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부탁’, 아프게 웃기고, 뿌듯하게 재미 주는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4.08l수정2018.04.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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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어 제목이 ‘Mothers’인 영화 ‘당신의 부탁’(이동은 감독, CGV아트하우스 배급)은 다양한 엄마들을 통해 모든 인간의 생존의 틀인 모성애에 대해 얘기하는 듯하지만 그런 1차원적 근시안으로만 볼 평작이 아니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과 관계에 관한 꽤 심도 있는 고찰과 시선이다.

32살 효진(임수정)은 2년 전 사고로 남편 경수(김태우)를 잃은 뒤 친구 미란(이상희)과 함께 공부방을 운영하며 사는데 임대료가 더 싼 곳을 알아볼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게다가 심신 양쪽의 건강마저 나빠져 심리 전공 대학원생 정우(한주완)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데 정우가 사귀자고 덤벼들어 당혹스럽다.

명자(오미연)는 유일한 자식 효진에 대해 매사가 불만이다. 그렇게 반대했던 결혼 뒤 힘들게 사는 효진과 사사건건 부닥친다. 입만 열면 “네가 덜컥 들어서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안 살았을 것”이라 푸념하며 딸만큼은 아내나 엄마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추구함으로써 행복해지길 바랐다고 아쉬워한다.

효진에게 갑자기 연락한 시동생이 경수의 전처의 16살 아들 종욱(윤찬영)의 양육을 부탁한다. 경수는 전처가 세상을 떠난 뒤 종욱을 키우던 중 효진과 결혼하면서 종욱을 외할머니에게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하게 됨에 따라 법적으로 계모인 효진 밖에 연고자가 없게 된 것.

미란은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지만 효진은 종욱의 학교를 찾아간다. 몸은 경수의 장례식 때보다 더 컸지만 왠지 마음은 더 위축돼 보이는 그에게서 뭔지 모를 아린 느낌을 받고 저도 모르게 그를 데리고 온다. 학원을 정리한 탓에 돈이 궁한데 종욱은 외할머니 문병을 가겠다며 돈을 꿔달라고 한다.

그러나 종욱은 문병을 가지 않고 친구 주미(서신애)를 불러내 함께 친모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닌다. 어느 날 효진은 엄마를 찾으러 다닐 비용을 벌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종욱을 발견하곤 자신의 차에 태운다. 효진은 외딴집에 사는 연화(김선영)를 찾아내는데 연화는 자신도 계모였다고 한다.

종욱은 진작 친모가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효진은 “그런데 왜 그렇게 찾아다녔냐"라고 묻고, 종욱은 “왜 날 버렸는지, 친아들이 아니라 버린 건지 물어보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효진이 “뭐라 그러디?”라고 묻자 종욱은 “불쌍해서 안 물어봤다"라고 응답한다.

종욱은 주미의 전화를 받고 나간다. 사귀던 오빠와 잤는데 피임을 했음에도 임신했다는 것. 종욱은 기꺼이 산부인과에 동행한다. 주미는 이모네 집에서 몸을 풀 것이라며 종욱에게 이모를 소개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친척이 아니라 주미의 아이를 입양하려 돈을 지불한 불임 부부였다.

종욱은 자신이 애 아빠가 돼주겠다며 설득하지만 주미는 “우리가 키우면 애가 불행해져”라며 반대한다. 청소하던 효진은 종욱의 소지품 사이에서 주미의 초음파 사진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종욱을 닦달한다. 하지만 종욱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라고, 직접 키우겠노라고 우기는데.

죽은 남편의 전처의 아들을 굳이 아들로 삼으려는 엄마, 그런 딸을 보고 속상한 엄마, 그런 친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주 평범한 갓난 아이의 엄마,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버린 뒤 보고 싶지만 감내하고 사는 엄마, 실수로 아이를 낳게 된 미혼모, 그 아이의 엄마가 되고픈 중년의 여자 등이 등장한다.

이 다양한 환경과 심리상태의 엄마들은 OECD 회원국 중 이혼율 자살률 1위인 현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결손가정을 대변한다. 한부모가족은 한 집 건너 한 집씩이라는 게 과언이 아닐 정도고, 다문화가족도 부지기수다. 조부모 대리양육 가정 역시 낯설지 않다. 이렇게 구조가 튼튼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는 어둡다.

효진을 주인공을 내세운 감독은 아직 신화와 동화를 믿는 이상주의자인 듯하다. 현실의 계모에게 남편의 유산을 놓고 다퉈야 하는 그 전처의 자식은 ‘웬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종욱을 굳이 아들로 삼으려 하고, 엄마라 안 부른다고 서운해하는 내용은 ‘백설공주’보다 아름답다.

이 불편한 판타지는 현실에 대한 역지사지의 교훈으로 기능한다. 역설의 순기능이다. 비현실적인 동화를 창작함으로써 비극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라는 이 착한 발상은 그런 효진이 내내 못마땅했던 명자가 나중에 종욱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주는 것으로 찬란하게 매조진다.

효진이 동화라면 주미는 교과서고 팩트다. 종욱이 주미의 아이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그 근거로 효진과 살게 된 게 자신이 아니라 어른들의 결정이었다고 말하자 주미는 “나도 아이가 말할 줄 알면 누구랑 살고 싶은지 묻고 싶어”라고 응수한다. 그래서 주미는 어떤 면에선 효진의 전면이자 후면이다.

효진은 종욱에게 “아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도 너희, 키우지 말아야 할 사람도 너희”라고 매우 현실적인 가르침을 던진다. 주미는 첫 경험임에도 사리분별 능력이 충분하다. 또 다른 효진이기에. 그렇다면 왜 효진은 굳이 종욱을 아들로 삼으려는 걸까? 표피적인 이유는 그에게서 남편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

‘당신의 부탁’은 외형적으론 경수가 효진에게 종욱을 부탁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효진이 종욱에게 경수를, 또 자신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녀는 3년간 경수의 기일을 챙기지 ‘못’하다 종욱이 집에 온 지 1년여 뒤 마음을 열자 비로소 함께 제사상을 차린다. 종욱의 도움 덕에 비로소 가족과 전통이 완성된 것이다.

혈연만큼 중요한 게 인연이란 예정조화를 믿는 효진이다. 건강이 안 좋아 갑상선에 이상이 오고 하혈까지 하던 그녀가 안 하던 요리에 신경을 쓰는 건 명목상 종욱을 위해서지만 사실은 자신을 챙기기 위해서다. 16살 어린 ‘아들’이 생김으로써 비로소 33살은 진짜 나이로 완성된 것이다.

명자는 구태다.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하느라 제 인생을 못 살았다고 한탄하는 그녀에게 효진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 엄마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 그나마 아빠를 만났으니 그 정도 산 것”이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명자는 만날 남의 탓만 하는 구태의연한 기성세대의 무능력에 대한 알레고리다.

감독은 영특하게 자본주의의 가치관인 돈을 매개로 명자가 효진과 종욱 사이에 녹아들게 만듦으로써 그나마 ‘틀딱’ 중에도 무지와 무능을 인정함으로써 화합할 줄 아는 이도 있다고 희망가를 부른다. 이에 비교하면 정우는 이 시대 천박한 자본주의의 전형이다. 그는 심리에 관심 없는 심리 전문가다.

자신의 전공에 애정도 전문성도 없이 오로지 연애의 수단으로 이용할 따름이다. 마치 대단한 자비를 베풀 듯 효진에게 “연애도 해줄게요”라고 자만심을 드러낸다. “선진국의 부잣집에 입양된 이가 부럽다"라는 의식은 모든 개념은 물론 영혼 철학 존재의식도 없이 오직 돈의 가치에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저질스런 저급함.

영화의 기저에는 파괴된 현대 가족의 재구성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흐른다. 존재론적 존재와 이데아적 형태와 관념이다. 아직도 이민족과의 결혼을 이단으로 여기는 구태가 잔존했고, 대다수는 혈연을 강력한 가족 구성의 잣대로 내세우지만 시대가 변했다. 무엇보다 현대인은 외롭다.

기준, 전통, 풍습 따위를 일일이 따질 여유가 없다. 존재론의 근거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이고, 그걸 알 수 있는 건 가족에게 사랑을 받을 때다. 그래서 가족의 조건은 달라져야 한다. 이데아는 초월적 실재이자 관념이다. 케케묵은 과거의 바로미터에 얽매여 관념의 변화와 자아와 초자아의 실재를 부정한다면 존재는 사라지고 행복도 없다.

효진은 플라톤을 넘어 디오게네스를 보여준다. 잔잔하지만 의외로 코미디가 존재한다. 반전도 있으니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 것. 임수정 이상으로 윤찬영이 돋보이고, 서신애가 매우 믿음직스럽다. 순수 제작비 7억 원이라니 이런 영화가 많아야 성 추문 감독이 없어도 3대 영화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러닝 타임 108분. 15살 이상 관람 가. 4월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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