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산 과천 자하동천 자하동 계곡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숲 우거지고 산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을 거닌다. 물 안개 피어나는 계곡은 언제 보아도 정답다. 경치가 수려한 곳 자하동이다. 가슴 설레는 지명이다. 고려시대 개성에 자하동이 있었다. 600여 년 전 한양도성 창의문 밖 아름다운 계곡에도 있었다.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며 자문밖 자하계곡물이 흘러 세검정천에 모였다.

자하동천(紫霞洞天),자하동 계곡을 거닌다

관악산 연주봉에서 물줄기는 과천으로 내려온다. 계곡은 길다. 깊은 계곡은 물과 너럭바위가 많다. 기암절벽과 골짜기가 이어진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창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신선처럼 계곡에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다. 계곡 어귀를 단하시경(丹霞詩鏡)이라 바위에 각자 하였다. 싯구를 불러 일으키는 자하동의 빼어난 풍경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로 추정되는 바위속 글씨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비 내리는 아침에 무지개 피어나듯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신선이 노니는 계곡이다. 관악산의 절경인 자하동천(紫霞洞天)이다. 하늘과 구름과 계곡물이 있는 자하동 계곡은 아름답다. 관악산의 경승지(景勝地)다.

▲ 관악산 과천 자하동 계곡_백운산인 자하동천 각자 바위

인왕산 수성동 계곡과 백악산 백사실 계곡의 신선놀음이 이곳에서도 전해진다. 소서(小暑) 지나 대서(大暑) 속 한여름, 계곡물에 탁족을 즐긴다. 옥류동천과 백석동천이 별천지라면, 관악산 자하동천 자하동 계곡은 별유천지다.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이라 써진 바위에 가까이 다가선다. 시,서,화의 3절이라 불렸던 자하 신위(申緯)의 글을 각자한 것이다. 자하삼절(紫霞三絶)로 이름을 떨쳤다. 아호는 누가 지어주었을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손을 대어 시간을 거슬어 올라간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만이 자하동천의 주인이다.

▲ 과천의 관문_과천 객사 온온사

자하동 계곡에서 흘려 내린 맑은 물줄기는 과천향교와 온온사를 지나 양재천을 향한다. 양재천 물줄기는 다시 탄천에 합수되어 한강에 모이니 오묘하고 신기롭다.

목멱산에서 내려와 한강을 건너 남태령까지는 한참이다. 관악산과 우면산을 사이에 두고 남태령을 오르면 서울의 관문인 과천이다. 4개 대도시와 접한 전원도시 과천에 들어서니 관악산이 둘러싸고 있다. 관악산(冠岳山 629m)과 청계산(淸溪山 618m),응봉(鷹峰 348m),삼성산(三聖山 481m)이 품고 있는 산세 좋은 길지다. 서울과 성남, 안양과 의왕시가 접근한 행정도시다.

▲ 과천의 관문_과천 객사 온온사 안 비석군

과천(果川)의 역사와 유래

백제 한성시대에 한강 아래 큰 지역이 있었다. 백제시대 밤나무가 많아 율목(栗木) 또는 동사힐(冬斯肸)이라 불렀다. 통일신라시대 밤나루터인 율진(栗津)이라 한다. 고려때 과주(果州)에서 부림(富林)으로 바뀐다. 조선시대 경기도에 예속되고, 과천(果川)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 시흥군에 통합 되었다. 과천군의 관할구역 중 노량진·방배·흑석·동작은 북면, 과천면으로 되어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1986년 과천시로 승격 된다. 정부과천청사·경기도립과천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국립현대미술관·서울대공원·서울랜드·청소년야영장 등이 있다. 관악산과 우면산,청계산 자락이 행정도시로 바뀌었다. 자연친화적인 전원도시로 과천이 되었다.

▲ 경기 5악 중 명산이자 영산인 과천 관악산

관악산(冠岳山)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이다

갓 모습의 산이라 갓뫼라 한다. 한자로 관악(冠岳)이다. 철따라 변하는 산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아름다운 경관과 기암절벽은 소금강(小金剛)과 서금강(西金剛)이라 한다.

서울은 산이다.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 내4산과 외4산이 큰 숲을 이룬다. 한양도성을 감싸는 외4산은 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으로 한강을 따라 펼쳐져 있다. 한강 아래의 가장 영험하고 울울창창한 산봉우리가 도시와 도시를 감싼다. 관악산은 넓게 이어진다. 관악산-우면산-청계산-광교산-삼성산으로 경기 남부를 감싼다. 예로부터 경기 5악이라 하여 서울의 경계에 큰 산이 펼쳐져 있다. 개성 송악산,파주 감악산,포천 운악산,가평 화악산 그리고 과천 관악산이 경기 5악으로 명산이다.

▲ 관악산 자하동 계곡_단하시경 각자 바위

산은 높고 기암절벽이 많다. 무학대사와 정도전 그리고 태조 이성계는 삼각산에서 한강 건너 관악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역사가 쌓이고 문화가 깃든 곳이다. 관악산 자락 곳곳이 역사이며 문화유산이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에는 연주대(戀主臺)가 있다. 고려말 개성 두문동 72현을 향해 절을 올렸다. 조선초 효령대군이 동생 세종을 향해 백악산을 보며 절한 곳이다. 그 아래 관악사를 지었다.

관악산과 삼성산 자락 사찰에 서다

관악산 자락 삼성산(三聖山)의 삼성(三聖)은 누구일까. 관악산은 산이 깊고 영험하여 많은 사찰들이 있다.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3대사가 막(幕)을 치고 수도 하였다. 일막(一幕),이막(二幕),삼막(三幕)등 초막을 치고 암자을 지었는데,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 조선초 무학대사, 조선 중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이곳에서 수행 하였다. 백사 이항복의 이야기도 전해오는 고찰이다. 조선 후기에는 기해박해 때 한강변 새남터에서 3명의 신부가 순교 후 이곳에 안장된 곳이다. 이곳이 삼성산이다. 한강 아래 이름난 사찰이 있는 곳이다. 서울과 경기 주변 4대 명찰중 하나인 삼성산 삼막사다.

▲ 과천의 객사_정조대왕이 직접 쓴 온온사 현판

과천의 객사,온온사에 머물다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넘은 정조대왕 능행길 쉬어가는 길이 있다. 과천의 관문을 지나 관악산 아래 경치 좋고 쉬어가기 편안곳에 객사가 있다. 과천현의 객사(客舍)이자,치소(治所)이다. 객사는 고을에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있다. 건물도 격식을 갖추어 지었다. ‘경관이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하여 정조대왕은 온온사(穩穩舍)라는 편액을 직접 써 주었다.

▲ 관악산 자하동 계곡 초입_과천향교 대성전

과천향교 은행나무 아래 잠시 쉬다

온온사를 지나 관악산 연주암을 가는 초입에 향교가 있다. 전학후묘로 전형적인 명륜당과 대성전이 있다. 조선초 시흥향교와 안양향교, 과천향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통폐합되며 시흥향교라 하였다. 다시 과천향교라 하며 관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는다. 공자와 맹자,한국의 18현등 여러 성현을 제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大成殿) 현판이 눈에 띄게 크다.

▲ 관악산 자하동 계곡 초입_과천향교 명륜당

과천향교는 봄,가을 석제대제에 시흥향교와 안양향교 유림회에서도 제를 지내러 온다. 전통적으로 제를 지낼시 여성 출입을 금하지만, 최초의 여성 초헌관으로 여성 시장이 제를 지냈던 역사적인 향교이다.

▲ 관악산 자하동 계곡_단하시경 각자 바위 설명 글

과천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관악산 연주봉(戀主峰)에 암벽위 연주대가 있다. 삼각산에서 한강을 건너 무학대사가 오르고, 효령대군이 머물던 곳이다. 정조대왕이 화산능(花山陵) 행차시 쉬고자 들렀던 온온사(穩穩舍)가 있다. 과천 시내 곳곳에 있던 비석을 모아둔 비석군도 은행나무 아래 모아 두었다. 온온사에 들어오면 정조가 직접 쓴 편액(篇額)과 객사내에 부림헌(富林軒)이란 현판도 있다. 과천의 자랑이다.

▲ 관악산 연주암과 과천향교 가는 길

효령대군의 흔적이 있는 연주암 삼층석탑과 호국도량 이었던 관악사지가 있다. 관악사는 중창을 준비 중이다. 보광사목조여래좌, 문원리삼층석탑과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이 있다. 또한 연주암의 금륜보전(金輪寶殿)과 응진전나한탱(應眞殿羅漢幀)·약사여래입상·대웅전 등의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 관악산 자하동천 자하동계곡

안양천과 양재천의 수계(水系)인 관악산을 보며 무더위속에 과천을 걷는다.

▲ 밤꽃 가득한 과천의 한여름 하늘

자연과 도시가 융합된 동네
역사와 문화가 연결된 지역
관악산 기슭 별유천지 자하동천(紫霞洞天),

600여년 과거와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도시

여기는 과천(果川)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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