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정치자금 10억원 확보 비밀계획

5.16 이후 1963년 10월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박 의장은 실로 살얼음판을 걷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최고회의 내부의 동요를 비롯 공화당파와 반공화당파 간의 암투, 군정을 반대하는 미국측의 압력 등 어려운 일들이 계속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김 장군은 박 의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다. 김 장군은 한때 박 의장과 하숙을 같이 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 사이인데다가 인간적인 신뢰감을 쌓고 있는 터여서 박 의장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도와야 할 처지였다. 김 장군이 극비리에 ‘1급메모’를 작성해 박 의장에게 보고한 것도 그런 충정에서였다. 김 장군은 또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자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대선자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이다. 박 의장이 사용한 대선자금 등에 관해서는 김 장군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1963년 5월12일
<재벌문제>
우리나라 정치인이 정치자금 구득(求得)을 위해서 그때그때의 정권을 이용한 부정염출 방식을 강행함으로써 그 생명이 길지 못했던 것은 상식으로 되어 있다. 앞으로도 건전한 생산성 자원을 확보하는 자만이 무리없는 지속적 집권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재벌형성상 장악해야 할 사업은 공업이라야 하고 공업 중에도 석유계 공업, 아세틸렌계 공업 등을 장악하면 한국경제계를 완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방법>
석유계 공업: 현재 국영업체로 되어 있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할 것을 이미 결정한 바 있으니 이것을 어떤 명분을 세워서 불하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 자금과 문제되고 있는 원유문제 해결책과 미l8군 및 기타지역의 대(對)판매문제 등의 해결은 미국의 석유재벌과 적당한 조건으로 제휴함으로써 원만히 해결될 수 있으며 이는 자진 요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내자 일부는 석유판매업자로부터 염출). 이로써 연간 약 10억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

아세틸렌 유도공업: 이 분야는 아직 미개척이나 이것도 외자도입으로 거대업체가 성립될 수 있고 그 자원도 석유공업에 비교될 수 있다.

기타 셀로판공업으로 연간 4억원 확보가능(예상은 7억원)하며 제철과 비료(申學淋 계획서 참조)로서 5억원이 확보가능하다. 이상은 정부가 협조만 하면 그 기업체 성립은 순조로울 것이며 이미 제반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선거자금 문제>
야당은 자금난 해소가 어렵다. 우리는 1개군(郡)당 대통령선거에 최소 300만원 그리고 국회의원선거에 300만원 합계 600만원이 필요하다. 그러면 약 10억원의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중에서 재건운동 강화와 정당강화 및 선전도 가능하다.

자금의 합리적 염출은 재경위원장의 요청에 달려 있다. 현재 위원장 유양수(柳陽洙)장군에 대해서 항간의 유포 또는 추측으로는 막대한 자금이 지난 일년동안 모아졌으며 이는 대부분 유 장군 자신의 착복이 아닌가. 그렇다면 박 의장의 신임은 못받을 것이다. 또는 실업인 취급방법이 졸렬하다는 등 대부분의 실업인이 유 장군을 불신하는 실정이며 거물급 실업인들은 해외도피 상태이므로 재경위원장의 역량과 신망회복이 급선무다. 그후 실업인들의 협조를 받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방법으로 해결하려면 사업인의 헌금형식으로 하여 그 사업을 위한 자금확보금을 제공받는 길로서 다음의 방법이 있다.

첫째 연불(延拂) 외자도입으로 300만달러(약 4억원), 석유회사자금으로 4억원, 재일동포자금으로 2억원 등 10억원의 확보가 가능하다.

두 번째 구정권시의 정치자금 조달책으로 환율인상을 이용하여 업자와 사전결탁하고 인상전 사전불하로써 물자를 도입케 하고 그 차액을 사용한 것 등에 비추어볼 때 연불 외자도입은 순수 민간사업인의 개인희생으로 조달되는 방법이다...(중략)

당시 대통령선거를 위한 자금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장군이 비록 재경위원장이 아니었지만 박 의장과의 신뢰관계가 있어서 ‘1급메모’ 형식으로 작성해 박 의장에게 보고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메모가 열심히 보고될 무렵 박 의장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뻔 했던 일이 생겼다. 그러니까 1963년 4월 중순이었다. 최고회의 내부에서는 ‘정치위원회’(위원장 유양수)를 구성, 본격적인 대통령 만들기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정치위원회의 판단착오로 엉뚱한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유양수 위원장은 김준연(金俊淵)씨를, 그리고 김재춘 중앙정보부장은 김도연(金度演)씨를 각각 추대하고 나섰다. 특히 김재춘 부장은 김종필씨의 과오를 신란하게 비판하며 공화당을 없애야 한다고 박 의장에게 끈질기게 건의했다. 그러자 박 의장은 최고회의위원들을 전부 불러들여 3층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박 의장은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오늘 회의안건은 공화당을 해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의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최고위원들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말도 못했다. 박 의장의 얼굴이 너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박 의장은 “그럼 통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며 의사봉을 막 집어들었다. 이 때 김희덕 장군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의장 각하, 지금 각하의 위치를 말씀 드리면 비수가 각하의 몸을 노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각하는 죽을 목숨입니다. 각하가 출마 안한다고 하니까 누구누구는 다른 사람을 밀고 있습니다. 군정을 연장하는 것도 혁명사업을 완수하자는 것이 아닙니까. 군정연장하자고 했을 때 미국이 반대했고 또 2년동안 묵시적으로 군정연장에 동의했으나 요미우리 신문보도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못다한 혁명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군에서 나온 것도 각하의 혁명사업을 도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는 방법이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출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보니까 신당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같은데 예들 들어 호주에 새 말을 사러 간다고 해보십시오. 원하는 새 말을 살지 의문이고 또 산다고 해도 한국까지 무사히 데려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또 설령 두달 반 가량 걸려 사온 말을 써먹으려면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확신감이 없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제 와서 공화당을 해체해 버리면 뭐가 됩니까. 유양수 위원장은 김준연씨를 밀고, 또다른 사람은 김도연씨를 대통령후보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김 장군의 발언은 회의장 분위기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박 의장은 책상을 꽝하고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책상 위에 깔렸던 유리가 깨지고 물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와 동시에 박 의장은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야, 유양수. 해체 안해.” 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퇴장해버렸다.

박 의장의 대갈일성은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이어 유 위원장은 “야, 김희덕!”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다행히 재떨이는 김 장군 앞에 떠어져 박살이 났다. 이 때 김 장군도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며 “쏴 죽여버리겠어.”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주일(李周一) 부의장이 김 장군의 권총을 나꿔채며 이러면 되겠느냐고 흥분을 진정시켰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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