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일반적으로 법인의 경우 법인의 사원은 법인의 채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반면, 조합의 경우 조합원은 조합의 채무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따라서 어떤 단체를 설립할 경우나 그 구성원이 되려고 하는 때, 그 단체의 법적 성격이 법인인지 아니면 조합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법인과 조합의 구별은 그 명칭보다는 그 실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그 단체성의 강약에 따라 구분하는 데, 단체성이 약하고 구성원의 개인성이 중시되는 경우는 조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민법상 조합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 하더라도 고유의 목적을 가지고 사단적 성격을 가지는 규약을 만들어 이에 근거하여 의사결정기관 및 집행기관인 대표자를 두는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고, 기관의 의결이나 업무집행방법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행해지며, 구성원의 가입, 탈퇴 등으로 인한 변경에 관계없이 단체 그 자체가 존속되고, 그 조직에 의하여 대표의 방법, 총회나 이사회 등의 운영, 자본의 구성, 재산의 관리 기타 단체로서의 주요사항이 확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비법인사단으로 보게 됩니다(대법원 1992. 7. 10. 선고 92다2431 판결 참조).

이와 관련하여 법인의 명칭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의 실체를 갖고 있다고 보아, 영농조합법인 조합원도 법인의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A씨는 2010년 1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B영농조합에 계란을 공급했는데, 대금 가운데 2,100여 만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A씨는 B영농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2013년 6월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대금을 모두 변제받지 못하자 C씨 등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A씨가 B영농조합에 계란을 공급하던 시기에 조합원이 아니었던 2명을 제외한 C씨 등 5명의 조합원이 연대해 물품대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2심 법원은 "영농조합법인에 대한 민법상 조합 규정 준용은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민법상 조합의 채무를 조합원의 채무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민법상 조합은 조합원들 사이의 계약에 불과할 뿐 권리의무의 귀속주체가 아니어서 조합을 둘러싼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조합원만 그 권리의무의 귀속주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조합의 채무는 조합원의 채무'라는 법리는 조합원과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자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는 영농조합법인의 법률관계에는 준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A씨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구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은 협업적 농업경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농산물의 출하·유통·가공·수출 등을 공동으로 하려는 농업인 등은 5인 이상을 조합원으로 하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고 전제한 후, "같은 조 제3항과 제8항에서 영농조합법인은 법인으로 하되 영농조합법인에 관해 이 법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는 민법 중 조합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규정은 구 농어업경영체법 부칙 제3조에 의해 이 법 제정 전에 설립된 영농조합법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 같은 규정 내용과 어떤 단체에 법인격을 줄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의 문제라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구 농어업경영체법은 영농조합법인의 실체를 민법상의 조합으로 보면서 협업적 농업경영을 통한 농업생산성의 향상 등을 도모하기 위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조합체에게 특별히 법인격을 부여한 것이라고 이해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영농조합법인에는 구 농어업경영체법 등 관련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법인격을 전제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의 조합에 관한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영농조합법인의 채권자가 조합원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에 관해서는 구 농어업경영체법 등에 특별히 규정된 것이 없으므로 민법 중 조합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고, 결국 영농조합법인의 채권자는 민법 제712조에 따라 그 채권 발생 당시의 각 조합원에 대해 당해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채무가 특히 조합원 전원을 위해 상행위가 되는 행위로 인해 부담하게 된 것이라면 상법 제57조 제1항이 적용돼 조합원들의 연대책임이 인정된다. 따라서 B영농조합법인의 조합원인 C씨 등은 물품대금채무에 대해 민법상 조합원으로서의 책임을 부담하므로 A씨에게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영농조합법인의 경우 그 명칭에 법인이라고 되어 있어, 조합원이 조합채무를 부담하는 지가 계속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번 판결은 영농조합법인의 명칭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은 그 조합채무를 부담한다는 점, 나아가 조합채무가 특히 조합원 전원을 위해 상행위가 되는 행위로 인해 부담하게 된 것이라면 조합원들의 연대책임까지도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영농조합법인에 대한 채권자는 법인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도 법인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이 판결을 통하여 확인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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