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장영실, 자동 물시계(자격루)를 발명하다 [최기호 칼럼]

세종대왕 즉위 600돌 기념 특집 문학박사 최기호 교수l승인2018.04.27l수정2018.05.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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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최기호 교수의 세종대왕 이야기] 세종대왕의 지혜와 가르침으로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1434년에 발명하였다. 물의 부력과 낙하하는 공의 힘으로 시간마다 저절로 종이나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이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들자 너무 기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공이 작 지 아니하므로 호군(護軍)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세종실록> 1433년(세종 15) 9월 16일

그리고 장영실에게 호군의 벼슬을 주려 하였다. 이에 많은 대신들이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황희 정승이 “김인은 평양의 관노였으나, 용맹하여 태종께서 호군을 제수하신 적이 있으니 장영실만 안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바로 정4품의 호군 벼슬을 내렸다.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의 아버지 장휘는 본래 몽골 원나라 소주ㆍ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녀라고 하였다. <아산장씨족보>에는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하여 귀화한 이의 후손이 장영실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장영실은 비천한 기녀에서 태어난 동래현의 관노비였다.

그러나 장영실은 자신의 비천함을 탓하지 않고 꿈을 키우며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는 솜씨가 공교(工巧)하고 제련, 축성(築城), 농기구 수리 등에 뛰어난 기술이 있어서 마침내 세종대왕에게 발탁되어 궁궐 노비가 되었다.

세종대왕은 재주가 많은 장영실을 발탁하여 1421년(세종3)에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명나라로 유학을 보내 천문학을 공부하게 하였다. 명나라는 몽골 원나라 곽수경이 아라비아 천문학을 일부 받아들여 신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전통 천문학에 선진 천문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서 장영실 등을 유학시킨 것이다.

장영실이 귀국하자 노비의 신분을 벗겨주려고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주려고 이조판서 허조와 병조판서 조말생에게 의견을 물었다. 허조는 ‘기생의 소생을 임용할 수 없다.’며 반대했고, 조말생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두 대신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좌의정 유정현에게 물으니 ‘임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1423년에 장영실을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내려 노비의 신분을 벗겨 줬다.

세종대왕은 장영실뿐만 아니라 이순지, 이천 등도 발탁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없는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는 “세종대왕은 자격루, 간의대, 흠경각, 앙부일구 등을 제작하였는데, 극히 정밀하고 세밀하였으며, 모두 세종대왕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었다. 오직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기묘한 솜씨로 만들었기에 세종대왕은 그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고 하였다.

세종대왕은 이처럼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사람을 부리는 용인술이 뛰어났으며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중시하는 폭넓은 철학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대왕이기 이전에 뛰어난 과학자였고, 공평무사한 판관이었으며 인품이 넘치는 선비였다.

그리고 장영실은 1441년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였는데, 이것은 이탈리아의 카스텔리(Castelli)의 1639년 우량계나 프랑스(1658), 영국(1677)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발명이었다. 또 수표(水標)를 만들어 청계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하였다.

우리나라 ‘발명의 날’은 세계 최초로 1441년 5월 19일(음 4월 29일) 측우기를 발명한 날을 기념하고 국민에 대하여 발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발명 의욕을 북돋우기 위하여 지정한 날이다. 세종대왕이 1442년에 측우기를 체계적으로 규격화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측정하였다.

세종대왕은 하늘의 질서를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다는 의미의 왕립천문대인 간의대를 장영실에게 명령하여 만들었고 혼천의를 만들었다. 또 세종대왕은 흠경각을 침소 옆에 만들어 항상 백성을 생각하였고, 세계 유일의 오목해시계와 앙부일구를 발명하여 시간을 백성에게 나눠준 셈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조선의 역법을 만들어 칠정산 내외의 편찬 등 우리만의 역법 체계를 구축했다.

일본인 와다나베 가즈오가 1996년 발견한 소행성을 발견하고 그 소행성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명명하고 국제천문연맹(IAU)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세종대왕이 간의대, 등 15세기 천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천문학자로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을 세종대왕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15세기, 세종대왕 시대의 과학기술은 세계에서 조선이 최고의 강국이었다. 1983년 이토준타로(伊東 俊太郞) 등이 펴낸 <과학사 기술사 사전(科學史技術史事典)>을 보면 그 당시 최고 기술은 명나라는 5건이었고, 일본은 한 건도 없었다. 동아시아 이외 세계는 28건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조선은 무려 29건의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백성 사랑과 인재중심의 과학기술 철학을 실천하였다. 백성을 위한 훈민정음의 창제하였고 백성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였다. 세종대왕은 정말 뛰어난 성군이었다.

▲ 문학박사 최기호 교수(세종대왕 즉위 600돌 국민위원회 공동대표)

[문학박사 최기호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울란바타르대학교 전 총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상무이사, 외솔회 회장
한국방송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문학박사 최기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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