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시작된 성추행 폭로 운동인 ‘Me too’캠페인은 최근 한국에서도 검찰, 문화예술계, 대학가를 넘어 재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며 연일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투 운동은 그간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에 억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에게 이를 공론화할 용기를 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이른바 ‘펜스룰’, ‘여혐/남혐’논란 등 성별간 갈등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미투 운동의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에게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거나 형사고소를 한 경우 무고죄가 성립할 수도 있는데, 오늘은 관련 사건의 내용과 법원 판결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명예훼손죄 관련 사안]

A는 모 대학의 미술학과 학생회장으로 있던 중 B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소문이 돌자 B교수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만들어 교내에 게시했습니다. B교수는 성추행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 결국 투신자살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여학생을 성추행 한 사람은 B교수가 아닌 다른 과 교수인 C로 밝혀졌습니다.

법원은 “대자보에 기재된 내용이 성추행에 대한 의혹 제기가 아닌 목격자와 증거자료까지 있는 사실인 듯 인식하도록 했다”고 지적하며, “A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학교에 허위 대자보를 게시했고 이에 피해자인 B교수가 정신적으로 시달리다 자살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A가 당시 피해 학생을 알고 있었지만 대자보를 붙이기 전 소문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소문에만 근거하여 허위 대자보를 게시해 피해자를 자살까지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A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명예훼손죄란 “공연히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합니다(형법 제307조).

위 사건에서는 폭로된 성추행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졌으므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만(형법 제307조 제2항),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이러한 행위가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형법 제307조 제1항).

다만 형법은 제310조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어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하여 법원은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형법 제310조가 적용되어 무죄”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는 만큼 성폭력 피해사실을 SNS등에 게시하기 전에 진실한 사실인지 여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무고죄 관련 사안]

A(여)와 B(남)는 2016년 4월경 이성만남을 중개하는 온라인 채팅어플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이들은 만남을 가진 날 여러 술집을 옮겨다니며 술을 마셨고 함께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한 모텔에 투숙했습니다. A는 모텔방에서 1시간 정도 맥주를 나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이때 B가 A 옆에 누워 성행위를 시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A는 "처음 보는 남자와는 안 잔다", "만지지 마라"며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계속된 B의 시도에 성행위가 이루어졌습니다.

A는 이튿날 B에게 강간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A는 경찰서에서 "B가 몸을 누르고 옷을 벗기려고 해서 소리 지르고 울면서 하지 말라고 저항했는데도 나를 강간했다"고 진술했고, B는 상호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며 A를 무고죄로 고소하며 맞섰습니다.

1심 법원은 “A가 성관계 후 숙박업소를 나오면서 머리를 정돈하고 신발을 고쳐신는 등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며, 강간 신고 후에도 똑같은 채팅 어플에 접속하는 등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며 B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A의 주장을 거짓으로 보아 A의 무고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일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돼도 터무니 없는 허위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 그 정황을 과장한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뒤, “A가 극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된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의 강압이 수반된 상태에서 내심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도 배척할 수 없다”면서 원심을 깨고 A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심 법원의 이러한 판단에는 “A가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요구한 적이 없고, 모텔에 가자고 먼저 제의하지도 않았으며, 성관계를 하는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소극적이었던 점”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고죄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신고하는 죄”를 말합니다(형법 제156조).

위 사건에서 ‘허위사실’과 관련하여 법원은 피해자가 일부 피해사실을 진실과 다르게 진술하였더라도 그러한 진술이 사실에 기초하여 피해정황을 다소 과장한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허위사실’로 볼 수 없어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성폭력 범죄는 두 사람만이 한 공간에 있었던 경우가 많으므로 고소를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혐의를 입증하거나 반박할 명확한 증거를 내놓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칫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가해자를 특정하여 SNS등에 피해사실을 폭로하거나 가해자를 고소하였다가는 오히려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여 수사를 받거나 심지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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