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프로젝트 역공작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07.25l수정2018.07.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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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1969년 김희덕특명검열단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해병 1사단을 방문하여 부대사열을 하고 있다.

경제개발 프로젝트 역공작

3개월 뒤 김 장군은 예정보다 3주일 앞서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김 장군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여의도에 장차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갈 ‘두뇌센터’의 청사진을 그려보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 장군은 곧바로 청와대로 달려갔다.“김 장군, 어서 오시오.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요?”
김 장군을 맞이하는 박 대통령의 표정이 환하게 밝았다. 사실 박 대통령은 계속된 6.3시위의 후유증으로 고민하던 중 모처럼 친구를 보자 친구와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김 장군, 오늘 저녁은 나하고 식사나 합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얼마만인데요.”
“둘만 식사하기 심심하면 김재규(金載圭)장군을 동석시키면 어떻겠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김재규 장군은 6.3시위 때문에 서울에 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날 저녁 7시 대통령 전용식당에서 셋이 식탁에 앉았다. 식사와 술이 나왔고 김 장군이 먼저 미국에서 지냈던 얘기를 꺼내며 술잔이 오고 갔다. 잠시 후 김 장군이 말했다.
“각하, 지난 번 말씀하신 대로 레너드 박사와 1천만달러 지원 등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레너드 박사는 제가 가서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 갔다 올까요?”
박 대통령이 술 한잔 쭉 들이키더니 말했다.
“김 장군, 상황이 바뀌었소.”
“무슨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박 대통령이 대답했다.
“육군 고위장성들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김 장군은 군에 남아야 할 사람이다. 예편시켜서 무슨 사업을 한다고 그러는데 김 장군을 빼버리면 육군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느냐’고. 그러면서 ‘경제개발도 좋지만 군도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오.”

이 때 김 장군의 머리 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차 그 때 박 대통령과 비밀얘기를 나눴던 모든 것이 도청되었구나. 도청자가 누군지 얼른 감이 잡혔다. 청와대 고위 실력자라는 것을. 경제개발 프로젝트가 김 장군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키 위해 역공작을 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김 장군은 손에 들고 있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각하, 저녁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술이나 한 잔 주십시오.”
그렇게 몇 잔을 들이켰다. 취기가 약간 오른 김 장군이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각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지요. 대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건의하겠습니다. 육군 소장인 제가 앞으로 각하와 독대할 일도 없고 해서...”
이 말에 박 대통령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각하, 김재규를 조심하십시오”
김 장군의 말은 계속됐다.
“각하, 증권파동때 재판을 맡았던 박형훈(朴亨勳)소장을 아시지요. 왜 아직까지 감방에 놔두는 것입니까?(박 소장은 증권파동때 재판을 원만히 해결했다는 공로로 철도청장을 맡았으나 1964년초 공급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각하, 박 소장이 왜 감옥에 갔는지 아십니까? 박 소장은 이후락씨의 인사청탁과 장기영(張基榮)부총리의 철도물자 청탁을 안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 소장이 해먹었다는 공금 36만원은 각하의 형수(김종필씨의 장모)한테 전세값으로 준 것입니다. 일 잘하고 또 각하 형수의 어려움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감옥에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랗게 변했다. 이 때 김재규 장군이 나섰다.
“김 장군, 각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당장 취소하시오.”
김 장군이 격앙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봐, 충성하려면 제대로 해. 있는 그대로 충성해야지 과잉충성은 왜 하는 것이야. 꿍꿍이 속이 있다는 것을 난 다 알아. 촌놈이 사단장까지 해먹었으면 됐지 말야.”

분위가 험악해졌다. 김 장군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각하, 이런 친구를 상대하지 마십시오. 과잉충성하는 놈들은 나중에 꼭 무슨 일을 냅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습니다.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김 장군은 이 말을 마치고서는 술잔을 벌컥 벌컥 들이킨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장군의 성격이 아무리 직설적이라고 해도 이 날 자리에서 당사자를 앞에 대놓고 얘기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기만 했다. 김 장군의 말을 들은 김재규씨는 어떤 마음이었겠으며 특히 박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재규씨는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고 박 대통령은 최고 통치자다운 면모로 김재규씨한테 “김 장군 성격 잘 알지 않소. 개념치 마시오.”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10여년이 지난 후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때 박 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는 10.26사건이 벌어졌으니 김 장군의 말이 새삼 되새겨질 일이다.

▲ 1965년 1월 김희덕장군이 새로 6군단장에 부임 후 인근 미2사단 지역을 찾아 부대장병들과악수를 나누고 있다.

3공화국 초기 미 장성들 로비스트를 활용

3공화국 초기 박 대통령은 불편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박 대통령은 18년 장기집권 동안 미국으로부터 기술원조 등 경제적 실리는 많이 챙긴 반면 정치적으론는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됐다. 미국측은 박 대통령이 5.16쿠데타를 주도한 장본인으로서 정치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했다. 따라서 3공화국 초기의 한국과 미국관계는 좋을 리가 없다. 박 대통령 자신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대국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어떻게 해서든 미국과의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이를 위한 작전으로 박 대통령은 당시 상당수 주한미군 고위 장성들을 친한파로 만들어 로비스트로 활용했다는 것이 김 장군에 의해 처음 밝혀진다. 한국에 주둔해 있던 미군장성들을 대부분 친한파로 만들어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의 이익을 위해 많은 활약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김 장군은 1966년 1월 6군단장으로 부임할 때 박 대통령으로부터 미1군단 고위장성들을 친한파로 만들라는 특명을 받았다. 한국군 6군단과 미1군단은 의정부 북부지역을 담당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다음은 당시 회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1965년 여름 여의도의 대규모 과학기술 ‘두뇌센터’ 건립계획이 무산되자 국방부 관리차관보 자리로 복귀했다. 5개월 뒤 나는 6군단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부임에 앞서 신고차 청와대를 방문했다. 신고를 마친 뒤 나는 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미1군단에는 군단장, 포병사령관, 사단장 등을 포함해 장성급이 9명이 있소. 이들 모두를 친한파로 포섭하시오. 나중에 미국에 돌아가면 주미 한국대사처럼 한국을 위해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도록 말이오’라고 하명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국을 대하는 심정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렵게 민정에 참여해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미국과 꼬인 매듭이 잘 풀리지 않자 박 대통령은 그 묘책으로 주한 미군장성을 회유해 장차 로비스트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계속되는 김 장군의 회고.

“군단장 이후 부대일도 부대일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미1군단 소속 미군장성들과 교제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회동은 주로 워커힐호텔에서 이루어졌는데 오찬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만찬이었다. 인간적으로 친해지면서 한국실정의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그들도 공감했다. 특히 1군단 포병사령관 앤더슨 소장은 한국사정을 이해하려는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고 가끔 부대 근처에서 술자리도 함께 하는 인연을 맺게 됐다. 나는 또 이들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조촐한 송별회를 마련해 귀국하면 미국주재 한국대사라는 마음으로 많은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이들은 미국측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우리한테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김 장군은 이들의 도움으로 군단장 부임후 전임 한신(韓信)장군이 군단장 시절 만들어놓은 전방의 관할 남방한계선 목책을 전부 철책으로 바꾸기도 했다. 군수물자가 궁핍했던 시절에 이같은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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