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펜션’, 인간사 압축한 4개의 흥미진진 옴니버스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6.16l수정2018.06.2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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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펜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신경쇠약 직전의 아내’(윤창모 감독) ‘숲으로 간 여자’(류장하 감독) ‘산속에 혼자 사는 남자’(양종현 감독) ‘미래에서 온 여자’(정허덕재 감독) 등 4편의 옴니버스로 엮은 영화 ‘더 펜션’은 꽤 독특하고, 그래서 재미도 쏠쏠하다.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 판타지, 케이퍼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건 덤.

중년의 재덕(조재윤)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는 바람에 이혼한 뒤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달빛아래’ 펜션을 홀로 운영해온 지 꽤 됐다. 엄마는 매일 전화로 재혼하라고 성화지만 그는 고독과 친숙해져있다. 중년의 투숙객 추호(조한철) 미경(박효주) 부부는 또래 남자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이들은 절대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갖고 고통과 절망 속에 사는데 특히 미경의 신경쇠약 증상은 심하다. 추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매사에 결단력과 추진력 등이 떨어진다. 남자는 많이 어린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겉으론 단란해 보이지만 사실 남모를 사연이 있는데.

중년의 남자(박혁권)는 자꾸 멀어지는 아내(이영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오자마자 그들은 ‘하루 더 묵자’와 ‘그러느니 그냥 가자’라는 주장으로 싸우더니 가까스로 화해를 한다. 남자는 저녁을 만들고 여자는 산책을 하러 숲에 간다. 그런데 은밀하게 뒤따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재덕은 드디어 엄마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시내에서 맞선을 보기로 한다. 그날 밤 마침 손님도 없어 문을 닫고 자려는데 자영(신소율)이 초승달 방에 추억이 있다며 하루만 묵겠다고 애원을 한다. 할 수 없이 열쇠를 건넨 그는 그러나 뭔가 미심쩍어 방 안의 완강기를 치운다.

▲ 영화 <더 펜션> 스틸 이미지

다음날 자영이 자살 안 하고 깔끔하게 떠난 걸 확인한 재덕은 맞선 장소로 향하는데 휴대전화벨이 울린다. 오늘 맞선 상대라는 여자는 다짜고짜 그가 결혼에 실패한 사실을 왜 숨겼냐며 따지고 멋대로 끊는 바람에 재덕은 불쾌해진다. 그렇게 펜션으로 돌아왔더니 초승달 방에서 한 낯선 남자가 나오는데.

재덕의 부탁으로 펜션을 관리하게 된 인호(이이경)는 연인을 불러 로맨틱한 하루를 보낼 환상에 잠기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서 옛 연인의 문자메시지를 발견한 연인은 휑하니 떠난다. 보름달 방에 성적 매력이 돋보이는 약혼자 소이(황선희)와 함께 투숙한 중년은 콘돔까지 빌리는 등 ‘진상’을 보인다.

그런데 어제 보름달 방에 투숙했던 여자가 나타나 깜빡 잊고 연인이 준 엄청난 선물을 두고 갔다며 난리 법석을 떤다. 그건 2700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여자는 중년, 소이, 인호 등의 사진을 찍은 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다. 그러자 웬일인지 반지를 본 적도 없는 중년은 제가 갚겠다고 하는데.

‘워라벨’ ‘소확행’ 등의 신조어에서 보듯 현대인에게 휴식과 레저는 삶에 필수적인 피로회복제다. 공기와 풍광이 좋은 자연에 위치한 펜션이 범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는 펜션을 다양한 군상이 사는 세상으로, 투숙객을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그리 간단하지 않은 대인관계를 형성한 사람들로 각각 그린다.

펜션은 주인에겐 영업장이지만 투숙객에겐 임시 집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을 떠나 시간과 돈을 들여 펜션에 묵는 이유는 주변 환경과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여유를 즐김으로써 고민을 떨쳐내고 내일의 희망을 얻기 위해서다. 기분전환으로써 도시로 되돌아가 일하기 위한 활력을 얻기 위함이다.

▲ 영화 <더 펜션> 스틸 이미지

그런데 모든 투숙객이 그런 목적과 효과를 갖는 건 아니다. 펜션 주인 입장에선 그런 천차만별의 사연을 감지하거나 목격할 것이다. 똑같은 숙박업소지만 펜션은 여관과는 좀 다르다. 모텔은 주로 연인 혹은 불륜 커플이 성행위를 위해 찾는 곳인데 펜션은 그들도 있지만 가족이나 단체 손님이 더 많다.

4명의 감독들은 그런 점에 착안해 좁은 공간 안에서 저마다의 복잡다단한 사연과 애환을 그리는데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부부관계다. 추호와 미경은 엄청난 상처를 공통으로 가졌지만 미경은 복수가 최고의 목적이고, 추호는 그녀와의 관계 회복이 가장 간절한 소원이라 평행선을 달릴 뿐 만나지 못한다.

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한 남자는 예전에 자신이 집을 떠난 동안 나이 어린 아내가 홀로 아들을 낳고 잘 키웠다고 자랑하지만 막상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숲으로~’의 중년 남자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표현이 서투르다. 또래 남편들이 그렇듯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매우 지쳤다고 투덜댄다.

그는 아내가 권태기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녀는 더 지쳤다.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외롭고 무기력하다. 온종일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딸과 남편을 기다리는 것뿐. 남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편히 지내는데 뭐가 힘드냐”라며 가장으로서의 노동 강도와 정신적 피로도만 강조한다.

남자는 조수석에서 정면 차창 쪽으로 발을 뻗어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아내에게 야하다며 다리를 내리라고 한다. 그러다가 그녀의 발에 붙은 일회용 반창고를 발견하곤 “어떻게”라고 묻는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잠자리 생각만 할 뿐 진정한 애정표현도, 관심도 갖지 못하는 반쪽 사랑을 한다.

▲ 영화 <더 펜션> 스틸 이미지

미경의 “당신은 생각만 하지?”라는 핀잔처럼 추호 역시 생각(아내에게 잘해줄 것에 대해)은 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불교철학이 무척 돋보인다. 바람난 아내는 밀애의 상대가 집착하자 “나랑 결혼해서 살아도 별것 없어”라는 말을 불어온 바람결에 날려 보낸다.

재덕에게 어떤 여자는 “이런 데서 혼자 살면 외롭죠?”라고, 또 다른 여인은 “산속에 혼자 살다 보니 통찰력이 생겼나 봐요”라고 각자 다른 해석을 한다. 불교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펜션은 그런 스쳐 지나는 인연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레 늘어놓는다.

초저녁 등불을 든 아이들의 행렬을 통해 세상은 동화 같다고 얘기하는 듯하지만 뉴스의 자살률 컷과 전체 맥락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꿈꾸는 것과 달리 잔혹하고 추악하다는 결론이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혼자, 없어도 혼자”와 “살아보니 혼자”라는 대사는 불교철학과 딱 들어맞는 신의 한 수다.

인호의 “왜 그렇게 살아요?”라는 힐난에 사기꾼의 “그러는 그쪽은 어떻게 사는데요?”라는 역공은 참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미래-밀애-밀회로 이어지는 말장난도 재기 발랄하다. 재덕의 판타지 장면에서의 왈츠 리듬을 타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압권이다. 113분. 15살 이상. 6월 2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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