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솔리드 홍보팀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정재윤(프로듀싱, 보컬) 김조한(리드 보컬) 이준(랩, 보컬)으로 구성된 솔리드가 데뷔한 1993년부터 마지막 앨범을 낸 1997년까지 국내 가요계는 댄스 그룹의 전성기였다. 랩이 주도하는 댄스 뮤직의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를 연 서태지와아이들, 정통 힙합을 제대로 보여준 듀스 등을 비롯해 그야말로 춤추는 음악이 창궐한 시대였다.

국내 뮤지션들의 소울 이력은 신중현에서 비롯돼 김추자로 끝나는 듯했지만 이때 김건모라는 만능 뮤지션이 본격적인 유행을 열고, 솔리드가 확고한 스타일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솔리드의 히스패닉과 어반 스타일을 결합한 소울의 버라이어티는 이후 수많은 국내 뮤지션에게 영향을 줬고, 급속도 발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리드는 서태지와아이들, 듀스, 김건모처럼 자체적으로 창작, 연주, 프로듀싱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당시 넘쳐나던 댄스 그룹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터프한 남성미의 김조한과 부드러운 미소년 스타일의 이준이 이미지와 상반되는 미성과 묵직한 저음으로 각각 들려주는 보컬과 랩은 분명히 유니크했다.

이 모든 걸 조화롭게 완성해주는 건 정재윤의 작곡과 프로듀싱이었다. 소울은 김조한이, 랩과 힙합 정신은 이준이, 그리고 음악의 완성은 정재윤이 각각 맡았다. 모든 음악이 원래 춤과 밀접하니 그들의 음악도 일견 댄스 뮤직이라 할 수 있지만 비교적 가요적 정서를 배제한 어반 소울적 측면에선 달랐다.

그 솔리드가 21년 만에 새 앨범 ‘Into the Light’로 귀환했다. 신곡 4곡과 ‘천생연분’의 두 가지 새 버전, 그리고 ‘기억 속에 가려진 너의 모습’을 리메이크한 앨범은 CD와 USB 두 버전인데 USB는 카세트테이프 형태여서 1990년대의 정서를 소환하는 느낌이 짙다. ‘응답하라’ 서비스.

▲ 사진=솔리드 홍보팀 제공

일부를 제외하면 정재윤이 작곡, 편곡, 믹싱, 연주 등을 도맡아 프로듀싱을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이 밤의 끝을 잡고’와 ‘천생연분’에 1970년대 크라프트베르크가 시작한 일렉트로니카, 신스팝, 테크노에 재즈록퓨전 등을 뒤섞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시에 월스트리트와 할렘가 양쪽에 어울릴 법한 세련되면서도 끈적끈적한 도시의 외화내빈 양면의 정서를 담았다.

외형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김조한의 보컬이다. 원래 물 흐르듯 매끄럽고 부드러운 미성이었지만 이번엔 그 차원과 색깔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솔리드 시절엔 다소 러프했고, 솔로 시절엔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면, 이번엔 마치 경지에 오른 듯 힘을 빼고, 성대를 ‘인 더 그루브’에 맡긴 듯 자유자재로 ‘논다’. 마치 목뒤에서 발성하는 듯한 테크닉은 매우 돋보인다.

김조한처럼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정재윤도 그동안 다양한 작곡과 프로듀싱 활동을 통해 솔리드 팬들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달래줬다면 이준은 미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완전히 음악과 팬들 곁에서 떠나있었기에 그의 랩은 가장 반가울 듯하다. 솔리드의 트레이드마크는 이준의 포켓볼이고 그의 랩이다.

지금까지 쉬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 관리가 잘 돼있다. 그는 속도로 승부를 거는 래퍼는 아니다. 목소리의 톤과 분위기 조절로 가사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데 아주 느긋한 랩이 그의 성숙한 음악성을 잘 표현한다. 랩은 속도로 폭주하기만 하는 것도, 배틀 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1996년 고별 콘서트 현장의 감동적인 물결이 흘러가면(‘1996’) 펑키한 분위기의 ‘기억 속에 가려진 너의 모습’이 솔리드에 대한 추억을 확실하게 몰고 온다. ‘Into the Light’는 ‘추억 속에 살 필요 없어’라는 가사처럼 새로운 솔리드를 규정지으려는 듯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스타일이다.

▲ 사진=솔리드 홍보팀 제공

소울보다 재즈록퓨전에 더 가까운 정서에 테크노의 후크적 디지털 인스트러먼트 편곡은 기존 팬은 물론 10대 팬까지 아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소울 마니아를 의식한 듯 이준의 랩은 블루스의 검은색이 매우 짙다. 업 템포의 살짝 변형된 비트는 매우 강한 중독성을 지녔다. 감상용, 클럽용 양수겸장.

‘Daystar’는 기성 팬은 물론 김건모를 더 좋아했던 팬부터 20세기에 소울에 큰 관심이 없었던 계층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소울이다. 이준의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랩 가사는 확실히 눈물겹도록 반갑다. 확연히 달라진 김조한의 매력이 절정을 보여준다. 비브라토에선 두성을 살짝 가미해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고고 리듬에 가까운 단순하지만 심장박동을 자극하는 리듬 파트에 디스코적 분위기를 띤 스네어는 복고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이다.

이번 앨범의 정재윤의 프로듀싱 방향은 확실하다. 기존의 솔리드가 아날로그였다면 21년의 긴 터널을 지나 21세기에 재결합한 솔리드는 확실히 디지털의 테크네와 악수하겠다는 듯하다. 마치 토토(Toto)가 디지털을 도입한 듯한 ‘Here Right Now’가 그렇다. ‘Into the Light’의 연장선상에 있다.

‘내일의 기억’은 ‘이 밤의 끝을 잡고’를 잊지 못하는 열성 팬들을 위한 유일한 아날로그 트랙이자 바비 킴 취향의 R&B 마니아들을 위한 발라드다. 김조한의 보컬은 1973년생 동갑내기인 바비 킴의 굵은 톤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한핏줄의 뉘앙스를 풍기는 가운데 그보다 한층 더 여성적인 R&B 발라드를 완성한다.

정재윤은 기타를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래리 칼튼을 연상시키는 그의 스트링 톤은 참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능을 자랑한다. 솔리드가 화려한 조명과 인기 속으로(Into the Light) 다시 진입했음을 증명하는 음악들이다. 5월 19~20일 콘서트 티켓이 5분 만에 매진되자 18일 공연을 추가한 솔리드의 라이브를 기대하게 만드는 차별성은 확실히 아이돌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