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아이언맨 3’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등의 시나리오를 쓴 드류 피어스가 각본은 물론이고 2번째 연출한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는 내내 암울하고 음산하며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다 깔끔하게 매조지는 미스터리 액션이다. 그런데 액션보다 미스터리 스릴을 즐기는 재미가 더 좋다.

2028년 6월 21일 수요일 LA. 공공용수 보급이 중단되자 시내 전체에 폭동이 일어난다. 무면허 의사 진(조디 포스터)은 부상을 입은 범죄자 회원들을 치료해줄 뿐만 아니라 은신처까지 제공하는 호텔 아르테미스를 조수 에베레스트(데이브 바티스타)와 함께 22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이곳엔 절대적인 금기사항이 있으니 욕설, 무기 소지, 살인 및 비회원의 출입이다. 은행 강도 와이키키(스털링 K. 브라운)는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총상을 입고 호텔에 들어온다. 이곳엔 베테랑 킬러 니스(소피아 부텔라)와 무기상 아카풀코(찰리 데이)가 이미 투숙한 상황.

오랜만에 만난 니스와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던 와이키키가 은행에서 한 고객으로부터 빼앗은 화려한 볼펜을 보여주자 니스는 경악한다. 그것은 바로 LA의 경찰마저 좌지우지하는 갱스터 보스 울프킹(제프 골드블럼)의 어마어마한 값어치의 비밀금고였던 것.

▲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 스틸 이미지

진에게 울프킹이 중상을 입고 아르테미스로 가는 중이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는 오늘 밤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하고 에베레스트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다. 설상가상으로 CCTV 화면을 보던 진은 총상을 입고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 경찰을 보고 경악하는데.

카타르시스용 액션물로서 선택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액션은 후반에 플롯을 위한 장치로 기능할 뿐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는 꽤 진지하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의 12신 중 한 명으로 제우스가 티탄 신족 코이오스와 포이베의 딸인 레토와 바람을 피워 낳은 아폴론의 쌍둥이 누나다.

포이베란 별칭도 있으며 로마 신화에선 디아나(다이아나)다. 달과 사냥의 여신이며 순결, 자유분방함, 활과 화살 등을 상징하고 사슴을 특히 아꼈다. 태어나자마자 아폴론의 분만을 도운 그녀는 여자들의 다산과 순산을 관장하고 생리에도 연관이 있다. 달의 여신이므로.

호텔 아르테미스는 어머니 혹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존 윅’과 ‘매트릭스’가 연상된다. 인트로에서 진이 LP로 마마스&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을 틀고 업무를 시작하는 건 화려한 LA가 10년 뒤엔 지옥으로 변한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이다. 대사에 등장하는 ‘둠스데이’가 멀지 않았다는 것. 

▲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 스틸 이미지

그런 환경에서 범죄자는 악인이 아니다. 공권력이 무력화되자 정부가 사설업체에 치안을 맡기고 폭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설정은 자본주의의 극대화로 잔인한 돈이 국민을 지배한다는 메타포다. 마피아 두목 울프킹은 대기업 총수 등 자본주를 상징한다. 아르테미스가 치유해주는 건 상처뿐만이 아니다.

와이키키와 니스의 대화에서 그들이 범죄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가 짙게 풍긴다. 돈이 있어야만 돈을 버는 세상에선 용빼는 재주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런 부조리함 속에서 치명상을 입은 그들은 아르테미스, 즉 어머니의 자궁에서 치료를 받고 마음의 상처까지 달래는 위로를 얻게 된다.

진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의미의 스와힐리어 ‘하쿠나 마타타’인 것과 당일이 낮이 가장 긴 하지인 건 반어법이다. 집중하는 주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리고 ‘선을 넘지 말자’는 룰이다. 진은 한 소년의 사진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이 미장센은 굉장히 중요하다.

진은 중상을 입은 여경으로부터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알겠네. 항상 엄마 잘못이야”라고 말한다. 울프킹에게는 조직 내에서 일하는 골칫덩이 막내아들 크로스비(재커리 퀸토)가 있다. 자신을 닮고 싶다는 아들에게 그는 “그런 헛소리가 널 나약하게 만들어”라고 의미심장한 야단을 친다.

자식은 부모를 롤모델로 삼지만 부모는 자식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과 와이키키는 “늘 나가는 게 들어오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생명이 엄마 배에 잉태되면 부모의 보호와 신의 축복을 받지만 출산해 세상에 피투된 순간 온갖 고난과 위험에 노출된다.

▲ 영화 <호텔 아르테미스> 스틸 이미지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시작은 쉽지만 마무리는 어렵다. 어떤 생산에 매달리다 보면 적당한 순간에 욕심을 버리고 갈무리하는 게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근본적 탐욕과 신뢰’가 거론된다. 이 두 가지는 정말 공존하기 어려운 인간관계의 평행선이다. 그래서 룰이 중요하다.

사건은 수요일에 벌어진다. 진은 처음엔 ‘일상적 수요일’이라고 반복하지만 결국 예수가 배반당한 수요일처럼 엄청난 피바람이 몰아친다. 수요일은 금요일과 함께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찍부터 재계(부정한 일을 삼가고 심신을 정갈하게 갖춤)의 날로 삼아왔다. Wednesday의 어원은 오딘이기도 하다.

맷 먼로의 히트곡 ‘Wednesday's child’는 '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비애를 가진 외로운 이‘라고 노래한다. 크로스비를 비롯해, 모든 젊은이들과 사진 속 소년까지 ’수요일의 아이‘일 것이다. 크로스비가 막내아들인 건 그리스 신화의 오레스테스를 빗댄 것. 각 이름이 지명 등인 건 세상을 함축한 것.

이 영화는 실존은 피할 수 없는 고뇌, 죄악, 투쟁, 그리고 생존의 의혹과 죽음 등에 부딪힌다는 칼 야스퍼스의 한계상황을 그린다. 산성비가 내릴 정도로 생존환경이 최악이 된 ‘블레이드 러너’, 모든 땅이 사막화된 ‘매드 맥스’ 등도 연상된다. 94분. 15살 이상. 7월 1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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