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독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22일 영화 ‘독전’(이해영 감독)이 32만 6000여 명의 개봉 스코어로 마블의 ‘데드풀2’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물리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개봉된 지 한 달이 지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야 그렇다 칠 수 있지만 일주일밖에 안 된 ‘데드풀2’를 넘어선 건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독전은 ‘싸움의 사기를 북돋워 줌’ 혹은 ‘혼자 판단하거나 결정함’(독단)이 아닌 ‘독한 놈들의 전쟁’이란 뜻. 형사 원호(조진웅), 마약 조직 후원자 연옥(김성령), 이사 브라이언(차승원), 상무 선창(박해준), 졸개 락(류준열), 중국 마약계 거물 하림(김주혁), 그의 연인 보령(진서연) 등의 캐릭터는 매우 독하다.

누아르, 케이퍼, 미스터리, 액션 등이 혼합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캐릭터 무비라고 정의하는 게 쉬울 듯하다.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반전의 핵심은 마약 조직의 실질적 리더인 미스터리한 인물 이 선생의 정체가 누구인가에 있다. 그런데 관객들을 더욱 몸살 나게 만드는 건 각 캐릭터의 힘이다.

대한민국 목포에서 태어난 중국동포 하림과 보령은 한마디로 미치광이다. 마약과 술에 절어 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도대체 기쁜지, 불쾌한지, 상대방에 대해 친근한지, 적대적인지 가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어디로 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선생으로 의심되는 브라이언도 미친놈이긴 마찬가지. 대기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러나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려났다. 그 이유는 광기 때문. 겉으로는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그의 믿음은 하나님 혹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걸 핑계로 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오만.

▲ 영화 <독전> 스틸 이미지

자신이 곧 신앙이자 법이자 질서다. 믿음을 설파하고 선함을 자처하지만 사실은 가장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표리부동한 괴물이다. 표피적으론 멀쩡한 기업의 총수지만 이 선생에게 돈을 대 마약장사로 돈을 버는 연옥 역시 마찬가지. 이 선생이 배신하자 원호에게 의탁했음에도 기 싸움에서 그를 압도한다.

겉으로만 보면 락은 가장 나약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칼’이 있으니 ‘갑’들의 폭력과 전횡에 익숙해진 참을성, 그리고 그를 한 식구처럼 믿고 따르는 농아 남매 동영(김동영)과 주영(이주영)이다. 남매는 누구보다 뛰어난 마약 제조 기술을 가진 데다 ‘깡’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가장 투명해야 할 원호는 사실 제일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주인공이면서도 사생활이 베일에 가려져있으며 그토록 미친 듯이 이 선생을 잡고자 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 형사로서의 직업정신과 사명감이라는 도식적인 설명을 대기에 부족한 건 상사가 그토록 말리는 데도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에 대한 분노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소명의식과 부푼 정의감, 그리고 생계의 안정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경찰을 시작했지만 중년이 된 지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이 선생을 잡으면 승진은 물론 국가적 영웅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번번이 그에게 농락당한 데 대한 낭패감과 자괴감이다.

▲ 영화 <독전> 스틸 이미지

영어 제목이 ‘Believer’인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인물들 중 선하거나 믿음직한 사람들이 없다. 그들은 서로서로 안 믿는다. 이 선생을 잡기 위해 손을 잡은 원호와 락부터 그렇고, 조직의 실질적인 수뇌인 브라이언과 그의 오른팔인 선창이 그렇다. 선창은 락에게 폭력적이지만 오히려 믿음은 있다.

광기 어린 하림은 부하들을 마치 소모품 다루듯 하지만 퇴폐적인 보령을 아내인 듯, 쌍둥이인 듯 유일하게 신뢰한다. 동영과 주영 역시 농아가 아닌 사람 중 믿는 사람은 오직 락밖에 없다. 락이 수화를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얄팍한 동정심이 아닌, 진정성과 인간미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보다 더 사악하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보다 더 미쳤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면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사람들이 신화를 안 믿고, 종교에 회의를 갖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말하고자 함이다.

니체의 가치전도와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과 언어철학의 접목이다. 실용주의는 ‘이론 간의 충돌은 같은 현상에 대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데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문제이지 진정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두산백과)라고 주장했다. 철학을 과학에 우선한다고 본 이성주의 철학과 다르다.

▲ 영화 <독전> 스틸 이미지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가치전도에 앞장선다. 브라이언은 기업가지만 마약 사업에 더 힘을 쏟은 아버지처럼 미성년자를 부려 마약을 만들고 재벌인 연옥은 거기에 투자한다. 누구보다 뛰어난 마약 제조 실력을 지닌 농아 남매는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무척 해맑다. 자연주의적 가치론이다.

락은 애완견에 집착한다. 그가 원호를 돕는 이유는 오로지 이 선생의 행동으로 의심되는 공장 폭발사고로 인해 애완견이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지만 워낙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주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궁창에서 성장한 하림도 그렇다.
 
브라이언은 철학의 종합선물세트다. 부하들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고 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그는 실용주의와 언어철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같은 한국어지만 그의 언어는 다르다. 종교를 핑계로 자신이 신처럼 군림하고, 자본주의를 종교화한다. 하림은 타락과 혐오식품을 즐기는 가치전도의 표본이다.

겉과 속이 다르기는 원호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가 이 선생에 집착하는 건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인격이 파괴되기 직전의 내재된 불안심리에서 비롯된 가치전도다. 락을 업신여기면서도 브라이언으로부터 그를 지키려는 무식한 선창이 오히려 가장 정상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아이러니!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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