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 솔리드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22년 만에 컴백한 R&B 트리오 솔리드(정재윤, 김조한, 이준)가 지난 18~20일 3일 동안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기념 콘서트를 성황리에 열었다. 3일 내내 객석을 가득 매운 30~40대의 관객들은 나이를 잊은 채 마치 10~20대가 즐기는 듯, 클럽에 온 듯 몸을 흔들고 환호했다.

김조한이 메인 보컬을, 이준이 랩, 내레이션, 디제잉을, 그리고 정재윤이 작곡, 편곡, 프로듀싱, 기타 등을 각각 맡은 솔리드는 3명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음악을 들려준 걸로 유명하다. 이는 각자의 전문분야의 능력이 탁월함은 물론 끈끈한 화합과 조화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비트박스 세계대회 챔피언인 KRNFX를 중간에 게스트로 초대한 걸 제외하면 이들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오로지 자신들만의 다채로운 형태의 음악으로 채우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그들이 믿는 건 오로지 음악이고, 팬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 역시 음악뿐이라고 굳게 신뢰하는 듯했다.

2달 전 발표한 컴백 앨범의 타이틀곡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로 포문을 연 뒤 ‘데이스타(Daystar)’ ‘히어 라이트 나우(Here Right Now)’ 등의 신곡을 연속해서 연주한 이유는 간단했다. 솔리드가 돌아왔고, 솔리드는 여전하면서도 달라졌다는 강력한 주장이었다.
 
솔리드는 1993년 흡사 듀스를 연상케 하는 R&B 힙합 ‘이젠 나를’을 타이틀곡으로 한 앨범으로 데뷔했다. 3명 모두 재미동포 출신으로 당시 한국말이 서툴러 홍보 상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음악성으로 승승장구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댄스 뮤직 전성기의 서막이 오르던 때.

▲ 사진 제공 = 솔리드

김건모와 박미경이 R&B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그걸 유행시키자마자 서태지와아이들과 듀스가 등장해 힙합의 포문을 열었고, 음반 제작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댄스그룹을 발굴해내던 시기였다. ‘본토’ 출신의 솔리드의 블루스는 확실히 품격이 달랐다. 네이티브 발음 덕도 있지만 음악성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21살에 불과했던 정재윤의 프로듀싱은 기존 프로듀서의 스타일과 달랐고, 김조한(20)의 소울풀한 창법은 혈통이 의심될 정도였으며, 이준(21)의 래핑은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할 만큼의 진한 소울을 풍겼다. 그런데 이제 유행이 변했다. 그래서 그들이 손잡은 게 EDM.

신곡들은 한결같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편곡 기법과 스피드와 리듬을 입었다. 그럼에도 리듬앤드블루스의 색깔과 창법과 소울은 여전하다. 기존 팬들의 향수에 부합하면서도 요즘 10~20대와 대화를 하겠다는 제스처다. 흔한 말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정서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

무대는 우주적이고 몽환적인 레이저빔 등의 조명과 기하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면서 판타지한 동영상으로 치장됐다. 마블 시리즈에 익숙한 관객들과의 소통. 스트라토캐스터를 메고 등장한 정재윤은 블루노트와 밴딩부터 하드록 스타일의 팬타토닉까지 실력을 뽐내더니 후반부엔 랩까지 구사했다.

R&B 보컬리스트로서 박정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김조한은 정재윤과 재회함으로써 유니크함이 더욱 강해졌다. 원래 미성이지만 더욱 마일드해졌고, 힘을 뺀 소프트한 테크닉은 단연 돋보였다. 더 맑게 다듬어졌고, 유연하며, 매우 깊어진 데다 ‘인 더 그루브’는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에 올랐다.

▲ 사진 제공 = 솔리드

국내 스크래치 디제잉의 선구자 격인 이준은 KRNFX과 경이로운 수준의 힙합 듀오 무대를 꾸몄다. 이준의 여전한 디제잉 솜씨도 놀라웠지만 KRNFX의 비트박스는 왜 세계 챔피언인지 입증할 정도로 타악기는 당연하고 관악기까지 아우를 정도로 ‘신의 경지’를 넘나들었다.

무대 상단엔 ‘SOLID’와 ‘DILOS’라는 글자가 걸려있었다. 딜로스는 팬클럽 이름이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신이 태어난 델로스 섬의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 무인도지만 고대엔 페르시아에 저항한 그리스 도시국가연합 델로스동맹의 중심지이자 문명과 무역의 중앙이었다.

한때 대한민국 R&B의 델로스였던 솔리드가 컴백한 이유는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공연 말미에 “20여 년 만에 만났으니, 20년 뒤에도 계속 만나자"라고 했다. 그것이다. 머지않아 50살이 되는 그들은 아이돌 그룹처럼 스타덤을 꿈꾸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에너자이저’가 되고 싶은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노련미를 물씬 풍기는 멤버들은 그러나 “아직도 떨린다"라고 했다. 음악 속에 살아온 그들은 여전히 젊기에 꿈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혁신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R&B의 전통과 힙합의 정신을 고수한다. ‘이 밤(음악)의 끝(절정에 올라)을 잡고(팬들과 소통) 싶은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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