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소녀’, 꿈 펼치라는 존재론적 청춘물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5.10l수정2018.05.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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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타이완 시에춘이(사준의) 감독의 영화 ‘안녕, 나의 소녀’는 이젠 익숙한 타임 슬립을 통해 펼쳐지는 청춘물의 외형을 지녔지만 단순한 성장 드라마라든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청소년 멜로의 지평을 뛰어넘는다. 주인공 리우이하오(류이호)와 쑹윈화(송운화)는 꽤 매력적이고 연기력도 괜찮다.

2014년. 일본 도쿄로 출장 온 35살 회사원 정샹(리우)은 한 연예 기획사를 찾아가 은페이(쑹)를 만난다. 고교 때 단짝 친구들과 결성한 6인조 문 밴드의 보컬리스트이자 그의 첫사랑이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에 스카우트돼 ‘제2의 아무로 나미에’로 불렸던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정샹의 제안을 은페이는 미공개 공연 리허설이 있어 안 된다며 뿌리친다. 정처 없이 유흥가를 헤매던 정샹은 가발을 쓰고 퇴폐업소 전단지를 뿌리는 은페이를 발견하고 손목을 낚아챈다. 은페이는 “좀 모른 척하면 안 되냐”며 울먹이더니 집으로 데려가 처지를 털어놓는다.

그녀는 이미 앨범 발매나 콘서트가 불가능한 용도폐기 상태였다. 타이완으로 돌아가기 창피해 온갖 ‘알바’로 근근이 먹고사는 중이었다. 술이 불콰해진 은페이는 “자고 가라”며 정샹을 유혹하지만 그는 결혼할 연인이 있다며 거부한다. 정샹은 어릴 때부터 천식으로 고생한 그녀의 줄담배를 저지한다.

▲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 이미지

3년 뒤. 정샹은 연인과 헤어졌고, 은페이는 병사했다. 문 밴드의 멤버들은 장례식에서 재회해 술을 마신다. 정샹은 은페이와 사귀었던 아셩에게 “네가 바람을 피워 은페이를 아프게 했다”며 원망을 하고, 아셩은 절망에 빠진 은페이가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등 심하게 자학했기에 자신도 힘들었다고 맞선다.

술자리를 벗어난 정샹은 밤거리를 헤매다 노숙자 행색의 중장년 여성을 발견하곤 “차를 타고 집에 가라”며 동전 몇 개를 쥐여준다. 여인은 정샹에게 꽃 세 송이를 주며 “하룻밤에 한 송이, 꽃은 필 때 가장 예뻐”라는 말을 남긴다. 꽃향기를 맡은 정샹은 갑자기 환각상태에 빠져 쓰러진다.

눈을 뜨니 1997년 고교 졸업 3일 전. 은페이는 자신의 주도로 오디션에 참석했고, 그 때문에 요절했으니 이제 그녀를 오디션에 안 보내면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정샹은 온갖 꾀를 짜내 그녀의 오디션 보러 가는 길을 막는다. 과연 정샹의 계획이 성공해 은페이를 살리고 첫사랑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한때 책 제목에서 비롯된 ‘아프니까 청춘’이란 유행어가 있었지만 지금은 유병재의 ‘아프니까 환자’가 설득력이 크다. 요즘 청춘들은 많이 아프다. 어른들이 세상을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든든한 배경을 두지 않으면 ‘명문’대에 가는 것도,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승진하는 것도, 오래 버티는 것도 힘들다.

▲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 이미지

타이완인데 왠지 낯설지 않다. 은페이의 부모는 걸핏하면 싸우고, 집안을 쓰레기 처리장과 다름없게 방치할 정도로 가정에 무관심하다.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은페이는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녀는 그래서 비상구로 일본을 선택한다.

은페이의 속사정을 잘 아는 정샹은 고교 때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그녀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모든 걸 일일이 챙겨주지만 성장한 뒤 결국 자신 때문에 그녀가 요절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진작 고백을 하고 그녀와 맺어졌다면 역시 요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후회감에 괴로웠다.

여섯 친구에겐 모두 꿈이 있었다. 정샹은 셰프였지만 잦은 해외출장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샐러리맨에서 멈췄다. 은페이는 일찍 꿈을 이뤘지만 타국의 산업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도태됐다. 어른들은 ‘젊을 때 사서 고생하라’고 종용하지만 그건 보약이 아니라 노후의 고질병일 따름인 게 현실이다.

고교생이 주인공이지만 전자오락실, 다마고치, 즉석사진, 발목 토시, ‘미스터 초밥왕’, U2, AC/DC, 카세트테이프 등 30대 이상의 연령층이 반길 만한 추억거리가 가득 담겨있다. 요절한 스타 가수 장위셩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인공들의 고교 때 우상이었던 그는 꿈이란 영화의 큰 소재와 일맥상통한다.

▲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 이미지

밴드 이름이 달이다. 정샹의 “달은 멀고도 그리운 존재”라는 대사에 모든 게 함축돼있다. 달은 추억이고, 꿈이다. 정샹은 “다 잘할 필요 없다”고 하고, 은페이는 “다 잘해야 돼”라고 반박한다. 정샹은 “남의 생각대로 살 필요 없다”지만 은페이는 “바라던 삶을 포기하느니 세상의 조롱을 당하겠다"라고 받아친다.

은페이는 오디션을 말리는 정샹에게 “왜 꿈을 믿지 않게 된 거지?”라고 실망을 드러낸다. 정샹은 그녀에게 “넌 별이니까 너를 태워 빛을 내야 해”라고 데뷔를 부추겼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샹은 은페이와 여인에 의해 꿈과 인생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다. 타임 슬립은 무기력해진 그의 성장통이었던 것.

여인은 “해가 뜨면 지고, 태어나면 죽고, 얻고 싶은 걸 얻으려면 뭔가를 내놓고”라며 “꽃은 아름답지만 시드니까 그 전에 향기라도 맡아”라고 윤회와 운명을 매개로 한 예정조화를 설파한다. 그리고 은페이는 “꿈을 향해 노력하는 자체로 완벽해. 절망도 감내해야지”라는 존재론적 결론을 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맛볼 수 없는 진한 감수성과 꽤 깊은 철학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인데 소품과 비주얼 등이 쉽고 친숙해 지루할 틈이 없다. 여섯 주인공의 소소한 에피소드는 매우 웃기거나 절로 웃음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104분이 짧게 느껴진다. 12살 이상. 5월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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