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사귀는 이성이랑 키스를 하고 싶은데 동의를 구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해야 하나요?”
만일 후배 등 주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조언할 것인가. “촌스럽게 동의는 무슨 동의?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할 것인가. 아니면 “당연히 먼저 동의를 구해야지.”라고 말할 것인가.

정답은 동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 접촉은 성폭력이기 때문이다. 동의 여부 확인 과정을 생략하라는 조언은 성폭력 교사행위나 다름없다. “우리 키스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당사자도 상대방을 촌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닌데도 이런 질문을 함부로 던진다면 그것 자체가 성희롱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연인에게 일방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워낙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촌스럽다고, 그냥 하는 거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실제 키스할 때 상대방의 의향을 확인하는 비율은 19.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미정 연구위원 등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적 접촉을 할 때 상대방의 의향을 확인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다. 심지어는 성교 때 동의 여부 확인도 67.6%에 그친다. 나머지 중 상당수는 성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 출처 : 이미정 등, 청년층 섹슈얼리티와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9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면 성관계까지 허용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단계별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실에서는 다른 것 같다. ‘여자가 키스나 애무를 허용하는 것은 성관계를 허용한다는 뜻이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41%(매우 그렇다 7.7%, 약간 그렇다 33.3%)나 된다. ‘연인관계에서의 스킨십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25.4%(매우 그렇다 3.5%, 약간 그렇다 21.9%)다. 그러다 보니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폭력 피해 경험률이 여성은 21.3%(남성 1.2%)나 되는 것이다.

키스 같은 로맨틱한 행위는 서로 이심전심 교감에 의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애기간 스킨십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남녀의 생각은 너무 다르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 등의 2015년 대학생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는 69.6%가 성관계까지라고 답한 반면 여자는 52.4%가 키스까지라고 답해 대조를 이뤘다. 동상이몽이다. 나는 성적 접촉을 시도할 단계가 됐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방의 인식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성폭력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출처 :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학생 인식조사, 2015

키스를 하다가 “우리 섹스 할까요?”라고 물어보는 게 분위기를 깨는 것일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분위기를 깨는 게 아니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물어 보도록 하고 있다. 명백한 동의 없는 성행위는 강간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스웨덴에서는 그 같은 내용의 법이 이달부터 발효됐다. 아이슬란드,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키프로스, 벨기에, 독일에 이어 유럽에서 10번째다. 스페인도 그 같은 방향의 법 개정을 최근 발의했다. 성행위를 하기 전에 상대방으로부터 말이나 행동 등으로 명백한 동의를 얻어야만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와 달리 우리 법은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폭행으로 처벌한다. 그래서 피해자의 명백한 동의 여부를 성폭력의 기준으로 삼도록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법 개정을 권고 받았다. 선진국처럼 법을 개정하면 비서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도 충남지사는 저항이 없었기에 합의된 성관계라고 반론을 펴는 일은 사라지게 된다.

▲ 출처 : 스코틀랜드경찰청 홈페이지. 성행위 전 ‘동의를 얻어라’ 캠페인 홍보 포스터. 동의가 없으면 성행위가 아니라 성폭행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 개정도 필요하다. 그에 앞서 ‘성적 행동 동의 구하기’ 캠페인이 요구된다. 키스나 성행위를 하려면 “우리 키스할까요?” “우리 섹스 할까요?”라고 반드시 물어보고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물론 남성들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성폭력 없는 세상,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한 세상을 앞당겨 이룩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성평등보이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현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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