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윤도현 SNS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처음으로 북측 정상이 남측 땅을 밟은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에서도 연예인은 빛났다. 윤도현은 자신의 SNS에 이날 만찬장에서 재회한 조용필, 현송월 천지연관현악단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 누리꾼의 훈훈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정 정당 등 소수를 제외한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환호하고 감격한 그 자리에 초청된 조용필은 그동안 불린 가왕이란 상징성을 뛰어넘는다는 면에서 각별하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린 스타라는 외형 하나만으로 평가받으면 안 되는 뮤지션이다.

세계 팝시장은 미국이 만들었고, 주도했으며, 시장의 바로미터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위대한 록밴드는 영국의 비틀즈로 인식된다. 그 이유는 K팝을 포함한 현재 주류 대중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록이란 장르로부터 파생된 모든 하위 장르를 일찍이 비틀즈가 한 앨범에서 완성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틀즈는 록의 바이블이자 백과사전이자 바로미터다. 조용필이 위대한 건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팝 등 모든 외국 음악과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 등을 모두 집대성했고, 이를 잘 버무려 실연한 거의 유일무이한 뮤지션이기 때문에 인기보다 더 위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한 초창기 그의 단골 레퍼토리는 바비 블랜드의 ‘Lead me on’이다. 원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진한 리듬앤드블루스의 이 곡을 부름으로써 본격적인 보컬리스트로 나서는 계기가 됐고, 음반 취입의 기회까지 잡게 된다. 그렇게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1977)로 스타덤에 올라선다.

▲ 출처=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SNS

이때만 해도 트로트라는 용어는 거의 쓰지 않았고 대중가요 혹은 ‘뽕짝’ 정도였다. 가요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란 엄청난 역사적 상처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대중적 유행가다. 구전가요 등 전통적 국악을 바탕으로 엔카와 어울리지 않을 수 없었고 서양 음악의 작곡법과 편곡 등이 외형을 완성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런 형식의 전형이다. 서양의 고고 리듬에 편곡 기법, 동양의 동쪽 끝에 있는 한반도의 정서가 가득 찬 멜로디와 가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창, 리듬앤드블루스, 록 등 대중가요 장르의 거의 모든 것을 녹여낸 조용필의 절묘한 창법과 특유의 음색이 노래의 매력을 완성했다.

폭발적인 인기에 놀란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동안 노래를 잃었던 그는 1979년 정규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로 컴백해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최초로 100만 장 판매(추정) 돌파와 전곡 히트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 특히 그는 최초로 신시사이저를 도입한 ‘단발머리’로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다.

작사, 작곡, 편곡을 해내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한다. ‘창밖의 여자’는 피아노 위주의 배킹으로 진행되다 스트링이 가미되는 클래시컬한 편곡으로 가요의 고급화에 박차를 가했다. ‘단발머리’는 생경한 일렉트릭 드럼과 폴세토(가성) 창법의 도입으로 가요계의 판도를 바꿨다.

‘잊혀진 사랑’ ‘돌아오지 않는 강’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대전 블루스’ ’정‘ ‘슬픈 미소’ 등은 민족적 전통가요의 맥을 잇는 고급스러운 ‘가요’로서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는 매우 긍정적인 모델이다. 타령과 소울이 적절히 어우러진 목소리와 창법은 지금의 후배 트로트 가수와는 좀 다른 차원과 수준이다. 

▲ 사진=KBS 화면 캡처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의 재해석은 요즘 그 어떤 트로트 가수라도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절정의 음악성이자 실력이자 전통의 맥이다. 배우는 연기를, 가수는 노래를 잘 하면 된다. 그런데 조용필은 시나리오를 쓰고 소품 미술 조명 등을 책임지며 연출까지 모두 해내는 연기파 배우라 할 수 있다.

그는 대다수가 인정하는 20~21세기 대한민국의 최정상 뮤지션이다. 박정현은 R&B의 소울로써, 임재범은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에 발군의 가창력으로써, 백지영은 가장 슬픈 창법으로써 유니크하다면 조용필은 모든 능력을 골고루 갖췄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우뚝 서있다.

첫째, 창부터 가요, 록, 발라드, 소울, 재즈, 일렉트로닉 등 전방위에 걸친 음악성을 지녔다. 둘째, 그런 다양한 장르를 모두 소화해내는 탁월한 가창력과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 셋째, 기타 실력과 더불어 모든 악기에 대한 관심과 해석력과 소화력. 넷째,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포용력.

물론 한때 그도 절정의 인기에 도취해 뮤지션이 아닌 스타로 산 적도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간 쉼 없이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오르는 가운데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산증인으로서 꿋꿋이 허리를 세워 살아온 건 인정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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