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그림자와 미첩보요원들의 비밀 활약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07.02l수정2018.07.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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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박정희 의장에게 전달되는 1급 비밀메모
-김희덕 장군 증언

최고회의 내부는 혼란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김희덕 장군은 정국의 추이와 전망 등에 대해 매일 매일 박 의장에게 보고를 했다. 1급비밀로 분류된 메모형식의 보고서는 박정희 의장만 보도록 돼 있었다. 김 장군은 이 보고서 한 부씩을 보관해 두었다가 1974년 5월 전역한 뒤 자신의 일기장에 일일이 옮긴 후 파기했다. 김 장군은 “당시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역사의 와중에서 겪었던 ‘진실’을 밝히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당시 박 의장에게 보고된 ‘1급비밀 메모’를 공개했다. 보고서 작성은 김 장군과 상황판단이 뛰어난 대령급 참모와 함께 이루어졌다. 다음은 정당조직에 관한 비밀메모 중 일부이다.

제목: 정당 조직(64년 4월24일)
1. 문제: 범국민적인 정당운동을 여하이 할 것인가를 건의하기 위함.
2. 가정: 첫째 현재 재야정당들은 이해관계로 결속은 힘들 것이다. 둘째 박 의장이 출마하면 현 재야정당들은 최소한 단일 대통령후보를 모색할 것으로 예견됨.
3. 문제와 관계된 사항
* 현재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은 박 의장, 허정, 윤보선, 변영태(卞榮泰) 등.
* 상기 출마 예상자들은 박 의장을 제외하고 구정당들의 기존기반을 이용하고 있다.
* 현재 박 의장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민들은 박 의장을 명 정치가로 지지하지는 못하나 구정치인들은 더욱 싫어하고 있다. 둘째 농어촌민들은 농어민을 살리려고 하는 박 의장의 정성을 좋아하고 있다. 구정치인들의 시대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셋째 현재까지의 공작방법과 성과는 양호한 편이다.
4. 토의: 이상의 과정과 사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앞으로의 정당조직과 정책의 방향을 토의한다.
* 범국민적인 정당의 성격: 현 한국의 실정은 혁명정부가 다하지 못한 조국건설이란 역사적 과업을 그대로 계승완수함에 있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강력체질의 민정출현만이 우리 민족의 유일한 살길이요, 역사의 요청으로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될 정당은 어느 특정사회나 일부층 인사만으로서는 큰 힘을 이룰 수 없고 또 구정치인도 이러한 민족적인 대혁명을 인식하고 진실한 결심과 참된 양심으로 나온다면 우리의 동지로서 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므로 뜻을 같이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범국민적으로 강력히 한데 뭉쳐 헌신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 조직의 문제: 현재까지 연결된 그룹에 대표자급을 선정하여 4월말까지는 신당 임시발기인회를 소집하여 1차 창당 임시발기인대회를 구성하며 단시일내에 재흡수한 증원으로서 정식 발기인대회를 구성해야 하며 이 이상의 시간연장은 별무성과이며 뜻을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불안을 주게 된다. 이 때 각당의 재적자는 탈당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다음은 발기인 중에서 각 지역별 조직위원을 약간 명씩 선정하여 지구당 조직부터 급속 진행하되 지구당 발기인회 구성이 끝나면 즉시 백지귀임하고 또 다른 지도단과 교체토록 한다. 이는 자파세력 부식(扶植)공작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인 것이다.(중략)

미 정보기관 소속 비밀첩보원 정보제공

1963년 당시 ‘1급메모’, 즉 김희덕 장군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한테 매일 보고한 내용 중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시 박 의장은 국내외 정보에 대해 어두운 편이었다. 특히 김재춘 중앙정보부장 등은 공화당을 해체해야 한다면서 ‘범당’ 조직결성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군정연장을 반대하는 미국 역시 정보를 완전 차단해버렸다. 그러나 박 의장은 국내의 정치상황이나 미국무성 등의 움직임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을 사실상 꿰고 있었다. 그것은 김 장군이 제공하는 바로 ‘1급메모’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1급메모’는 어떻게 해서 작성됐을까. 김 장군은 자신의 휘하에 1급 비밀정보원을 극비리에 관리하고 있었다. 주한미대사관에 근무하는 최모씨와 미8군에 있는 노모씨가 주인공이다. 최모씨는 미대사관에서 1급 정보를 다루는 비밀요원이었다. 그래서 수시로 미국무성에서 보내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특히 미본국으로 타전하는 국내정보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노모씨는 미8군에 고용된 첩보요원으로 한국전쟁 직후 소련 ‘프라우다’ 신문기자로 북한에 파견되어 근무하다 월남한 한국계 소련인이었다.

이 두 요원은 김 장군과 은밀히 내통했다. 위기때 마다 결정적인 정보제공과 국내 중요 정치상황 등을 국내 정보기관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김 장군한테 넘겨줬다. 김 장군은 이들한테 넘겨받은 정보를 면밀하게 분석해 ‘1급메모’를 작성, 박 의장한테 보고하는 일을 계속했다. 결국 박 의장은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도 분위기를 계속 유리하게 이끌어 끝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미정보기관 소속 첩보원의 숨은 공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장군은 “당시 내가 보고했던 메모는 거의 정확했다. 그 두 사람이 아니었던들 그런 보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박 의장은 이 사실을 끝내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리지 말아달라는 첩보원들과의 굳은 약속 때문이었다. 또한 김 장군은 “미대사관과 미8군에서 수집하는 정보는 우리나라 그 어떤 기관보다도 국내 상황을 속속들이 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장기집권 시나리오 “공화당을 위병으로 삼아라”

‘1급메모’의 제1보는 1963년 4월6일이었고 그 이후 7월7일까지 2~3일 간격으로 계속 보고됐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박 의장이 겪었던 정치적 어려움과 대통령 당선을 위한 치밀한 공작 시나리오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1963년 4월6일

혁명이념의 관철없이는 이 나라는 영영 절망이다. 그러나 이 이념의 관철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방법은 군정의 연장집권과 민정의 수단을 통한 집권이다. 군정의 연장집권 안이 불가능할 경우 9월말까지 끝내고 이 기간에 승산있는 정치조직 또는 협상을 통하여 군인 및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범국민적 정당을 창당해야 한다.

공화당은 끝까지 위병(僞兵)으로 김종필씨와 그의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혁명정부에 대한) 공격을 받고 희생한다(유능한 중앙정당은 우선 포섭하고 군당 이하는 전원 포섭한다).

극비공작으로서 각 정파와 유능한 인사를 흡수한다. 단 정치인물의 획선(劃線)을 하지 말고 득표본위로 흡수한다. 흡수가 끝나면 이를 여,야당으로 발족시킨다. 증거없는 인지유포는 더욱 좋다). 이와 같은 공작은 금년 9월말까지 완료하고 그 후 민선으로 돌입한다.

국민투표를 9월말까지 연장함에 있어 신조직과 재벌육성에 관한 기초를 완료한다(합법적이며 국민경제육성의 입장에서 한다).

이틀 뒤 박 의장은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시국수습안, 즉 4.8성명을 전격 발표하게 되며 또 한번 거센 도전을 받아 정치적 기로에 놓이게 된다.

#4월10일

현 정세판단 및 대책: 정치적 인기는 실패했으며 재기불능한 상태에 있다.

재기방법: 박 의장 진두지휘로 @정략적 인물포섭의 이면공작 또는 협상 @행정력에 의한 인기회복 및 정당조직과 그 지도에는 제반활동 공작이 일원화 될 것(유의사항-어느 특정개인이나 집단에 재래식으로 우선권이나 ‘너만 믿는다’식의 방법은 금물. @정당조직과 협상자 포섭을 위한 밀회(효과를 목적으로 박 의장과 대리인) @정책대상자, 의견종합 활동(최고회의)...(중략)

#5월7일

정당조직에 대한 긴급 건의: 신(神)도 어찌할 수 없는 이 복잡한 현실을 유한한 인간의 재주로써 이를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지금 이 현상에서는 어떠한 방안도 절대적인 것이 못된다. 현실사태를 다만 분석하여 가능성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치단결하여 밀고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극도의 복잡은 극도의 단순으로 대처함이 현명책이다.

현상을 보면 고깃덩어리를 놓고 덤비는 구더기에 비유할 수 있다. 그저 많이 파먹겠다는 탐욕적인 심리만은 통일이 되어 있으나 그 방법과 동작은 하나도 동일보조가 아니다. 서로 치여서 위에서 밑으로 다시 밑에서 위로 참혹할 정도다. 문제는 이 사태를 똑똑히 인식하여 여기에 개념치 말 것이다. 이 사태는 오직 전국에서도 수도 서울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시급히 전 국민에게 돌리고 지방으로 돌려야 한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지방은 그래도 2년간의 혁명치적으로 그 사고나 정신이 달라졌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구정권시와 같은 정치적인 뚜렷한 공격대상을 잃고 말았다. 다만 현정부에 대한 욕망적인 불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구정치인은 과거와 같이 출신지방의 계열을 집결시키기에는 너무나 명분이 없다. 그리고 너무나 무력하다. 하나의 트집만으로 또는 꿈같은 망상집권의 공수표를 난발하기에는 너무나 신용을 잃었다. 그렇다면 어찌 이 수도 서울에만 집념하고 우리의 벗이며 주권행사자인 지방민을 방치만 하고 있겠는가. 향후 일주일 이내에 급진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시에 그들마저 놓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부의 단결이 시급히 요청되고 어제까지의 자살행위를 국민 앞에 시급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혁명은 나라를 구함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이미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집권욕에 불탄 혁명이 아니라는 본래의 정신을 오손(汚損)시키지 않고라도 역사가 가져다준 뚜렷한 선물로서 오직 하나 박 의장의 정치인으로서의 네임밸류라는 것이 있다. 박 의장만은 뚜렷하고도 정상적인 민정대통령 후보감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직만 확보한다 해도 자연스럽게 주체세력은 각자가 그대로 그 요구가 충족됨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새삼스럽게 주체세력 단결 운운으로 겨우 잠들어가는 법을 또 깨우는 것인가...(중략)

이와같이 당시 박 의장에게 보고된 ‘비밀메모’는 건의사항과 복잡한 주변상황 등이 다양하게 담겨져 있다.

4.8성명 발표된 직후에도 시국수습의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국 김 장군은 최고회의 직무를 이원화하는 긴급제안을 건의하게 된다. 즉 최고회의 안에 ‘정치소위원회’를 두어 정치문제만 전담케 하고 나머지는 민생 등 각종 문제해결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김 장군은 정치소위원회의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민정이양계획서’를 작성했다. 이 계획서는 박 의장이 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토대로 한 내용이었다. 4.8성명 직후 김 장군은 박 의장 공관에서 이같은 계획서의 실행을 결재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 장군은 “지금 정국이 어수선하니 재충전할 겸 온양온천에서 며칠 쉬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또한 “원만한 수습을 위해서 이후락씨한테 정치활동을 못하게 해달라”면서 대신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의 행동반경은 자신이 선임이니 알아서 권유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날 밤 박 의장은 온양으로 내려갔고 이튿날 새벽 6시에 김 장군은 김재춘 부장을 불렀다. 김 장군은 계획서를 내보이며 배경설명을 했다.

“각하께서 이 계획서를 결재하셨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모든 계획이 성사되면 다시 군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러나 김 부장은 군복을 벗은 몸이니 끝까지 박 의장을 도와야 할 처지요. 그러니 나는 공명다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소.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국가를 위하는 애국심으로 일을 해야만 하오. 당신과 나 서로 단단히 연락하면서 공작작업을 벌여야 하오.”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듣고 있던 김 부장이 말했다.
“선배님, 이 계획서 한 부만 카피를 해도 됩니까?”
“그렇게 하시오.”
김 부장은 김 장군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돌아갔다.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김 장군은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기 위해 김 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자리를 비웠다든가 아니면 외출중이라는 대답만 거듭할 뿐이었다. 그 날 밤 11시가 다 되어 김 장군의 자문역인 이재만(李在晩)씨와 비밀첩보원 노모씨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들은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위원장님 큰 일 났습니다. 김 부장이 배반했습니다.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치는 작업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김 장군은 아연실색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다. 김 장군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대문을 나섰다. 온양에 머물고 있는 박 의장한테 알려야 일의 그릇됨을 막을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김 장군의 일행을 지켜보던 대문밖 그림자들(중정요원)의 행동도 빨라졌다.

김 장군이 온양온천호텔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호텔입구에 들어서자 경호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못들어갑니다.”
“누가 못들어가게 해.”

경호원들은 “과장님(박종규 경호과장)이 그랬습니다.”라고 했다. 김 장군은 박종규 과장을 찾았으나 경호원들은 모른다고만 했다.

김 장군은 속으로 ‘아, 분명 김재춘 부장이 미리 손을 써놨구나’하는 판단이 들자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교환실로 뛰어들어갔다. 김 장군은 문을 박차고 들어가 “어서 각하 계신 곳을 대라. 몇 호냐? 전화연결해!”하며 교환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겁에 질린 교환원은 “아무도 전화연결 하지 말랬어요. 그러면 죽어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 장군은 허리에 찬 권총을 들이대며 “누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죽이겠다. 어서 대!” 하면서 총구를 목덜미에 갖다 댔다.

잠시후 박 의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302호실이었다. 김 장군의 목소리를 확인한 박 의장은 “거기 어디요? 이 밤중에.”라고 말했다. 김 장군은 “여기 온양호텔입니다. 밤중이고 뭐고 간에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 교환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김 장군 또 경호원들이 자신을 저지하고 있다는 상황도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박 의장은 잠옷차림으로 아래층 계단까지 내려와 경호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잠시 후 김 장군은 박 의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일이 어긋나고 있음을 자초지종 얘기한 뒤 “내일 상경해야 합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날 새벽 김 장군은 먼저 서울로 올라왔고 이튿날 오후 박 의장도 일정을 앞당겨 상경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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