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 MBC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달 16일 시작된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와 오는 20일 개봉될 영화 ‘여중생A’는 허그가 굉장히 중요한 소재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혼란하고 불안한 이 시대의 현실성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점에선 매우 닮았다. 누구에게나 위로(허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리와 안아줘’의 주인공은 일반인과 다른 캐릭터나 직업, 쉽게 찾아보기 힘든 환경이고, ‘여중생A’는 서민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신분’인데 실제 평범한 주변 사람들을 대입시켜 보면 고통스러워서 위안 받고 싶어 하는 속사정은 모두 한결같아 놀랍고 그래서 끌린다.

‘이리와 안아줘’는 경찰대 출신 강남경찰서 형사 채도진(28, 장기용)과 영화계의 샛별 한재이(진기주)가 주인공. 그들은 중학교 때 경상도에서 윤나무와 길낙원이란 본명으로 사춘기의 열띤 감정을 나눴던 사이다. 그러나 연쇄 살인마인 나무의 아버지 윤희재가 낙원의 부모를 죽인 악연으로 연결됐다.

▲ 사진 제공 = MBC

한때 미래를 약속했던 두 사람은 현재 서로를 모른 체하며 살아간다. 겉으론 안정돼 보이는 도진과 화려해 보이는 재이는 과거의 상처를 모두 털어낸 듯하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도진의 가족은 의붓 엄마 옥희와 의붓 여동생 소진. 옥희는 희재의 4번째 부인이고 도진은 그 전처의 아들.

이복형 현무도 있지만 본 지 오래됐다. 전과 7범의 현무는 도진과 재이에게 강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 재이의 유일한 가족은 검사인 의붓 오빠 무원. 그는 마치 피를 나눈 친동생처럼 진심을 다해 재이를 알뜰살뜰하게 챙겨준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이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불안정하다.

‘여중생A’의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 미래(김환희)와 20대 초반 재희(김준면). 미래는 무남독녀지만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학교에선 급우들에게 집단따돌림과 학대를 당한다. 유일하게 희망을 찾는 곳은 ‘원더링 월드’라는 컴퓨터 게임. 그런데 곧 서비스를 중단한단다.

미래의 희망은 소설가다. 반장 백합이 먼저 접근해오더니 미래의 소설을 베껴 백일장에 응시한다. 미래는 담임선생으로부터 백합의 소설을 베낀 걸로 오인 받아 더욱 궁지에 몰린다. 세상을 살 희망을 잃은 미래는 게임 서비스 중단 직전 친해진 한 캐릭터가 귀띔해준 장소로 그 친구를 찾아간다.

▲ 영화 <여중생A> 스틸 이미지

주인공은 거리에서 인형을 쓴 채 사람들에게 허그를 서비스해주는 재희. 이혼한 엄마는 재가했고 아버지는 알래스카로 이민을 갔기에 고아와 다름없는 그는 죽음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단숨에 미래의 처지를 알아본 재희는 “너도 나처럼?”이라고 묻고, 미래가 고개를 끄덕이자 버킷 리스트 작성을 제안한다.

이제 20대 초반인데 더 이상 사는 게 힘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재희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이란 점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아직 10대인 미래의 극단의 결정을 가로막는다든가, 애써 돕는다든가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라고 조언하는 정도다.

하이데거는 불안과 공포를 구분했다. 누가 나를 해치려 한다면 그건 공포고, 늦은 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다. 미래는 생리가 시작됐는데 생리대가 떨어진 걸 알고는 아버지의 옷을 뒤진다. 때마침 들어온 아버지는 이 광경을 보곤 ‘벌써부터 도둑질이냐’며 마구 때린다.

여기까진 공포다. 아버지의 폭행이 끝난 뒤 미래는 “생일인데 1000원만 달라”고 ‘불안’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만 아버지는 ‘네가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인데 웬 생일타령이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미래는 이제 불안에서 영원히 해방될 길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재희를 찾아간다. 

▲ 영화 <여중생A> 스틸 이미지

하이데거에 대입해볼 때 미래는 현존재자이지만 존재가 없다. 그녀에겐 실존론적 존재도, 존재의 필요성조차도 없는 것이다. 재희가 낯선 사람을 붙잡고 무차별 허그를 해주는 이유 역시 존재론적 실존주의에 근거한 존재 찾기라기보다는 존재자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이타적 행위일 따름이다.

그들은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인간)란 실존주의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어쩌면 떼밀린 허구의 존재, 잉여의 존재이거나 그렇게 소외된 실존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을 실존적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도록 이끄는 동력으로 봤다. 재희는 미래에게, 미래는 재희에게 그 동력이 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으레 헤겔의 ‘정립-반정립-종합’의 3단계 변증법적 이론에 들어맞는다. 선과 악의 갈등과 대립과 대결이 전체 스토리를 이끌고, 권선징악이 ‘기-승-전-결’의 단계에 개입한다. 주인공은 정립, 그 적대세력은 반정립, 결론은 종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해피 엔딩.

‘이리와 안아줘’와 ‘여중생A’는 사이즈는 매우 다르지만 흐름은 유사하고, 그래서 결론은 비슷할 것이다. 과거는 아팠고, 그 트라우마는 죽 이어지는 가운데 현재가 고통스럽고 미래가 불안한 청춘이 공통적으로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같은 맥락을 띤다.
 
반정립의 영역에 서있는 악 역시 겉으론 드러내지 않지만 공포와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인격 자체가 ‘쓰레기’인 악인도 있겠지만 시스템이나 이기심이 범죄자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니힐리즘과 데카당스가 공존하는 양가성 세계에서 재희와 미래가 위버멘시로 진로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위로 덕이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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