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최종 스코어는 과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1049만여 명을 넘을 것인가? 더 나아가 한국 최고 기록인 ‘명량’의 1761만여 명도 갈아치울 것인가? 이렇듯 엄청난 흥행세를 잇는 건 마블이 그만큼 영리하기 때문이고, 선택한 관객은 그 이상 영특하단 의미다.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는 매 작품마다 로튼 토마토로부터 70~90점대의 평점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MCU는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회장을 필두로 하는 제작위원회가 전체적인 윤곽을 짠 뒤 작품별, 단계별로 감독에게 맡기는 제작 형식을 취한다.

파이기를 비롯한 제작위원회의 인재들이 그만큼 똑똑하다는 얘기. 각 히어로들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상대와 싸웠지만 ‘어벤져스’(2012)를 통해 한자리에 모였고,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활약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까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합류했다.

MCU의 공통적인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개성은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는 쿠키영상이다. 이렇듯 매 작품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페로몬을 뿌림으로써 흥행과 직결시키는 것이다. 특히 ‘토르: 라그나로크’의 쿠키영상의 다음 얘기로 시작되는 이번의 인트로는 시작부터 관객을 충격에 빠뜨린다.

슈퍼 히어로 무비로는 경쟁사인 DC 코믹스가 앞서갔다.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1978),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 등으로 시작된 슈퍼맨과 배트맨의 활약이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2005)로 시작된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정점을 찍었지만 역전을 알리는 예고편이 됐다.

▲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스틸 이미지

두 코믹스의 대결에서 보듯 20세기에서 넘어온 슈퍼 히어로에 대한 관객의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 제작진이 훌륭한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관객들이 슈퍼 히어로에 열광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흥행의 비결이다. 일각에선 ‘만화 같다’고 평가절하하지만 ‘영화는 꿈의 공장’이란 절대공식과 맥락이 같다.

어른이 되면 이념과 가치관이 많이 바뀌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꿈과 성향마저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다. 잔존하는 것도 많은데 판타지가 그렇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티탄 신족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형상을 한 인간을,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동물을 각각 만들었다.

그런데 머리가 나쁜 에피메테우스는 아무 생각 없이 동물들에게 온갖 신체적 능력을 갖춰준 반면 선견지명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별로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측은지심에 불을 선물했고, 번개의 주인인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다 헤라클레스에게 구원을 받는다.

이렇듯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아무리 폐활량이 좋아도 악어의 2시간 잠수능력을 깨려다간 수장된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건 절대 불가능하고 UFC 헤비급 챔피언이라도 다 자란 사자와 맞붙을 순 없다. 우사인 볼트의 ‘할아버지’라도 치타의 최고 시속 110km를 뛰어넘을 순 없다.

벼룩이 자신의 키의 100배를 뛰고,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10배를 들어 올리지만 인간의 능력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초능력을 꿈꾸기 마련이다. 게다가 인간 사회는 동물의 그것과 달리 매우 복잡다단해 억울하고 부조리한 사연이 차고 넘친다. 인맥과 경제력이 부족하니 초능력이 절실하다.

동물은 본능 우선이지만 사람은 이성과 철학을 알기에 판단이나 행동 전에 생각하는 걸 미덕으로 친다. 그래서 올바른 가치관이란 걸 형성했다. 정의와 신의다. 동물은 먹거나 살기 위해 싸우지만 사람에게는 영웅심리라는 정의 구현의 정신이 적용된다. 경제논리도, 신념도 포함된다.

▲ 영화 <어벤져스> 스틸 이미지

슈퍼 히어로는 현실과 동떨어져있지만 사람들이 신화를 만든 심리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신화는 곧 역사나 철학과 직결된다. 마블은 신화에 나올 법한, 혹은 토르처럼 신화 속 ‘실존’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신화나 종교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뒤흔든다. ‘취해라, 취해라’라고.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블랙 팬서’ 등 각자의 시리즈를 가진 슈퍼 히어로를 보는 데 관객들은 지갑을 여는 걸 주저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페로몬이 듬뿍 묻은 결정적인 떡밥이 투입됐다.

관객들은 ‘어벤져스’ 1, 2편을 통해 저 먼 신의 나라 아스가르드에서 날아온 토르까지 가세한 지구의 슈퍼 히어로들이 한데 뭉치면 얼마나 강한지 봤다. 그 통쾌한 카타르시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고, 중국도 개방한 지 꽤 됐으며, 중동은 더 이상 흥미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데다 공포감만 조성된다.

이미 할리우드는 본격적으로 외계인을 넘어선 우주 저편의 신들을 끌어들여야 지갑이 열린다는 걸 충분히 깨달았다. 시리즈 중에 타노스가 얼마나 가공할 힘을 가진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인피니티 스톤 6개를 취했을 때 전 우주를 날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경고를 충분히 했다. 떡밥 끝.

이번 오역은 논란이 아니라 팩트라는 게 루소 감독의 입으로 증명됐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노스에게 타임 스톤을 넘길 때 한 대사는 내년에 개봉될 ‘어벤져스4’(가제)에서 발생할 대반전을 예고한다. 닉 퓨리가 ‘마더 XX’라고 할 때 보여준 캐릭터는 마블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 히어로 캡틴 마블이다.

▲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스틸 이미지

한 캐릭터만 내세워도 앞을 다투는 관객들인데 모든 히어로들을 한자리에 모은 영화를 선택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호갱’이라는 용어가 시장경제에 버젓이 유통되긴 하지만 그건 제품의 퀄리티와 가격 간의 타당성을 몰랐을 때 얘기고 영화는 입장료가 대동소이하다는 점에서 관객의 선택은 정답이다.

적은 제작비의 영화들은 대부분 길이 100분 내외다. 마블은 2시간을 훌쩍 넘기는데 이번엔 무려 2시간 반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시간 눈이 즐겁고 가슴이 흥분되는데 선택을 안 할 리 없다. 게다가 ‘착한 사람’이 ‘나쁜 놈’을 죽여 사람들을 구해준 뒤 잘 먹고 잘 살았더라는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마블은 한 작품을 마무리할 때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가운데 관객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떡밥들을 뿌려 놨다. ‘토르: 천둥의 신’에서 토르를 죽이려다 오히려 죽었던 로키가 쿠키영상에 나타나는 식이다. 이번엔 시작부터 충격적이고 끝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쿠키가 오히려 희망적이다.

내년 3월 ‘캡틴 마블’의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기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5월 ‘어벤져스4’로 전편의 흥행 기록을 깨겠다는 마블의 야심이 노골적이긴 하지만 1만 원대로 3시간을 즐긴 뒤 시원한 맥주 한잔할 수 있다는 희망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고군분투하는 서민에겐 꽤 대단한 ‘사치’다.

첨단의 기술이 만든 기기묘묘한 캐릭터와 눈부신 비주얼, 여기에 범우주적 존재론적 철학까지 담으니 안줏거리로 훌륭하다. 정의와 부정은, 진실과 거짓은, 우방과 적은 누구인지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왜 사는지. 그리고 사는 게 뭔지 한숨을 내쉰다. 타노스와 가모라가.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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