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우리는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하여 따로 나가 살게 된 것을 ‘독립한다’고 간단히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결혼 후에도 부모로부터 충분히 독립하지 못하여 그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한 남편은 자기 부인이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요구를 힘들어하는 것을 불효로 생각하여 차라리 이혼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또 경제에 무관심한 아버지 대신 고생해서 자녀를 길러낸 어머니에 대한 ‘충성심’이 지나쳐서, 부인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것은 마치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진 나머지 갈등에 빠진 남편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부인은 자기 아이들을 키워주는 친정 부모님을 두고 부부끼리만 외식을 나가거나 휴가를 얻어 여행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서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고 싸움이 계속 되어, 상담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 남편이나 부인(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모르게 자기 부모나 형제들에게 큰 돈을 보냈다가 나중에 밝혀져서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들도 꽤 많습니다. 그러나 부부가족치료사인 필자의 견해로는, 결혼한 남녀들에게는 자신들의 부부 관계를 튼튼하게 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부부는 결혼 전의 아들이나 딸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 시작하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즉 각자 자신의 부모에게서 독립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결혼을 ‘장성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굳이 종교적인 계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부부가 각자 육체적 성숙을 이루어야 함은 물론 그 부모에게서 공간적,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독립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공간적 독립’은 세 가지 중에서 상대적으로 이루기 쉬운 것인데, 이것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거주 공간뿐 아니라 생활 공간도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신혼 집의 출입문 비밀번호를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알고 있어서 언제든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내가 내 자식 집에 가는데 일일이 며느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냐?”라고 말하겠지만, 이런 생각은 분명히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비밀번호를 알더라도, 자녀의 집에 가기 전에 전화를 하거나 해서 피차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것은 친정 부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처럼 자녀의 양육을 조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공간적 독립’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상황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라도 부모는 자녀 부부의 공간을, 또 자녀 부부는 부모의 생활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부인의 부모님 댁 근처에서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의 부인은 그 남편이 (과거 시부모의 잦은 출입으로 불편을 겪었던) 며느리 같은 심정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경제적 독립’은 사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자녀의 결혼식 비용은 물론 신혼살림 준비까지 부모가 책임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는 결혼 적령기의 자녀들이 충분한 경제적 자립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할 정도로 장성하였다면 부모들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당연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즉 어떤 이유에서건 결혼 과정은 물론이려니와 결혼 후 오래도록 부모에게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면, 이는 상당히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신혼 자녀와 부모님 양측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잘못된 경우 몇 가지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떤 신부는 시부모의 돈으로 살림집을 얻으면서 (시부모와 자주 보는 것이 싫어서) 시집과는 되도록 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또 남편의 실직 기간이 길어지자 “시부모가 결혼할 때 해준 것도 없는데, 아들이 돈벌이를 못하고 있으면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듯이 말하는 부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성공하면 몇 배로 갚아줄 수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처부모와 처가 형제들의 금전적 지원을 당연한 듯 요구하는 남편들도 꽤 많습니다. 또 어떤 부모들은 그런 자녀를 안쓰럽게 여기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려고 하는데, 이들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어렵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들이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자녀 부부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장성하여 결혼한 자녀가 부모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용돈이나 생활비를 드리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나 요구가 신혼 자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결혼한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 부모도 자녀의 독립을 자극하고 또 격려해야 합니다. 부모와의 독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 독립’, 즉 부모에게서 정서적인 ‘분화’differentiation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린애가 자라면서 신체적인 분화를 통해서 손과 발 그리고 각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다른 기능을 하게 되는 것처럼, 정서적인 분화는 자신과 타인의 생각과 감정이 당연히 다를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모와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마치 부모에 대한 ‘배신’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이런 남편은 맹목적으로 부모의 뜻에 따르느라, 부인의 하소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억압하곤 합니다. 반면에 때로는 자신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에게 과도하게 반항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도 자신의 책임과 부모의 책임 사이에 한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의 부부 관계는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거나, 아예 대화가 끊긴 ‘정서적 이혼 상태’에 있기 쉽습니다. 바람직한 경우로, 부모에게서 충분히 독립한 사람이라면 부모의 의견이나 감정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모님이 서운해할 거라거나 화를 낼 거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굳이 ‘위장’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도 않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억지로라도 끌어들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분명한 입장만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상대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또 고부갈등과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화를 내거나 낙담하는 대신에,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억울해하는 부인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다른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이런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해 보이지만 그 심지가 누구보다 굳은 것을 알기에, 그 부모나 부인도 그를 신임하며 또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소한 불화가 큰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모와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했다고 해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아직 진정으로 독립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든지 그 마음은 부모의 영향 또는 부모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정서적인 독립을 이루고 있다면 비록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배우자의 마음과 부모의 심정까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또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