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버비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로버트 로드리게즈, 스티븐 소더버그 등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며 배우로서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조지 클루니의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은 최근 연출작 ‘서버비콘’만 놓고 보면 다분히 코엔 형제 쪽이다. 코엔 형제 각본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의 메가폰은 확실히 그 형제의 ‘파고’를 향하고 있다.

1959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도시 서버비콘. 12년 전 미국 각지에서 온 백인 기독교도 6만여 명으로 시작된 이 도시는 행정, 치안, 교육, 의료, 복지후생 등에서 월등한 천국이다. 한 회사의 재무이사인 가드너(맷 데이먼)의 앞집에 흑인 마이어스 부부와 아들 앤디가 이사 오면서 파란이 인다.

마트 등에선 노골적으로 이들 가족을 무시하고 불이익을 주더니 결국 이웃들은 펜스를 쳐 배타심을 드러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이어스 집 앞에 모여 농성을 하고 소란을 피우며 그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가드너의 아들 니키(노아 주프)는 앤디와 야구를 즐기며 친근하게 지낸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가드너는 3달째 주택담보대출금을 못 갚을 만큼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 그의 아내 로즈(줄리안 무어)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쌍둥이 동생 매기가 집에 와 가사를 돕고 있는데 사실 가드너와 불륜 관계.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위해 로즈를 죽이기로 계획한다.

▲ 영화 <서버비콘> 스틸 이미지

가드너가 고용한 마피아 2명이 집에 쳐들어와 로즈를 죽인 지 며칠 뒤 경찰이 용의자들을 잡았다며 가드너에게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경찰서에 도착한 가드너는 깜짝 놀란다. 범인의 얼굴을 본 니키를 매기가 데려온 것. 가드너는 진범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그날 밤 니키는 왜 그랬냐고 묻는다.

가드너가 출근한 사이 보험조사관 버드(오스카 아이삭)가 집으로 찾아온다. 사기 보험을 추려내는 데 베테랑인 버드는 차근차근 정황을 들이대며 매기를 추궁하고 이를 니키가 모두 엿듣는다. 버드는 밤에 다시 와 가드너를 만나겠다고 한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미친 듯 마이어스의 차와 집을 부수는데.

잔잔하게 시작되지만 금세 가파른 점층법을 구사하며 보는 이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쓰나미를 몰고 온다. 한 번 잘못 꿴 단추가 얼마나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오는지 의도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60년 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내용은 과거의 미국인 동시에 현재의 미국이다.

‘파고’의 주제 ‘돈보다 소중한 건 생명’을 잇는다. 자본주의의 맹주로서 드러내놓고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에 대한 경고다. 자본주의의 천박함에 눈이 먼 가드너와 매기의 집과 마이어스의 가정을 교차편집한 건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백인들의 자기중심적 아집과 이기심을 꼬집기 위함이다.

▲ 영화 <서버비콘> 스틸 이미지

마을의 한 백인은 “니그로는 발전할 의지가 없다”라고 뇌까리고 또 다른 이는 방송 인터뷰에서 “마이어스의 배후는 빨갱이”라고 당시의 매카시즘 망령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이어스 가족은 평화적이고 친화적이다. 마이어스 부인은 회색과 흰색 양말을 동시에 빨랫줄에 넌다. 흑백의 화합이다.

니키는 유독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즐겨 입는데 특히 앤디와 어울려 야구를 즐길 때 그렇고, 이에 발맞춰 앤디 역시 스트라이프를 입는다. 야구와 스트라이프(성조기)는 미국의 상징이다. 흑인은 비록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끌려왔거나 유럽을 거쳐 왔지만 미국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비교하면 가드너는 영국적 권위주의의 ‘꼰대의식’으로 똘똘 뭉친 수구 자본주의의 맹신자다. “난 유대인이 아닌 성공회 신도”라고 강조하는 게 결정적이다. 평소 아들을 니키란 애칭으로 부르던 그는 굉장히 중요한 일로 그를 서재로 불렀을 땐 니콜라스라는 법적 이름을 부른다.

그 신에서 클루니는 가드너의 뒤에 어항을 배치해 가드너가 니키 등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유한다. 가드너가 깡패에게 맞아 부러진 안경을 테이프로 붙여 끝까지 착용하는 건 그가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난 엄하게 키우려 했지만 엄마는 응석받이로 키웠다"라는 대사도 마찬가지.

▲ 영화 <서버비콘> 스틸 이미지

자신의 의도와 자꾸 엄발나는 니키를 “규율과 사교성을 배우게 만들겠다”라며 기숙사가 있는 군사 학교에 보내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건 미국의 극우 보수적 군사력 시위를 비꼬는 것. “인생에서 허들을 만나면 치우거나 다른 코스로 옮기는 것”이라고 가르칠 정도로 비겁한 게 그의 진면목이다.

그가 미국의 어두운 면이라면 니키는 순수한 성공회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그는 “여기 싫어, 나가고 싶어”라고 반항한다. 미치 외삼촌의 “누가 널 아들처럼 아끼지?”라는 질문에 처음엔 “아버지”라 답했던 소년은 나중에 한 뼘 성장한 뒤 “미치 삼촌”이라며 미국이 나아갈 길을 깨닫는다.

감독은 은근히 성공회에 불편한 시선을 드러내지만 결국 기독교에 대한 존경심으로 결론을 맺는다. ‘아일랜드의 수호신’으로 거론한 아일랜드 선교의 선구자 성 패트릭이 그렇고, 천지개벽할 엄청난 사건들이 장황하게 벌어진 밤을 지난 이튿날이 일요일이란 게 그렇다.

패트릭이 얘기한 삼위일체에서 성부는 니키 혹은 미국(의 미래), 성자는 미치, 성령은 마이어스 정도 되겠다. 데이먼과 1인 2역의 무어의 연기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어린 주프가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발군의 연기력을 뽐낸다. 마지막 코미디는 다분히 코엔 식이다. 105분. 15살 이상. 7월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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