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지원세력을 암살하라”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07.09l수정2018.07.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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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1965년 1월 김희덕장군이 새로 6군단장에 부임 후 인근 미2사단 지역을 찾아 부대장병들과악수를 나누고 있다.

“공화당 지원세력을 암살하라”

이와 비슷한 사건은 또 하나 벌어졌다. 공화당 해체를 기정사실화 했던 김정열(金貞烈) 공화당의장은 이미 발표문을 작성하고 기자들까지 불러들인 상태였다. 김 의장의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김 의장은 며칠 뒤 의장직에서 물러나 주미대사로 부임했다). 일이 이쯤되자 이훈섭(李勳燮) 최고위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공화당 해체작업을 주도한 모씨한테 달려가 완력으로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약 두달 뒤 김 장군은 암살대상에 올라 위기에 몰리게 된다. 7월6일 저녁이었다. 김 장군은 자신의 비밀 아지트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8호에서 예춘호(芮春浩), 이재만, 김세배(金世培, 서울지검 검사)씨 등과 함께 시국담을 주고 받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밤 10시30분쯤 되자 정우식(鄭雨湜) 서울시경국장한테서 전화가 갑자기 걸려왔다.

“위원장님, 정우식입니다.”
정 국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니, 갑자기 웬일이오?”
“위원장님, 혹시 아시는가 해서요.”
“그게 무슨 말이오?”

김 장군은 궁금해서 거듭 물었다.
“내일 새벽 3시에 위원장님을 암살한다는 계획이 입수됐습니다.”
“나를 암살한단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외에 몇 사람이 더 있습니다.”
“아니 누구 짓이오?”

김 장군은 술이 확 깼다.
“중정입니다.”

김 장군은 누구의 계획인지 얼른 감이 잡혔다. 정 국장의 긴장된 목소리는 계속됐다.
“위원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정만 넘으면 우리 요원들을 풀어 통행금지 위반으로 다 잡아들이겠습니다. 우선 몸을 숨기도록 하십시오.”

전화를 끊은 김 장군은 자리로 돌아왔다. 김세배씨는 전화를 엿듣고는 벌써 자리를 떴다. 김 장군은 “충청도 출신치고는 무척 행동이 빠르군!” 하면서 피신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김 장군은 이재만, 김호칠(공화당 경북지구당 사무국장)씨 등과 함께 검은 세단을 타고 유엔빌리지를 빠져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번호판이 없는 지프가 집 밖에 대기해 있었다. 김 장군은 속으로 ‘저 놈이구나’ 하면서 운전사한테 “이봐 차를 우이동쪽으로 몰아.”라고 했다. 우이동에 살고 있는 김팔봉(金八峰)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프는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김 장군은 따돌릴 방법을 떠올렸다. 운전사한테 “돈암동 로터리를 지나 미아리고개로 진입할 때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라. 그 때 우리가 뛰어내릴테니 눈치 안 채게 계속 우이동쪽으로 차를 몰아라.”고 일러두었다.

이윽고 세단은 돈암동로터리에 당도했다. 예정대로 차는 돈암동 골목길에 들어섰고 김 장군 등 일행 3명은 잽싸게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 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우이동으로 향했고 김 장군 일행은 근처 하숙집 담을 뛰어넘어 주인한테 양해를 구하고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부탁했다. 김 장군은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날이 밝으면 김재춘 중정부장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한편 우이동으로 가던 세단차가 창동입구에 이르자 지프의 윤모 대위(이북 출신 중정요원)가 이상하게 여겼는지 앞을 가로 막았다. 윤 대위는 속았음을 알고는 운전사한테 실컷 화풀이를 했다.

날이 밝았다. 김 장군 등은 최고회의사무실로 돌아왔다. 잠시 후 김형욱 운영위원장이 들어왔다. 김 위원장은 계속 씩씩 거리며 “가만 안놔두겠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김 위원장도 간밤에 김 장군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것이다.

드디어 이날 오후 온양으로 갔던 박 의장이 상경했다. 김 위원장은 지체없이 이같은 사실을 박 의장한테 보고했다.

“각하, 김 부장이 우리를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공화당 지원세력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박 의장은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럴 줄 미리 예상한 김 장군은 어젯밤 자신을 미행했던 윤 대위의 인적사항을 건네줬다. 잠시후 윤 대위가 박 의장 앞에 불려왔다. 박 의장이 사실 여부를 직접 추궁했다. 겁에 질린 윤 대위는 “김희덕 장군의 제거를 제가 맡았습니다.”하며 모든 것을 순순히 자백했다. 대노한 박 의장은 그 자리에서 김 부장을 불러 “당장 부장직에서 물러나라.”고 호통쳤다. 이렇게 해서 김재춘 중정부장이 물러나고 김형욱씨가 새로 중정부장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김재춘 중정부장이 물러난 것은 육사8기 출신들과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암살 사건을 모의했다가 그만두게 됐다는 구체적 사실은 김 장군에 의해 처음 밝혀진 얘기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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