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튼튼이의 모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튼튼이의 모험’(고봉수 감독)은 2000만 원이란 순수 제작비에, 어색해서 더욱 실감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음에도 절로 웃음이 터진다는 데, 암울하지만 결국 희망을 품게 된다는 점에서 여러 번 놀라게 만든다. 한국 영화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매 끼니 소주 3병씩 마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전남 함평의 대풍고 3년생 충길(김충길)은 잘하진 못하지만 레슬링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운동장을 갈아엎는 대공사를 진행하며 레슬링 체육관마저 폐쇄할 계획이다. 충길은 1달 뒤 열리는 전국대회 지역예선에 참가할 의지를 불태운다.

그는 코치를 그만두고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상규(고성완)를 찾아가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또 필리핀에서 시집와 고생만 한 엄마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막노동을 하는 진권(백승환)을 만나 체육관에 돌아오라고 설득한다. 진권은 고물상 김 씨와 어울리는 엄마가 불만이다.

불량서클 블랙타이거 멤버 혁준(신민재)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누나를 엄마처럼 여기지만 바로 위의 형은 우습게 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만큼 싸움을 벌여 지구대에 연행되는 일이 다반사. 진권의 여동생 지혜(윤지혜)를 보고 첫눈에 반해 누나에게 레슬링으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말해 감격시킨다.

▲ 영화 <튼튼이의 모험> 스틸 이미지

상규는 오래 알고 지낸 친한 형인 교장을 설득해 체육관 공사를 1달 이상 보류하게 만든 뒤 세 아이들에게 “죽을 각오로 하자"라고 전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오합지졸인 세 아이는 사사건건 말썽이다. 충길은 열정은 최고지만 실력은 안 는다. 오히려 경험이 전혀 없는 혁준의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한다.

진권은 자신이 레슬링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상규는 체중을 줄여 낮은 체급의 아이들과 겨룸으로써 유리하게 승리를 잡아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진권은 자존심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상규는 충격요법으로 2체급 아래 선수와의 친선대결을 주선해 진권에게 현실을 일깨워준다.

크게 충격을 받은 진권은 레슬링을 그만두겠노라고 선언한다. 평소 지혜와 견원지간인 진권은 웬일인지 “공부 열심히 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쥐약을 산다며 나간다. 혁준이 레슬링에만 전념하기 위해 블랙타이거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그전부터 그를 벼르던 선배가 아이들을 데리고 체육관에 나타나는데.

먼저 평균연령 33살이 넘는 세 주인공이 고등학생을 맡았다는 것 자체부터 B급 코미디다. 윤지혜 역시 만 30살인데 분위기는 주인공들보다 누나 같다. 이들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인스턴트식으로 캐스팅한 비전문 배우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래서인지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 영화 <튼튼이의 모험> 스틸 이미지

대사는 마치 어설픈 학예회처럼, 혹은 그래서 아주 자연스러운 실제 상황인 듯 비치게끔 의도한 것처럼 어수룩하다. 언어의 향연이라곤 전혀 없고 실생활의 대화인 듯 같은 단어(말)가 반복되고, 생생한 생활언어들이 넘실댄다. 혁준이 충고하는 상규에게 “저 싸움 잘해요”라고, 이에 “이게 싸움이냐”라는 식.

영화는 철저하게 꿈과 희망을 잃은 이 시대의 소외된 곳의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는 꿈과 ‘그래도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희망을 설파한다. 세 아이의 가정은 모두 불안정하고 불안전하다. 충길은 엄마가, 혁준은 아버지가, 진권은 아예 부모가 없다.

있어봐야 없느니만 못하다. 알코올중독인 충길의 아버지는 아들의 진로를 방해하면서 오로지 돈을 벌라고 윽박지른다. 진권의 어머닌 동네 창피하게 김 씨랑 고물상에서 사교춤을 춘다. 혁준의 누나는 엄마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만 형은 혁준보다 못났다. 주인공들이 불만과 한을 품을 만한 원인은 충분하다.

분위기 자체는 어둡지만 내용이 살벌할 만큼 현실적이어서 매우 웃긴다. 배우들은 진지하고 대사는 애드리브 같은데 ‘빵’ 터질 만한 수준이다. 만날 싸움질만 일삼으며 빨리 서울에 가서 장사나 하겠다던 혁준이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뒤 “팔자에도 없는 대학 가게 생겼네”라고 기뻐하는 식이다.

▲ 영화 <튼튼이의 모험> 스틸 이미지

가장 집중하는 곳이 절망 속에서의 희망 찾기라면 그 다음은 양심과 반성,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다. 가장 1승의 확률이 높았던 혁준은 일부러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해 반칙패를 당한다. 그 이유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서다.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탓에 사랑하는 지혜 가족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니체는 죄 감정 및 양심의 가책을 파기해버릴 결정적 가능성을 유일신론의 파기로 봤다. 하지만 그의 당대에 현실화되지 않았다. “넌 농담과 거짓말도 구분 못 하냐”라는 대사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메타포다. 화해와 위로를 위한 농담과 악의적 거짓말이 공존하는데 잘 구분 지어 구사하고, 받아들이자는 뜻.

영화는 ‘꿈의 공장’이다. ‘어벤져스’ 같은 판타지도, ‘데드풀’ 같은 판타지 ‘병맛’ 코미디도, ‘미션 임파서블’ 같은 불가능한 현실적 액션 오락도 모두 관객의 꿈을 키워주고 채워준다는 점에서 필수지만 ‘튼튼이’ 같은 초저예산 꿈 키우기 프로젝트도 절실하다. 러닝타임 106분. 15살 이상 관람 가. 6월 2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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