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내가 총리나 국회의장 등 고위직이고, 가족들이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가족을 위해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총리나 기업 회장 등 고위직이라면 본인의 임신 출산을 결심하거나, 아내의 출산 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일 못지않게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몸소 실천하는 본보기들이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은 지난 4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불출마하고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48세의 10선 의원이어서 공화당의 차세대 대권 주자로 꼽혀온 그의 은퇴 이유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 라이언 의장은 “내가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큰 딸이 16살이다. 10대인 세 아이들에게 ‘주말 아빠’가 아닌 ‘풀타임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왼쪽)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 △(오른쪽) 존 키 뉴질랜드 총리의 사임을 전한 잡지 표지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 2016년 말 총리직 사임을 선언했다.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의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총리직 수행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었으나 그동안 아내를 너무 외롭게 했다.”는 것. 두 자녀도 사생활 침해와 압박감에 시달렸단다. 그는 3연임도 가능한 상황에서 재임 8년여 만인 지난해 초 56세의 나이로 사임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재신더 아던(37) 뉴질랜드 총리는 6월 첫 아이를 낳고 6주 동안 출산 휴가를 떠난다. 그 동안 윈스턴 피터스 부총리가 총리 대행을 맡는다. 아던 총리는 "육아는 (낚시 방송 진행자인) 남편이 주로 맡기로 했지만 나도 총리이자 엄마로서 두 가지 일에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2010년 아내가 넷째 아이를 낳자 출산휴가를 2주 동안 사용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2015년 아내가 첫 딸을 낳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해 둘째 딸 출산 때도 2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사용한 바 있다. 

▲ (왼쪽) 저커버그 가족 △(오른쪽) 아기를 안고 회의를 진행하는 뉴질랜드 국회의장

지난해 11월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회의를 진행한 사진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생후 3개월 된 동료 의원의 아이다. 이날 유급 육아 휴직을 늘리는 고용법 개정안 토의가 진행된 가운데 맬러드 의장은 “국회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뉴질랜드가 일하는 부모들을 지원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의회는 40% 가까이 되는 여성의원들이 젖먹이 아기를 본회의장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반면 그로부터 며칠 뒤 일본에서는 한 여성 시의원이 갓난아기를 안은 채 시의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의원들의 퇴장 요구에 직면했다. 결국 아이를 다른 사람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아기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서 방청석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아빠들의 육아 참여는 출산율과 정비례한다. 우리나라는 두 항목 모두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제4회 저출산 고령화 포럼 기조발제를 통해 “단기적으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출산율을 끌어올리던 방식에서 탈피해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 현상, 즉 ‘독박 육아’를 정책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한다는 응답(19세 이상)이 43.1%로 가장 많다. 반면 둘 다 비슷하다는 42.9%, 가정을 우선시한다는 13.9%다. 2년 전보다 ‘일 우선’이 10.6%p 감소하며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생아 수가 8만명 대로 추락해 연간 합계출산율이 1.0도 위태롭고, 이 추세대로라면 인구 감소가 5년 뒤부터로 앞당겨질 전망이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일 못지않게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서,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성평등보이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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