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오션스8>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오션스8’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케이퍼 무비 ‘오션스’(게리 로스 감독) 트릴로지의 여자 버전으로 재탄생된 스핀오프다. 앞선 시리즈가 흥행 성적만큼 관객에게 스릴과 재미를 안겨줬기에 팝콘무비로서는 일단 보증수표다. 주인공들의 활약상과 두뇌게임, 그리고 반전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

애인 클로드 베커에게 배신당해 사기죄로 5년간 감옥에서 썩은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은 가석방되자마자 오빠 대니의 납골당을 찾아간 뒤 명콤비 루(케이트 블란쳇)를 만나 새로 ‘한탕’ 작전을 꾸민다. 목표는 세계적인 명품 카르티에 맨션 금고에 보관 중인 1억 5000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투생.

지하 요새 같은 곳에 꽁꽁 숨겨진 이 보석은 절대 훔칠 수 없으니 밖으로 꺼내게 하는 게 1차 계획. 3주 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 메트 갈라에 참석하는 톱스타 다프네(앤 해서웨이)의 목에 이 목걸이를 걸게 만든 다음 절묘한 팀워크로 훔치자는 설계다.

이를 위해 먼저 빚더미에 앉은 패션 디자이너 로즈(헬레나 본햄카터)를 끌어들인 뒤 다프네의 라이벌을 이용해 다프네가 스스로 로즈를 찾게끔 만드는 데 성공한다. 로즈는 카르티에 맨션을 방문해 수석 매니저에게 투생 협찬을 의뢰했다 거절당하지만 홍보효과를 설명함으로써 뜻을 이룬다.

▲ 영화 <오션스8> 스틸 이미지

데비와 루는 천재 해커 나인 볼(리한나), 보석 전문가 아미타(민디 캘링), 천부적 소매치기 콘스탄스(아콰피나), 뛰어난 도둑 태미(사라 폴슨) 등을 끌어들여 팀을 완성한 뒤 행보를 차근차근 이어나간다. 그런데 루는 어느 날 이 행사에 베커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데비에게 사심이 있음을 의심하는데.

주연배우의 멀티캐스팅만으로도 호화로운데 메타 갈라에 참석하는 카메오들의 면모도 화려하니 눈이 즐겁다. 게다가 첨단과 전통을 오가는 패션과 예술품들의 향연은 재미와 지적인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준다. 여기에 16비트의 흥겨운 록, 장중한 하몬드 오르간 솔로, 샹송 등의 다양한 음악은 보너스.

남자들의 ‘오션스’가 대니(조지 클루니), 러스티(브래드 피트), 라이너스(맷 데이먼)에게 다소 치우쳤다면 이 작품은 비교적 공평한 편이다. 제목과 달리 루가 데비만큼 활약하는데 블란쳇은 매우 강렬한 중성적 매력을 뿜어낸다. 리한나야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계 아콰피나가 굉장히 인상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영화 <오션스8> 스틸 이미지

로즈와 다프네는 역설적 캐릭터로 완성됐다. 한때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던 로즈는 그러나 흥청망청 돈을 써댄 통에 수백만 달러의 빚더미에 앉아 명성이 빛바랜 상황. 어딘가 모자라고 허전해 보이는 데다 누구나 알아볼 ‘발연기’까지 펼치면서도 재기하겠다는 집념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얼굴이 거리의 광고로 도배될 정도의 톱스타 다프네는 누가 봐도 최고의 미녀지만 자신은 뚱뚱하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충분히 말랐는데도 다이어트 광풍에 휩싸인 연예인 및 일반 여성들에 대한 조롱이다. 파티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그녀를 보고 상류층 사람들은 멸시의 눈초리를 보낸다.

“러시아 출신 아닌 해커는 드물다"라고 선거개입 의혹 등으로 밉보인 러시아를 여전히 쌀쌀맞게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을 드러내는가 하면 “카르티에가 최고의 명품인 건 알지만 요즘 애들은 잘 모른다”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모른 채 옛 영광에 취해 답보상태에서 헤매는 ‘명품’에 대해 조소를 날린다.

이는 보수적인 갤러리에 뜬금없이 영국의 진보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이 걸린 걸 발견한 큐레이터가 화들짝 놀라는 것과 연계된다. 변화로부터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과거에 집착하는 세력들의 얄팍한 권모술수 혹은 이념 선동을 살짝 비틀어 꼬집는다. 재미와 메시지를 모두 주는 센스.

▲ 영화 <오션스8> 스틸 이미지

그래서 데비는 “이번 일의 목적은 나나 너희들이 아니라 지금 어디에선가 범죄자를 꿈꾸고 있을 소녀를 위해서”라고 메타포적 언변을 구사한다. 부당한 룰을 만들어놓고 약자와 후세에 그걸 강요하는 권력과 기득권자들에 대한 도전장. 다프네가 “친구도 없고 북 클럽은 싫고”라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남자들의 케이퍼 무비라면 으레 도박과 총질 액션이 필수 요소였지만 이 영화는 그런 상투적인 액션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대신 여자가 남자보다 섬세하고 생각이 많다는 장점을 강조하는 듯 작전의 디테일에 집중한다. 관객의 결말 예측이 가능하다는 걸 감안해 그 과정을 즐기게끔 만드는 것.

말미에 ‘오션스9’이란 후속작이 나올 것을 암시하는 컷이 포함된 쇼트들의 파노라마는 보너스. 도둑들은 7명인데 제목은 왜 ‘8’인지에 대한 해답은 반전. 억지로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여성들의 독립 혹은 자립을 웅변한다. 러닝 타임 110분. 12살 이상 관람 가. 6월 1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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