 민재를 타깃으로 삼는데.

민재와 택배기사는 이 작품의 모티프이자 그 자체다. 가족에게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결국 자살한 공시생, 배달한 간장게장을 수취인에 의해 머리에 뒤집어쓴 택배기사의 실화가 영화에 단초를 제공했다. 그렇듯 두 사람은 이 시대를 사는 다수 ‘을’의 표상이다.

서민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려 노력하고, 가족 등 친지들에게 하나라도 베풀고 싶으며,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고자 많은 땀을 흘린다. 그러나 잘하려고 할수록 힘만 들고 희망은 멀어진다. 다람쥐가 된 듯 쳇바퀴 안에서 세월만 낭비한다.

▲ 영화 <머니백> 스틸 이미지

자신의 조직과 사업장을 거느린 백 사장, 서민들에게 큰 위협의 대상인 양아치, 범죄자들은 물론 나약한 서민에게 무서운 존재인 최 형사, 지금은 한물갔지만 한때 무시무시한 살인마였던 킬러 등은 꽤나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지만 사실 민재나 택배기사와 다름없는 사회적 약자다.

쇠락한 킬러는 막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다 백 사장의 의뢰를 받자 뛸 듯이 기뻐하지만 실력은 녹슬었다. 그는 세월에 밀리고 후배들에게 치여 어쩔 수 없이 은퇴한 전문가를 의미한다. 경력 단절 없이 계속 일했으면 체력은 떨어져도 전문 노하우는 더 나아졌을 텐데 사회가 강제로 퇴물로 만들었다.

최 형사는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이다. 그는 분노조절장애 증세가 심하고, 강박증이 도박중독으로 변질됐다. 다수의 취업희망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무원이지만 적지 않은 직종은 살인적인 강도와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가 비리를 넘어서 강력범죄에 뛰어드는 건 그런 박탈감, 상실감, 그로 인한 분노 탓이다. 다수의 공무원은 마지노선을 넘은 최 형사와 달리 아직은 견디고 있지만 그걸 안심해선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다. 양아치는 약자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깡패지만 그 역시 백 사장의 피고용인일 따름.

빌려준 돈을 회수 못하면 가차 없이 두들겨 맞고 월급도 못 받는다. 백 사장도 영원한 ‘갑’은 아니다. 그도 깡패 시절 보스로 모셨던 상렬에게는 ‘을’이다. 물론 상렬의 도움으로 잡혀가지 않고 불법 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끊임없는 상렬의 추가 자금 요구와 폭행은 참아내기 힘들다.

▲ 영화 <머니백> 스틸 이미지

깡패가 국회의원이 된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먼 얘기지만 상렬을 그렇게 설정한 건 최 형사의 상황과 유사하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라면 서민과 달리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거쳤기 마련. 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의 언행과 개념은 시중 잡배보다 못 하다는 메타포.

영화가 가장 집중하는 곳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악마적 먹이사슬 구조다. 인간관계가 유기적이고 수평적인 선순환의 톱니바퀴가 돼야 바람직한데 마치 정글처럼 피라미드 최상위 계층을 제외하곤 모두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란 끔찍한 먹이사슬의 악순환 구조 속에서 처절하게 생존의 몸부림을 친다는 이 비극!

18억 원이란 순수 제작비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림과 내용이 풍요롭다. 풍부하고도 고급스러운 음악과 빈틈이 별로 안 보이는 미장센은 그렇잖아도 세련된 연출미를 더욱 화려하게 도와준다. 매번 블랙아웃으로 장면이 전환되는 건 이 세상의 순간순간이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암울하다는 암시다.

블랙코미디의 외형으로 참으로 많은 메시지와 철학을 전달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거운 건 아니다. 초반 각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이 지나가면 곳곳에서 코미디가 터진다. 택배기사가 운전 중 삼각 김밥을 욱여넣는 모습, 킬러가 편의점에서 싸구려 담배를 사면서 소시지를 ‘슬쩍’하는 상황은 ‘웃프’다.

가죽 벨트라고 믿고 사 목매는 데 썼더니 늘어나는 가짜고, 엄마를 속이기 위해 정장을 입고 편의점에 출근하는 설정은 ‘단짠단짠’의 중독성. 상렬의 소속당이 한우리당인 건 재치 만점. 재미를 추구하지만 뻔한 블록버스터 케이퍼 무비는 폼이 안 난다는 관객에게 안성맞춤. 101분. 15살. 4월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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