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 사랑받지 못한 킬러와 소녀의 첫사랑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5.02l수정2018.05.1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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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옹>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볼륨을 높여도 왠지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은 스팅의 허스키 보이스와 유사한 톤의 기타가 처연하고 허허롭게 울려 퍼지며 시작되는 ‘Shape of my heart’를 더욱 유명한 명곡으로 만든 영화 ‘레옹’(뤽 베송 감독)은 가장 많은 국내 개봉 횟수를 지녔을 것이다. 오는 6월 4번째 개봉될 만큼의 매력은 뭘까?

비리 형사 스탠스(개리 올드먼)는 부하들과 아파트에 들어가 마약 밀매자인 한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을 무참하게 살해한다. 장을 보고 돌아온 피해자의 14살 딸 마틸다(내털리 포트먼)는 이 광경을 목도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죽는다는 걸 파악해 집 문을 지나쳐 맨 끝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39살의 살인청부업자 레옹(장 르노). 문의 작은 구멍으로 이 장면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레옹은 문을 열어 소녀를 들이고, 그렇게 두 사람은 한식구가 된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레옹은 어린 시절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는다. 여자 친구는 자신을 사랑한 아버지에게 죽는다.

레옹은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죽인 뒤 살인청부업자의 길에 들어섰다. 마틸다 역시 단란한 가정과는 거리가 먼 불운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동생을 죽인 스탠스에게 복수하고자 레옹에게 돈을 건네지만 거절당하자 총을 들고 경찰청사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스탠스에게 붙잡힌다.

▲ 영화 <레옹> 스틸 이미지

위험하다며 거절했던 레옹은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청사로 쳐들어가 간신히 마틸다를 구하지만 이제 공권력을 초토화시킨 중죄인이 됨으로써 전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글을 배우고, 그 보답으로 킬러 능력을 길러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칫 소아성애자를 미화했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던 이 영화가 극찬 속에 수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명작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결코 표피적으로만 볼 수 없는 아주 명확한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 주인공이 선악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드러내는 게 이유.

영화는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가,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사는 건가’를 묻는다. 마틸다는 “나는 다 자랐어요, 나이만 어린 것뿐”이라고, 레옹은 “나는 나이는 들었지만 다 자라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마틸다가 “사는 건 언제나 힘든가요? 내가 어리기 때문인가요?”라고 묻고 레옹은 “아니, 언제나 그래”라고 답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나이로만 볼 게 아니라 삶에 찌든 세상 다수 군상의 표상으로 보는 게 이해가 쉽다. 어리지만 세상 풍파 다 경험하고 벌써 담배를 피우며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는 마틸다. 킬러지만 건강을 위해 우유만 마시고, 화초를 키우는 게 취미이며, 관성적이지만 순수한 레옹.

▲ 영화 <레옹> 스틸 이미지

경찰 간부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마땅할 스탠스는 공권력을 사리사욕에 남용하고, 동네 꼬마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있다. 법, 진리, 도덕 등 당연히 지켜져야 할 질서가 무너진 채 서민들만 만날 피해를 보고, 불행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컬한 구조를 허무주의로 바라본다.

레옹은 마틸다와 서로 사랑함을 확인하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안 죽어, 이제 막 태어났는데. 네 덕에 삶이 뭔지 알게 됐어. 침대에서 잠도 자고”라고 말한다. 산다는 건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힘든 여정이다. 무미건조하게 타성에 젖어 살아온 그는 죄의식을 느낄 수조차 없을 만큼 인식론과 존재론이 없었다.

문맹인 그가 번 돈을 은행이 아닌 유일한 친구에게 맡기는 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데다 제도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신세계는 사춘기에서 성장이 멈췄기에 자기철학도 없었다. 오로지 킬러로서의 감각과 육체 능력만 키워온 그는 그냥 살기 위해 사냥하는 악어와 같았다. 악해서가 아니라 본능 때문.

마틸다는 아파트에 들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영악하다. 워낙 산전수전 다 겪었기 때문. 게다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집 문을 지나쳐 레옹의 초인종을 누를 만큼 기지도 뛰어나다. 마지막에 마틸다는 레옹의 화분 속 화초를 학교 마당에 심는다.

▲ 영화 <레옹> 스틸 이미지

레옹은 스스로 자신을 화분과 같은 폐쇄된 세계에 가둔 채 세상과 불통하며 살았고, 마틸다는 무책임한 아버지에 의해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채 밀폐된 공간에서 갇혀 살았다. 그러나 레옹에 의해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레옹은 숨 쉬는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게 참된 삶이란 걸 깨달았다.

레옹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건 자신의 행복한 인생을 선택한 것이고, 마틸다에게 진정한 자유의 행복을 선사한 것이다. ‘Shape of my heart’의 갬블러가 도박을 하는 이유는 돈도 명예도 아니라 ‘신성한 기회의 기하학’을 찾기 위함이다. 그는 철학자다! 하지만 연인은 그래서 그에게서 떠난다. 회자정리.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 이별이든, 이사든, 이직이든, 죽음이든. 하지만 좋은 만남 뒤의 이별은 그 사람을 몇 단계 성숙시킨다. 어떻게 사는 게 낭비하지 않는 삶인지, 행복한 삶인지, 그래서 온화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할 뿐 돈이나 직위 따윈 고매한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촬영 당시 13살이 채 안 됐던 포트먼은 오늘날의 연기파를 예고할 정도로 눈부신 연기력을 보였다. 올드먼의 목을 꺾는 장면 등 명불허전 악역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살벌함, 천진함, 공허함 등이 공존한 르노의 레옹 캐릭터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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