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관객의 그 어떤 선입견도 초월하는 엄청난 작가적 상상력과 슈퍼 빌런의 니힐리즘이 넘실대는 영화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 최근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해 쓴소리를 냈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오히려 그가 관객들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웅변한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불화로 어벤져스는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지만 인피니티 스톤 6개를 확보해 우주 인구의 절반을 몰살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타노스의 폭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히어로 중 일부는 연락이 끊겼거나 일부러 잠행 중이고 또 일부는 능력이 변했다.

그 와중에 타노스의 심복들이 미국에 출몰한 데 이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와칸다를 집중 공격한다. 이에 블랙 팬서의 군대에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팔콘, 워 머신, 윈터 솔저 등이 합류해 대적한다. 묠니르를 잃은 토르는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니다벨리 행성을 향한다.

지구에서 힘겨운 전투가 벌어질 때 타이탄 행성 등 우주에선 어벤져스 일부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함께 타노스의 질주를 막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펼친다. 그러나 타노스의 전투력과 의지는 슈퍼 히어로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다. 닥터는 시간 이동으로 미래를 알아보는데.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그리스 신화가 기초다. 무의 시대에 혼돈은 밤(죽음의 장소)의 여신 에레보스를 낳았고, 그녀는 바람과의 사이에서 사랑, 질서, 미, 빛, 낮, 대지, 하늘 등을 창조했다.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대지)는 여러 자식 중 마지막으로 거대한 덩치에 막강한 힘을 가진 티탄족을 낳았다.

티탄족 막내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증오한 우라노스를 죽인 뒤 그의 저주를 막기 위해 하데스, 포세이돈 등의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삼켰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의 기지로 막내 제우스는 무사히 성장해 아버지를 죽여 형과 누나들을 구해준 뒤 누나 헤라와 결혼해 올림포스의 주인이 됐다.

하늘의 지도자가 된 제우스는 바다를 포세이돈에게, 지하의 저승세계(타르타로스)를 하데스에게 각각 지배하도록 맡긴 뒤 티탄족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티탄족이 이길 뻔했던 전쟁은 크로노스에게 불만이 많았던 그의 형제들인 헤카톤케이르와 키클롭스(사이클롭스)의 도움을 받은 신들이 승리한다.

'토르와 헐크'나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와 헐크는 막상막하의 전투력을 보이지만 아무리 헐크가 우월한 변종이라 할지라도 북유럽의 신 중 최고로 강한 천둥의 신 토르를 이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는 비교적 모든 정황이 상식적인 선에서 풀린다.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토르는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주피터), 즉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다. 목요일이란 영어 Thursday는 ‘토르의 날’이다. 아이슬란드로 이민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토르의 신봉자로서 성스러운 모임을 목요일에 가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어의 죽음인 타나토스를 변형한 타노스는 티탄(거인) 족의 아버지 크로노스다.

프로이트는 자기보존적 본능과 성적 본능을 합한 삶의 본능을 에로스라 했고, 공격적인 본능들로 구성되는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라고 했다. 타노스는 원작에서 죽음을 꿈꾸는 허무주의자로 그려진다. 영화에선 의외로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완성된다. 그는 사적인 욕심이 없다.

은하계를 정복해 유일신이 되려는 이유는 사리사욕이 아니다. 타이탄 행성이 자원 고갈과 인구과잉으로 위기에 처하자 인위적으로 개체 수의 절반을 제거함으로써 종족의 보존을 지킨다. 가모라의 종족의 일부를 제거함으로써 역시 종의 보존을 도왔고, 가난에 찌든 그녀를 양녀로 입양해 전사로 키웠다.

가모라는 가족과 종족의 원수인 타노스를 저주하고 증오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그의 부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어벤져스 등 히어로들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 아스메긴(신의 포스)을 지닌 최고의 신 토르는 가벼운 면이 있고, 아이언맨은 천하의 바람둥이이니 지구의 제우스다.

타노스의 목표는 은하계의 모든 종의 보존이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 튕기면 종의 개체의 절반을 제거할 수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힘을 갖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이다. 절대 재물이나 여자 때문이 아니다. 여자 때문에 망한 트로이의 왕자 패리스나 초왕 항우와는 격이 다르다.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워낙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거나 방심하면 흐름을 놓치니 주의할 것. 킬링 타임용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단지 그런 용도라면 149분이나 엔딩 크레디트 뒤의 쿠키영상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아깝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 등의 경계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시퀀스의 일부야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기승전결도, 결론도, 향후 반전의 여지도 모두 허를 찌르는 엄청난 창의력과 열린 결말이니 상상력 동원은 금물. 누군가는 죽는다. 하지만 신화나 원작에서 보듯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호하다. 산다고 다 존재하는 게 아니고, 죽었다고 다 사라진 게 아니다.

게다가 의외로 주제는 사랑이라니, 이 엄청난 철학! 일부 히어로의 미미한 활약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어벤져스를 보려고 표를 끊었다 타노스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 극장 문을 나설 확률이 높다. 토르가 거인족의 장갑(건틀렛)에서 잠자는 굴욕을 치른 신화는 엄청난 힌트다.

토르는 아버지 오딘을 죽인 이복누나를 죽였고, 스타 로드는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죽였다. 가모라는 타노스를 죽이려 하지만 타노스는 가모라를 보호하려 한다. 신화(특히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서 골육상쟁은 비일비재하다. 섣부른 상상은 금물, 엄청난 반전에 혀를 내두를 준비!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