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꽤 많은 남성들이 적어도 한때나마 자신이 부인과 함께 집안 일을 나눠 하는 자상한 남편이 되어 감사와 칭찬을 들으며 살 것을 꿈꾸던 적이 있습니다. 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편들 모두가 원래부터 집안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들이 하는 소꿉장난이나 공기놀이, 줄넘기 놀이를 신기하게 보고 자기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여러 이유로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점점 어른이 되어 갑니다. 그렇게 자란 남성들에게 결혼이란, 어렸을 때 못했던 소꿉놀이를 비로소 할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그래서 부인과 함께 신혼 살림을 마련하러 쇼핑을 하거나 가구를 배치하며 가전제품을 설치하면서 자신이 남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즐거워합니다. 소위 ‘깨소금 볶는’ 시기인 거죠. 그러나 문제는 ‘그 때, 거기’까지 라는 겁니다. ‘언제 어떻게 해서’인지도 모르게 집안 일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남편,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곳을 잃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짐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인으로 남아있는 가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인의 황당함과 분노 그리고 실망은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남편과의 불화로 이어지곤 합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요? 그리고 단순히 남편에게 집안 일을 시키는 것을 넘어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은 결혼 전후에 잠깐 나타났던 남편들의 관심이 책임감이 아닌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호기심에서 비롯된 행위들은 몇 번만 지나면 더 이상 지속할 의미와 재미를 잃게 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집안 일들이 재미있어서 하고 있는 부인들도 별로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보다 남성들은 새로운 것에 관심을 쏟는 특성이 강한 편이고 또 자신이 의미 있는 활약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이런 점을 인식하는 부인이라면 남편에게 반복적인 가사 분담을 요구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일감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부인들이 주의할 점은 그 결과에 대한 평가 대신 그 처리 과정에서의 남편 나름의 독창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인들의 관점에서는 남편이 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내색을 않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아무리 쉽고 간단해 보이는 집안 일도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요령을 익혀야만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 남편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남편들 역시 자신이 서투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굳이 그런 것을 지적 받으면 그런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기보다는 아예 그런 일을 회피하고자 하는 충동을 따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부인은 “역시 힘이 좋은 당신이 하니까 내가 했을 때보다 낫다”라고 일단 인정을 하고 나서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편하더라”고 넌지시 말을 해두면 그 남편이 다음에는 그 방법을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했던 남성이 집안 일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들로는 부부 싸움도 한 몫을 합니다. 싸우다 보면 상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부인이 문제를 삼는 것에만 집중을 하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오냐, 내가 앞으로 집안 일에 도움을 주나 봐라!’하고 오기를 부리곤 합니다.

물론 부인들로서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말이나 되느냐? 내가 싸웠다고 자기한테 밥을 안 해준다면 어떻겠느냐?” 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남성에게는 이렇게 애 같고 옹졸하고 쩨쩨한 면이 있는 걸! 따라서 남편이 이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싸우고 있을 때라도 “당신이 집안 일을 잘 도와주는 것은 고마운데, 아직 우리 형편에 자가용은 무리라고 생각해”라는 식으로 칭찬과 반대를 분명하게 나누어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하더라도, 남성에게 숨겨져 있는 옹졸함을 달래주고 자극하지 않는 것이 부인에게 더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남편이 집안 일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부인들 자신이 살림에 대해서 알게 된 것들을 부부 사이가 좋은 신혼 때부터 남편과 함께 공유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콩나물을 삶을 때는 뚜껑을 열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 익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찌개를 끓일 때 무 호박 버섯 고추를 어떤 순서로 넣어야 하는지, 또 각 그릇들을 살 때에도 그 크기와 생김에 따라서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지 등에 대해서 배운 것들을 남편에게도 이야기해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젖먹이 아이 트림시키기,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등은 대부분의 부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남편이 모르고 있으면, 남편의 도움을 얻을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혹시나 '왜 남편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느냐?'고 오해하실 분이 있을까봐 첨언하는데, 지금은 부인들이 활용하실 만한 조언을 드리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무엇보다 남편이 집안 일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단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남편의 가정에 대한 관심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겠는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앓느니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남편을 바꾸기 위한 노력들은 무척 힘들고 성가신 과정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일 가치는 충분히 있으므로, 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연구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만 있다면, 장차 집안 일을 혼자 도맡느라 너무 힘들다는 비명을 지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부부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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