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덕과 최진희의 ‘뒤늦은 후회’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4.10l수정2018.04.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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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 ‘봄이 온다’에 참가한 최진희는 자신의 히트송 ‘사랑의 미로’와 더불어 장덕의 ‘뒤늦은 후회’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었기에 북측의 선곡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현이와덕이는 ‘한국의 카펜터스’라 불리던 남매 듀엣이다. 오빠 장현(1956년생)과 여동생 장덕(1961년생)으로 구성됐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재성을 드러낸 장덕의 작곡 솜씨에 장현의 서정적인 작사를 더한 수많은 히트송을 남겼다. 1975년 ‘꼬마 인형’으로 데뷔한 후 1980년대 중반까지 풍미했다.

‘고교얄개’ 등 청춘영화가 득세를 하던 당시 이 남매는 김정훈 전영록 이덕화 진유영 못지않은 청춘스타였다. 해체 후 장덕은 솔로로, 장현은 장덕의 매니저 겸 사업가로 각각 변신했다.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장덕이 1989년 새 앨범을 준비하던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장현이 설암에 걸렸다는 것. 그리고 앨범이 나온 직후인 1990년 2월 4일 장덕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다수의 지인들은 언론이 장현을 장덕으로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덕은 남자 이름, 현은 여자 이름이란 인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덕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애초에 타이틀 트랙은 다른 것이었지만 그녀의 요절을 예언한 듯하다는 팬들의 반응에 의해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대표곡이 돼 지금까지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장현은 동생이 간 지 6개월여 지난 8월 16일 뒤를 따른다. ‘뒤늦은 후회’는 1985년 발표한 현이와덕이 2집의 두 번째 트랙이다.

장덕 작곡, 장현 작사로 완성됐다. 이 앨범에선 슈거 팝 스타일의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가 가장 크게 히트됐다. 먼저 진미령이 취입해 널리 알려진 ‘소녀와 가로등’도 수록돼있다. ‘뒤늦은 후회’는 최진희의 평양 공연으로 유명해지자 현재 온라인에 장덕의 오리지널 솔로 뮤직비디오가 널리 퍼져있다.

장덕답게 마이너 음계에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다. ‘1절-2절-코러스’의 반복이라는 비교적 단순하고 전형적인 가요의 정형으로서 4분의 4박자의 슬로 고고 형식이지만 멜로디의 변화가 고급스럽다. 가사는 실연당한 뒤의 외로움을 표현한 통속적인 내용이지만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라는 결론이 꽤 심오하다.

장현은 암이란 불가항력의 병마에 쓰러졌지만 장덕의 죽음은 당시 논란이 분분했다. 엄마는 예술가고, 아버지는 독특한 철학 사상가였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선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는 ‘설’도 나돌았지만 공식적으론 수면제 과다 복용이 사인이다.

진미령은 1977년 MBC 서울가요제에서 ‘소녀와 가로등’을 불러 유명해졌고 그게 대표곡이 됐다. 이 곡은 장덕에게 작사·작곡상을 안겼다. 이렇듯 장덕은 이미 어릴 때부터 작곡과 작사에 특별한 재능을 드러낸 천재였다. 장덕 작곡, 이은하 작사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이은하 최고의 명곡이자 가요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1986년 가요계의 주류에서 재즈는 소외돼 있었지만 장덕은 이 곡에서 과감하게 매우 재지한 작곡법을 펼쳤음에도 히트 대열에 올려 관계자와 대중을 놀라게 만들었다.

▲ YTN 화면 캡처

그러나 그녀는 늘 외롭고 우울했던 탓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화려하게 살지 못했다. 예술과 철학적 개성이 워낙 뚜렷한 부모는 일찍 갈라섰고, 이에 음악성만큼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소녀의 정신세계는 혼란스럽고 파괴돼있었다. 그걸 음악으로 달랬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모든 게 두렵고 부자연스러웠으며 암울했다. 그녀는 자폐증에 걸려 꽤 오래 칩거한 채 폐인처럼 살았다. 당시엔 공황장애가 생소했다.

1986년 ‘님 떠난 후’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그녀는 예전보다 살이 좀 올라있었다. 육식을 즐겼는데 그나마 먹는 걸로 외로움을 삭이고, 스트레스를 달랠 수 있었던 것. 결혼한 오빠의 가정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불면증과 많은 생각은 감당할 수 없었던 듯하다. 늘 곁에 수면제가 있었다.

북측에서의 ‘뒤늦은 후회’에 대한 호응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이 곡이 재조명되자 최진희는 음원을 출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이돌의 음악이 리드하고 있기에 정서에 호소하는 신곡을 찾기 힘든 현 가요시장에서 이 곡은 그 강력한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제목과 가사도 절묘하다. 장현의 유족에게 저작권료가 제대로 정산되는 것도 고인들에 대한 예의다.

장현과 장덕은 요절했지만 주옥같은 노래를 남겼고, ‘뒤늦은 후회’로 남북화해 분위기에 보탬이 됐다.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라는 가사와 ‘뒤늦은 후회’라는 제목은 혼돈과 혼란의 이 시대에 꽤 교훈적이고 교조적이다. 한때 천주교는 ‘내 탓이오’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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