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빅 식>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빅 식’(마이클 쇼월터 감독)은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구도에서 크게 새로울 건 없지만 배경과 서사, 그리고 디테일이 달라 눈에 띈다. 대다수의 멜로 영화가 백마 탄 왕자-가난한 처녀, 부자 연상녀-잘생긴 연하남, 지질이 커플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이 영화는 확실히 차별화를 꾀한다.

미국 시카고. 파키스탄 이주민 2세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은 초저녁엔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늦은 밤엔 우버 택시 기사로 일한다. 공연 중 자신에게 큰 환호를 보낸 심리 치료사 지망 대학원생 에밀리(조 카잔)를 그날 밤 바에서 재회해 ‘원 나이트 스탠딩’으로 인연을 맺는다.

미국에 살지만 쿠마일 가족은 철저하게 파키스탄 이슬람교도의 전통을 따른다. 부모는 계속 파키스탄 여자를 소개하며 정략결혼을 할 것을 강요하지만 쿠마일은 그녀들의 사진을 상자 속에 처박으며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가운데 부모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쿠마일은 에밀리에게 ‘쿨’하게 자신은 이틀 규칙을 지킨다고 말한다. 한 여자와의 데이트는 최소한 이틀이 지나야 다시 한다고. 두 사람은 대부분의 ‘원 나이트 스탠딩’ 커플이 그렇듯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합의하지만 쿠마일의 돌발행동을 계기로 연인으로 발전한다.

▲ 영화 <빅 식> 스틸 이미지

에밀리는 사실 대학 재학 때 캠퍼스 커플과 몇 달간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녀의 잠재의식 속엔 그 상처가 아직 남아있다. 그녀는 부모에게 쿠마일의 존재를 얘기했지만 쿠마일은 연애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에게 에밀리의 존재에 대해 일언반구도 거론한 적 없다.

어느 날 쿠마일의 집에서 파키스탄 처녀들의 사진이 가득 담긴 상자를 발견한 에밀리는 이에 대해 추궁하고 그가 자신과 달리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음을 알고는 크게 실망해 이별을 선언한다. 며칠 뒤 자신의 팬을 유혹해 집에 데려온 쿠말리에게 에밀리 친구의 전화가 온다.

에밀리가 심한 독감으로 입원했으니 병원에 와달라는 것. 그런데 그녀의 병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쿠마일은 에밀리의 휴대전화로 그녀의 부모에게 연락을 하고 그렇게 세 사람의 불편한 병원 동거가 시작된다. 그런데 에밀리의 부모 역시 뭔가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듯 서로 불편해 보인다.

영화는 쿠마일과 실제 아내의 러브 스토리를 근간으로 한다. 쿠마일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실명으로 출연했다. 카잔은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의 감독 엘리아 카잔의 손녀. 위기를 넘기고 행복한 결혼생활 10년째인 쿠마일 부부의 위기 극복기를 굳이 스크린에 옮긴 이유는 뭘까?

쿠마일은 현업 스탠드 업 코미디언 겸 배우로서 활동 중인 마흔 살의 가장이다. 미국으로 이주해 금발의 미국 여자와 결혼한 뒤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동양 출신 빈자의 아메리칸드림을 얘기하고픈 것일까? 그건 아닌 듯하다. 한국전쟁 직후의 우리나라를 대입하면 비교적 이해가 쉬울 듯하다.

▲ 영화 <빅 식> 스틸 이미지

당시 자유연애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전통적 중매결혼과 신 연애결혼이 충돌했다. 쿠마일의 부모는 자신들이 지목한 여자를 계속 거부하는 쿠마일에게 “넌 내 아들이 아냐”라고 결별을 선언한다. 예전에 우리네 가정에서 흔히 있었던 광경이다. 에밀리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매우 가족적이다.

그녀는 간밤에 잠자리가 좋았느니, 나빴느니 하는 걸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로 개방적이지만 쿠마일과의 러브 스토리를 시시콜콜 털어놓을 정도로 부모와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아버지 앞에서 약이 정액 맛이라고 투덜거리는 거친 면도 있지만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누구보다 절실함을 깨닫고 있는 것.

아메리칸드림까진 아니지만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가이드 냄새는 난다. 애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와 가족의 소중함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적이며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떤 면에선 미국 지배적 세계 평화를 외치는 팍스 아메리카나 냄새의 느낌마저 살짝 풍긴다.

쿠마일은 식사 중 부모로부터 기도를 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지하의 기도실로 내려간 그는 타이머에 5분을 입력한 뒤 그냥 놀이를 즐기다 올라와 천연덕스럽게 기도를 마쳤다고 한다. 무슬림에게 기도는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그러나 그는 파키스탄 사람으로서의 전통을 거부한다.

▲ 영화 <빅 식> 스틸 이미지

그렇다고 반 이슬람적이고 찬 기독교적인 노선을 취하는 건 아니다. 쿠마일의 공연 중 한 전형적인 젊은 미국인 남자가 “테러리스트”라고 외치자 에밀리의 부모는 그를 비난하고 공격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종착역은 보수와 진보 등 다른 문화적, 이념적 충돌 간의 진정한 이해와 화합이다.

각 민족과 국가의 아름다운 전통은 보존해야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른 생활과 문화의 변화는 순리에 따라 수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우리나라도 명절 때 콘도미니엄에서 차례를 지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과 20~30년 전만 했어도 어른들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을 일이지만 지금은 탄력적이다.

에밀리의 희귀병 발병 전까지 쿠마일의 의식은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뭘 믿을지 몰랐어요. 뭘 믿을지 스스로 찾을 것”이라고 부모에게 절규한 게 증거다. 파키스탄의 전통을 거부하지만 미국에 적응하지도 못한 상황. 정략결혼은 반대지만 미국의 사랑과 결혼 방식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진짜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에 대한 사유와 화합의 사고를 유도하는 작품이다. “부모 노릇은 악몽, 누굴 사랑하는 건 고통”이라는 대사는 직설법이자 반어법으로서의 주제다. 매번 관계를 회복시키는 에밀리의 심경 변화의 이유는 관객 각자의 숙제다. 120분. 15살. 7월 1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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