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3’)의 흥행세가 엄청나다. 관객 대다수가 박수갈채를 보내는 가운데 오역 논란도 일파만파다. 그만큼 이 영화에 관심과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의 흥행은 재미 여부에 달려있다지만 여운과 메시지까지 담았다면 금상첨화다. 마블 히어로 무비가 강한 이유다.

‘아이언맨’(2008)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마블 히어로 무비는 여러 주인공들을 각자 내세운 유닛들로 펼쳐지는 가운데 언젠가 함께할 것이란 밑밥을 깔더니 ‘어벤져스’(2012)에서 한자리에 모아놓은 가운데 벌써 3편째에 이르렀다. ‘어벤져스’ 1, 2편도 엄청났지만 이번엔 규모와 철학이 사뭇 다르다.

마블 히어로의 리더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으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뒤 냉동인간이 됐다 현재 해동된 스티브 로저스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거대 무기 제조회사의 대주주 토니 스타크다. 둘은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적인 모델들이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는 전형적인 미국 제국주의와 ‘아메리칸드림’ 선전용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스티브는 왜소한 체구와 다양한 병력 탓에 번번이 모병 심사에서 탈락하지만 그의 의지를 높게 산 어스킨 박사의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발탁돼 세럼 약물에 의해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이후 그는 정치인에 의해 선전용으로 전락해 모병 선전과 군 위문 행사 무대에 오르지만 앞서 입대한 친구 버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생사가 불투명해지자 전선에 뛰어들어 전세를 완전히 뒤집는 히어로가 된다. 미국이 지구촌의 리더가 된, 혹은 돼야 하는 당위성의 프로파간다가 다분히 엿보인다.

토니 스타크는 타고난 ‘금수저’다. 그의 아버지 하워드는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어스킨이 지능 담당이었다면 그는 기술력과 재력이었다. 당시 이미 국가가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전쟁의 모든 무기를 대는 회사를 소유했고, 그만큼의 기술과 과학의 힘을 지녔었다.

토니는 그런 아버지의 재력과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아이언맨 슈트를 만들었다. 스티브가 노력형 아메리칸드림이라면 토니는 타고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정부와 UN이 내놓은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놓고 찬성(토니)과 반대(스티브)로 갈라선다.

자유분방한 토니가 정책에 순응하고, 정부의 선전용 앞잡이였던 스티브가 주체성을 앞세워 반대한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다. 토니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사실 아나키스트에 가깝고, 별 볼 일 없던 스티브는 전쟁 채권으로 한몫 잡으려는 정부의 속셈도 모르고 전쟁 영웅이 됐기 때문.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마블 히어로 무비는 이렇듯 영리한 교묘함의 철학을 내내 발휘하기에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챙길 수 있었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벤져스3’는 슈퍼 히어로들을 모두 출동시켰으면서도 엉뚱하게 빌런인 타노스를 고뇌하는 영웅으로 신격화함으로써 또다시 관객의 허를 찌른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후 헐크는 우주로 사라진 뒤 토르와 만난다. 지구의 어벤져스는 토니와 스티브의 갈등으로 사실상 해체된 상황. 전지전능에 가까운 울트론을 무찌른 비전은 진화를 거듭해 인간이 된 후 완다와 사랑에 빠짐으로 인해 토니에게서 벗어나 은신 중이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제정신을 찾은 버키는 스티브를 구해준 뒤 블랙 팬서에게 의탁해 와칸다에서 쉬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우주를 떠돌던 중 타노스에게 당해 기절한 채 유영 중이던 토르를 구해준다. 토르는 묠니르를 대신할 강력한 무기를 얻고자 난쟁이 행성으로 향한다.

타노스가 차곡차곡 인피니티 스톤을 탈취하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원래 강한 데다 인피니티 스톤 1개씩 장착할 때마다 인피니티 건틀렛의 힘이 엄청나게 확장되기에 어벤져들을 상대하면서 그다지 큰 위기를 겪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밑엔 어벤져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블랙 오더란 부하들까지 즐비하다.

그런데 타노스가 전 우주를 파괴할 만한 힘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으려는 이유가 꽤 복잡하다. 하이드라는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욕 때문에 정의와 부닥치지만 타노스는 우주 전 생물의 종의 보존이다. 개체 수의 과잉과 식량난으로 모두 멸절될 위기에서 인구를 절반으로 줄여 종을 지키자는 목적.

▲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그래픽 노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왓치맨’에서 오지만디아스가 60억 명을 구하기 위해 그중 일부를 희생시키려 하고, 유일하게 그를 막을 수 있는 신적인 존재 닥터 맨해튼이 동료 히어로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원칙주의자인 로어셰크를 공격한다는 설정을 연상케 한다.

로고스(법칙과 준칙에 대한 분별력과 이성)의 논리학, 파토스(정념, 정열, 충동)의 수사학, 에토스(관습, 습관)의 윤리학 등의 대립이다. 만약 타노스가 복수심이나 정권욕이나 부에 대한 욕심 때문에 행동했다면 영화에 대한 지지도는 떨어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번 전쟁의 밑밥을 깔면서도 그 내용은 없었다.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타노스와 다르다. 캡틴 아메리카는 공무원(군인)이란 이유로 관성적이고, 아이언맨은 자신의 회사가 군인을 지킨 게 아니라 테러집단을 도왔다는 깨달음에 각각 앞장선다. 드랙스는 오직 아내와 딸에 대한 복수심이고, 심지어 스파이더맨은 치기 어린 영웅심리로 덤빈다.

범죄자 출신 스타로드, 로켓, 그루트 등은 돈이 목표다. 적지 않은 히어로들은 캡틴처럼 관성적이거나 습관적이며 영웅심에 근거하기도 한다. 하이드라 팀원들이 그랬듯 블랙 오더는 맹목적인 충성심, 혹은 광신도적 입장에서 타노스에 복종한다. 과연 양측의 로고스와 파토스와 에토스 중 어느 쪽이 옳을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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