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jtbc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2018년 5월 드라마 배우 브랜드 평판 1, 2위에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주인공 정해인과 손예진이 나란히 올랐다. 정해인이 바야흐로 돌풍의 시작이라면 손예진은 롱런의 중간점검이자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석권한 ‘멜로 퀸’의 재확인일 것이다. 손예진은 시작부터 대세였고, 현재 확실한 대세다.

그녀는 18살이던 2000년 영화 ‘비밀’에서 5번째로 이름을 올린 조연으로 데뷔했지만 이듬해 포카리스웨트 CF 모델로 발탁되며 그 음료가 표방하는 이미지 이상 순수한 청순함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단숨에 드라마 2편의 주인공을 꿰차고, 다음 해 영화 ‘연애소설’에서 차태현, 고 이은주와 주연을 맡는다.

20살 친구 지환(차태현) 경희(이은주) 수인(손예진)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이한 감독의 데뷔작인데 가장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릴 정도로 깊은 인상으로 각인됐다. 4년 뒤 세상을 떠난 이은주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더 키우고 있으며, 코미디 전문 배우 차태현의 이미지를 확 바꿨다.

신예 손예진의 연기력은 이은주보다 낫다고 할 순 없었지만 결코 밀리지도 않았다. 물론 차태현이란 든든한 중심축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민낯 촬영도 꺼리지 않은 그녀의 연기 집중력과 세 캐릭터의 우정과 사랑의 사연은 크고 깊은 여운을 오래 진행시키고 있다. 손예진은 그때부터 대세로 우뚝 선다.

죽마고우인 수인과 경희가 우연히 지환의 카메라 프레임 안에 들어간다. 친구가 되자는 지환의 제안대로 그때부터 셋은 붙어 다닌다. 지환은 수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어느 날 갑자기 두 여자는 불편하다며 그의 곁을 떠난다. 그로부터 5년 뒤 지환에게 발신인이 없는 사진 우편물이 배달된다.

수인의 첫사랑은 경희였다. 그러나 아직도 동성애를 ‘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그런 소수성적 취향이 아니라 그냥 입 맞추는 게 제일 좋은 ‘사랑’이었다. 물론 수인은 지환에게서는 이성적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경희도 지환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서 지환을 포기한 것이다. 

▲ 영화 <연예소설> 스틸 이미지

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굴곡진 롤러코스터를 손예진은 썩 괜찮게 소화해냈다. 공교롭게도 이은주가 여주인공을 맡은 ‘번지점프를 하다’가 1년 전 개봉돼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대학생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인우의 군 입대로 금세 헤어진다.

그 사이 태희는 세상을 떠나고 인우는 어느덧 고교 교사가 됐다. 아직도 태희를 잊지 못하는 인우는 학생 중 현빈(여현수)이 태희의 유물을 갖고 있고, 그녀의 버릇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걸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그는 안 된다고 강한 의지를 이끌어내면서도 어느덧 그에게 빠져든다.

동성애 논란이 있었지만 이는 숲을 못 보고 편린만 보며, 전체적인 틀을 간과한 채 지엽적인 사고에 갇힌 것일 뿐 작가의 의도를 몰랐던 것. 두 작품 모두 순수한 사랑 그 자체를 말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사랑은 그 대상이 이성만이 아니다. 부모도, 형제도, 애완견도, 하다못해 필기구도 각별히 사랑할 수 있다.

하물며 어릴 때부터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낸 친구다. 수인이 경희를 사랑하는 감정은 ‘잠을 자고 싶은’ 게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게 그저 좋을 뿐이고, 그래서 항상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다. 손예진은 여세를 몰아 이듬해 영화 ‘클래식’과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로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의 샛별 자리를 확고히 한다.

2004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수많은 관객을 울리고 이듬해 23살 때 ‘외출’에서 일탈하는 주부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며 연기파의 길에 접어든다. 쉼 없이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더니 2013년 ‘상어’와 다음 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연이은 흥행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망라하는 가장 확실한 ‘흥행 퀸’에 오른다.

후속 영화 ‘비밀은 없다’(2015, 25만여 명)의 흥행 참패로 잠시 주춤했던 그녀는 이듬해 타이틀롤을 맡은 ‘덕혜옹주’로 그야말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흥행 돌풍의 첨병이 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36살의 그녀로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상의 작품 조합이자 배역이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 이미지

‘지금~’의 초등학생 아들을 둔 주부 수아는 도식주의적으로 나이에 딱 맞는 캐릭터.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해 평범하게 살 법한 주부의 모델이다. ‘밥~’의 35살 커리어 우먼 진아는 손예진의 현실과 유사하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 친구 경선의 동생인 31살 준희(정해인)를 보자마자 남자의 향취를 느낀다.

수아가 과거의 여자라면 진아는 딱 현재의 전문직 여성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정말 절묘한 선택이었다. ‘꿈의 공장’인 영화에선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역할을, 이젠 시청자의 일상이 돼버린 드라마에선 아주 현실적인 캐릭터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맡아 흥행과 완성도를 모두 잡은 건 일단 행운이다.

연예스타의 인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팬만큼 반대세력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로 질시 등 비정상적인 성향도 있지만 해당 연예인의 문란한 사생활이나 그릇된 인성 등이 더 크기 마련인데 손예진에겐 그런 잡음이 거의 없다. 오히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 회사에 적을 둔 의리가 돋보인다.

특히 매니저의 경조사에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거금을 냈다는 미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지금까지 연애에 대해 ‘설’조차 없었다. 인터뷰를 통해 예전에 몰래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외롭다고 털어놨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얘기다. 인성에 대한 잡음이 없었던 건 평소에도 연기했거나 진짜 선하기 때문이다.

수아의 과거 대학생과 현재 주부를 모두 소화했다. 여고생 시절까지 맡지 않은 건 감독의 의도인지 그녀의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현명했다. 평범한 여자라면 엄마여야 할 나이에 여대생 역할로 욕먹지 않은 건 여배우로서 책무에 충실했다는, 그리고 엄마 역할도 마다하지 않은 자세는 이제 성숙하다는 증거다.

진아는 똑 부러질 것 같은 그녀의 이미지와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나이도 딱 맞다. ‘N포세대’에 속한 젊은이들은 연인인 남녀의 나이가 역전된 세대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여자가 연상인 게 매우 흔하다. 일본에선 ‘너는 애완동물’이란 드라마가 2003년 방송됐고, 원작 만화는 그전에 나왔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스틸 이미지

남자. 노력해도 돈이나 배경이 없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에 취직하기 어렵다. 간신히 취업한다 해도 그게 없으면 승진이 안 되고 쉽게 도태된다. 그나마도 소수. 다수는 오랫동안 ‘취준생’이고, ‘알바’를 전전하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언감생심. 그나마 잘생기고 어리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배경이 든든하거나 최고 실력을 가진 전문직 여성은 재벌 남자와 결혼할 수 있지만 ‘그냥 전문직’일 경우는 거리가 멀다. 자신과 조건이 엇비슷한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양에 차지 않는다. 결혼은 포기하고 말 잘 듣는 연하의 남자와 적당히 연애하면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외국 유학을 다녀왔고, IT 전문가로서 실력도 출중하며, 뭣보다 심신 양면에서 ‘심쿵’하게 만드는 정해인이 ‘누나’들의 대세라면 유사한 조건의 손예진은 모든 ‘남동생’들의 판타지다. 20대 걸그룹 멤버조차 연애를 하는 장면이 포착되는데 손예진은 그 나이에 단 1번도 없었다. 게다가 외롭단다.

실연당한 진아는 ‘어른’으로 훌쩍 자란 준희에게서 연정을 느끼고는 그걸 억제하면 영원히 불행할 것 같은 마음에 경선과의 갈등을 불사하면서까지 사랑을 진행한다. ‘남동생’들은 ‘레슬러’에서 ‘절친’의 아버지 유해진을 사랑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이성경보단 손예진 쪽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누난 내 여자니까 너라고 부를게’라던 이승기에게 여자들이 환호한 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주다. 그 모듈레이션은 이제 손예진에게서 몇 옥타브를 넘어서고 있다. 20대 ‘대배우’가 희소한 이유는 연기력 때문이다. 20대에 비교적 그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손예진의 영역은 당분간 신성불가침일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