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남편’은 효자가 아니다! [박수룡 칼럼]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l승인2018.07.01l수정2018.07.0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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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옛말에 “효자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효자 남편’의 아내는 괴롭다”는 말도 생겨났으니, 과연 어느 말이 옳은 것일까요?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않고 쓰는 말이지만, ‘우리 집’ 또는 ‘우리 가족’에 대해서 남편과 아내의 인식이 달라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인들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을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반해, 남편들이 말하는 우리 가족은 자신의 부모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부계 혈연’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정숙씨의 남편은 결혼 전에 자신이 바라는 것은 ‘부모님을 잘 모시고 화목하게 사는 것’뿐이라고 했다. 정숙씨는 남편이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런 남자라면 가족도 소중하게 생각할 거고, 우리 부모님에게도 잘하겠지’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친정아버지의 칠순 잔치 경비를 형제들끼리 분담하자는 말에 남편이 영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정숙씨 자신은 지난해에 시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에는 아무 불만이 없었는데, 남편은 마치 그 때 일은 모두 잊은 것 같아서 서운했다. 그래서 “어머니 입원하셨을 때도 우리가 치료비 다 냈잖아. 이번에는 나눠서 내자는 건데 좀 보태면 안 돼?”라고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다짜고짜 “당신네 오빠는 뭐 하는 사람인데?”라고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책임질 부모는 자기 부모들일 뿐이고, 처부모는 처남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숙 씨는 지금껏 시부모도 내 부모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했는데, 친정 부모는 남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남편에게 서운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위 ‘효자 남편’들은 결혼할 상대를 고를 때 ‘착하고 부모에게 공경할 줄 알며 우리 집안을 화목하게 해 줄 여자’를 첫 번째 조건으로 꼽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가족에 관한 ‘미풍양식’으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때문입니다. 이런 남편들이 ‘미신’처럼 믿고 있는 또 하나는 ‘아내는 옷과 같아서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형제는 수족과 같아서 끊기면 잇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형제의 화목을 강조하는 것이야 잘못된 게 없지만, 위 말대로라면 ‘갈아입을 수 있는 옷’ 취급을 받는 부인의 입장에서는 뭐 하러 형제의 우애에 힘을 쓰려고 할까요? 또 그런 옷을 입고 지내면, 그 가족이 화목할 수는 있을까요?

아무튼 이런 말들은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었던 옛날에나 통용되던 것인데, 아직까지도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인의 원성을 사는 남편들이 아직도 적잖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지 않나요? 부계, 즉 시댁 중심의 문화가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전통이었으니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즉 그런 소위 ‘효자 남편’들의 대부분이 그 효도를 자신이 직접 실천해야 하는 덕목으로 여기는 대신, 자신의 부인이 지켜야 할 ‘도리’로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처가에는 가지 못해도) 본가에는 꼭 가야 하는 것과 함께, 부인은 제사와 음식 준비를 위해서 먼저 보내놓고 자신은 나중에 나타나서 절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명절 증후군’과 ‘시집 혐오증’에 시달리는 부인의 정성이 아닌 강요된 희생으로 치러지는 집안 행사를 과연 효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효자 남편’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가족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효도’와 ‘독립’을 구별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기 집안에 대한 충성보다 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것을 ‘불효’라고 여기는 과거의 생활 방식은 부부의 우애를 토대로 하는 오늘날의 새로운 가족 문화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에 시집 중심의 가족 문화에 따르는 것을 대놓고 반발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효자 남편’의 부인을 정작 괴롭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아직도 남아 있는 ‘전근대적 가족 문화’라는 무형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결혼의 이유와 목적을 ‘우리 가족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을 얻는 것’처럼 여기는 ‘ 내 편 같지 않은’ 남편의 태도 때문입니다. ‘명절 증후군’이나 ‘시댁 혐오증’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그 며느리들의 마음속에 효도와 정반대인 깊은 분노와 절망감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부가 이런 잘못된 관습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부모에 대한 아들이나 딸로서의 역할보다는, 새로 시작하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효도는 (부인을 통하거나 각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남편들은 자신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부모와 조상을 마치 자신의 부모와 조상처럼 모시는 부인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부인의 부모와 조상에 대해서도 (마치 자신의 부인이 남편의 부모와 조상에게 하듯) 받들어 모시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부부가 각자 자신의 부모에게서 건강한 독립을 이루고 또 튼튼한 부부 관계와 안정된 가정을 이룬 후에야, 각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과 사랑으로 (강제로 지켜지는 도리가 아니라) 효도를 실천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자녀들은 자랑스럽게 그 가족 문화를 이어갈 것입니다.

결혼은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사실 어른이란 어느 날 완성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생아는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야 온전히 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마침내 인격적인 분화 과정까지 마쳐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 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더라도, 결혼을 하여 자신의 가정을 완성하는 데에는 꾸준한 분화와 독립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일 당신이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결혼을 하였더라도, 당신 자신과 결혼 상대가 각자 그 부모에게서 얼마나 독립을 이루고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하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두 사람이 잘 협력하여 독립할 수 있겠는지 에 대해서 충분히 의논해야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전문가의 도움 받기를 망설이지 마십시오. 이런 노력과 필요한 과정을 소홀히 했다가 부모님과의 관계로 인해서 부부 관계가 악화되고 또 끝내 가정 파탄에 이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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