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정치인, 그리고 ‘살인소설’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4.19l수정2018.04.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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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살인소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조양호 한진그룹 및 대한항공 회장 가족의 ‘갑질’ 의혹이 연일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에 오르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갑질’이란 단어가 다수의 서민의 인권과 행복을 짓밟는 대표적인 악행으로 화두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 투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권력형 성범죄인 탓이다.

권력은 사회 구조에서 높은 위치에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만 쥘 수 있는 힘이다. 조 씨 일가는 회사의 오너 및 그 직계 가족이니 ‘위치’와 돈을 동시에 쥐었다. 국가 권력의 작용인 입법, 사법, 행정 등에 연관된 정치인과 공무원 역시 개인적인 마음가짐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니, 많이 하고 있다.

영화 ‘살인소설’(김진묵 감독, 페퍼민트앤컴퍼니 제작)은 바로 그 권력과 돈의 추악함, 그걸 가진 정치인의 비열한 이면, 그걸 쥐고자 하는 어긋난 욕망을 가진 비뚤어진 자의 용틀임, 이에 피해를 입은 서민의 몸부림 등을 소재로 한다. 그런데 뻔한 진행과 결말이 아닌 블랙코미디의 스릴러라 섬뜩하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로 불거진 ‘국회의원 해외출장 전수조사’에 대한 다수의 청원이 줄을 이으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요즘 곧 있을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듯하다. 여당 국회의원 정길의 사위인 경석은 오래 그의 보좌관, 즉 개 역할을 해왔다.

아내 지은은 소설가인데 남편을 우습게 여긴다. 경석은 지은의 대학 동창 지영과 내연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정길의 명령으로 비자금을 별장에 은닉하러 가는데 승용차에 지영을 대동한다. 그런데 일이 자꾸만 꼬여간다. 잡견 한 마리를 치어 죽이고, 마트 주인을 때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집배원을 친다.

▲ 영화 <살인소설> 스틸 이미지

이 모든 일엔 별장 관리인이라는 순태가 연결돼있고, 경석의 모든 걸 다 아는 순태는 경석을 갖고 노는 듯 어르고 협박한다. 순태는 오래전 지방신문을 통해 등단했지만 아직 변변한 작품 하나 없는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한다. 그는 별장 앞마당에서 고기를 삶아 경석과 지영에게 대접한다.

경석은 순태가 준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피운다. 음주운전 뺑소니에 마약. 이 모든 게 드러나면 시장선거 후보 지명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내키지 않는 결혼에, 아내의 멸시와 장인의 천대를 견뎌낸 건 바로 장인의 후광과 지원으로써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였는데 반나절의 실수로 물거품이 될 위기다.

영화는 주인공인 순태와 경석에 집중한 듯하면서도 주변장치에 소홀하지 않는 가운데 ‘갑질’과 정치에 대해 ‘피식’ 웃음이 절로 흐를 법한 블랙코미디의 풍자를 지뢰처럼 깔아놓고,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경석의 외도를 알고도 모른 체하는 지은은 젊은 남자를 노리개로 삼고 있다.

결혼에 대한 비판이다. 조현아 혹은 조현민 같은 ‘금수저’로 살아온 지은은 사랑으로 맺은 평생의 반려자, 혹은 남편이란 보호자가 필요했던 게 아니라 가족관계로 맺어졌기에 권력 유지에 조력하는 개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많은 정·재계 집안이 그렇게 정략적으로 결혼 등의 인맥을 형성한다는 얘기다.

▲ 영화 <살인소설> 스틸 이미지

정길은 보수 성향의 집권 여당 국회의원의 전형을 보인다. 교사 시절부터 출세 지향적이었던 그는 이내 정치인으로 변신해 비리와 야합으로 국회의원이 됐고 부정하게 챙겨 조성한 비자금을 활용해 승승장구해왔다. 어설픈 사위의 잘못을 꾸짖으려 폭행을 일삼지만 대중 앞에선 겸손한 가면을 쓴다.

그가 돈을 펑펑 써 경석을 시장으로 만들려 하는 건 딸이나 사위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투견에 대한 투자와 같은 개념이다. 애완견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심부름을 시키기 좋을 뿐만 아니라 주인을 확실하게 보호하기 때문이다. 지은이 경석의 외도를 알면서도 ‘방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서민들이 마냥 피해자일까? 순태는 모든 게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첫 등장 때 경석이 자신의 애완견을 치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뒤 낫을 들고 그 뒤를 쫓을 땐 서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후 내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경석과 지영을 대한다. 심지어 지영이 경석보다 순태를 더 신뢰할 정도다.

그는 마트 주인과 집배원과 더불어 다양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그런데 그 어느 말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정길이 자신의 별장의 풍광을 위해 마을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댐을 건설할 때 이를 몸으로 막던 환경운동가를 암살해 댐에 수장했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이 지역은 정길의 표밭이자 전통적으로 여당의 지지기반이었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 정길, 경석, 지은은 악이다. 세상엔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있기 마련. 적지 않은 정치인과 재벌은 그들의 능력보다 결탁과 더불어 서민의 무지 혹은 희생에 의해 그 자리에 오르고 부를 축적한 뒤 결속으로 유지한다.

▲ 영화 <살인소설>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대중은 피해자 코스프레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이고 현명한 주권행사로써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결론이다. 아프다고 엄살만 부릴 게 아니라 병의 원인을 찾고, 그게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 때문에 발병했다는 걸 깨달아, 적극적으로 치유함으로써 잘못된 걸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은 선하다. 겉으로 봤을 땐 그렇다. 하지만 그 선함 뒤에 가려진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판단 착오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럼으로써 악한 사람에게 권력을 쥐여주거나 혹은 선한 사람조차 악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소름 끼치는 경고다. 경석은 이기적이지만 독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영의 캐릭터 자체가 교훈이다. 원래 경석의 연인은 지영이었다. 지영을 통해 지은을 알게 된 경석은 출세를 위해 지은과 정략결혼을 한 뒤에도 지영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상식적, 도덕적으로 경석을 외면해야 마땅할 지영은 그렇지 못했다. 경석의 돈과 향후 보장된 출세로 자신이 누릴 특혜 때문이다.

지영은 적지 않은 대중의 천박한 통속성이다. 지성을 포기하고 철학을 외면하며 자기애와 이데아를 상실한 자본주의에의 복종이다. 영화에서 개가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인 것과의 연계성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개는 인간의 친구를 넘어선 식구다. 하지만 아직도 보신탕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개를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일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사람은 개와 달리 문명을 이룩하고 문화를 형성하며 지성을 안다. 스스로 주인을 만들어 개가 될 것인가, 심부름꾼을 잘 뽑아 사람도 개도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참으로 영악하게 얘기와 메시지를 풀어나가는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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